꽃사과 꽃이 피었다
황인숙 지음 / 문학세계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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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이 자신의 시집들 가운데에서 시를 골라 새롭게 묶어낸 시집이다. 이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보너스와 같은 선물이 될 테다.(실제로도 내게는 선물이었기도 하고.)   


취향이라는 게 있다. 이 취향은 사람에 따라 일관되게 적용될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이전에는 마음에 들었는데 다시 보니 마음에 안 들게 되고, 전에는 안 보였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도 되고. 시는 다른 글에 비해 짧으므로 거듭 보게 되는 일이 잦다. 그래서 다시 발견하게 되는 시는, 더 큰 기쁨이 된다. 내가 왜 진작 알아보지 못했던가, 지나가서 놓쳐버린 기쁨을 아쉬워하며.  


무겁지 않은 눈, 무겁게 여기지 않는 삶. 살아 있는 순간에 충실하게, 그러나 더없이 가볍게. 소홀하거나 무책임하다는 게 결코 아니다. 무심한 것도 아니고,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부담 느끼지 않는 시선, 매달리지 않고 이끌어가는 생. 그래서 이 시집은 가볍게 읽힌다. 어울리지 않는 가벼움 때문에 의아해할 수도 있다. 신기하다. 이전에 나는 이 시인의 시에서 꽤 듬직한 무게를 느꼈는데. 그게 또 좋았는데.


날씨가 추워진다. 몸은 무거워지더라도 마음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고양이의 얇디얇은 털과 같이. (y에서 옮김20131113)

가을이면 홀로 겨울이 올 것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내게 닥칠 운명의 손길.
정의를 내려야 하고
밤을 맞아야 하고
새벽을 기다려야 하고. - P15

햇살이 바람에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결을 따라
바다 끝을 바라보았다. - P21

시절은 한꺼번에 가버리지 않네.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물, 한 사물
어떤 부분은 조금 일찍
어떤 부분은 조금 늦게 - P41

내 청춘, 늘 움츠려
아무것도 피우지 못했다, 아무것도. - P51

우리 다시 만날 때
너는 나를 기억할까?
내가 너를 기억할까? - P86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P113

소슬바람에 가팔라진 가슴
베어 물 듯 귀뚜라미 울고
홀로, 슬며시, 어둡게
온 생이 어질어질 기울어지는
벼랑 같은
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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