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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제목이 제목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글을 읽는 내내 잊었다가 다시 살렸다가 하였는데 작가의 깊은 의도대로 나는 끝내 놓치고 말았다. 나로서는 결국 더 재미있었던 독서가 되었으니 한탄할 것은 또 아니다. 그렇지만 약오르는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21권이 다할 때까지 여기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할 것만 같으니.
낯선 시대나 배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아직 모르는 것들이 적절한 수준에서 섞여 있어야 한다. 영 모르면 지겨워서 읽기 싫어지기 십상이고 많이 알면 시시해서 또 안 읽고 싶어지니까. 캐드펠 시리즈는 참으로 내게 알맞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원이라는 낯선 배경과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삶과 풍습에 대한 내용은 읽을수록 흥미로워지고, 인간 본성을 이루는 선악 관념이나 권력과 부를 향한 욕망에 의해 생기는 갈등은 읽어도 읽어도 새롭기만 하다. 자꾸만 더 읽고 싶어지는 것, 이보다 더한 장점이 어디에 있겠는가.
괜히 트집을 잡고 싶은 대목들도 있다. 캐드펠 수사는 어찌 이리 젊은이의 사랑에 관대한지. 사람도 잘 알아본다. 나쁜 사람인지 괜찮은 사람인지. 직감이든 관찰력이든 통찰력이든 캐드펠은 잘못된 추리나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법이 없다. 괜히 의심했다가 나만 무안해진다. 아직 작가의 서술 방향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반전이라는 건 추리소설에서 나를 늘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수도원의 수사님들이 다들 아주 현명하고 부지런한 성격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 나는 또 의심한다. 소설이라 그런가? 이렇게 괜찮은 공동체가 있었다고? 서양의 중세 수도원이라는 공간에서 이어져 왔을 삶의 형태, 궁금하고 더 알고 싶어진다. 나는 슬며시 타협하며 읽는다. 소설은 바람직한 현실을 창조하는 영역이기도 하므로.
나환자가 제목이자 주인공이다. 지금은 의학기술로 잡혔다고 보는 나병,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을 힘들게 했을 병이었을 것이다. 새삼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읽었다. 병에 걸린 사람도 병으로 죽는 사람도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에 제 목숨을 바치는 것을 보면 삶의 진실은 참으로 여러 얼굴을 지닌 것 같다.
한 권 안에 고여 있는 시간이 짧은 편이라 며칠 되지 않는다. 다섯 권밖에 읽지 않았는데 다 읽어 버릴 것을 벌써부터 아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