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 마르틴 베크 시리즈 10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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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이름을 알고서 순서대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빌려 읽기 시작했고 중간에 두 권을 구입했으며 마지막으로 이 책도 사서 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1권부터 사서 보며 수집하는 재미까지 가져볼 것을 그랬다는, 썩 아쉬운 후회도 해 본다. 그렇다고 다시 살 것까지는 아니지만. 마지막 권이 있으면 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런 식으로 달래는 척만 하고. 

작가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참 슬프다. 더 이상 그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없게 된 셈이니까. 좋아하는 사람을 잃는 것과 좋아하는 작가를 잃는 것의 차이에 대해 혼자 궁리해 본다. 각각의 슬픔이 잡히는 듯하다. 삶에서 얻고 잃는 것이 무엇이기에 우리를 들썩이게 만드는 것일까. 베크와 그의 동료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 굳이 만나겠다면 다시 그들의 젊은 날로 돌아가서 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게 영영 못 보는 것보다는 나을 일이라는 것, 좋아하는 소설의 시리즈를 끝내면서 세상을 벗어난 근심을 누려 본다. 이렇게 살아가도 된다는 듯이.

테러는 나쁘다. 테러리스트도 나쁘다. 나쁜데 꼭 있다. 누군가는 나쁜 짓을 한다. 나쁜 짓을 하는 누군가를 잡는 영웅이 또 있다. 이름난 영웅이든 이름을 알리지 못하는 영웅이든 꼭 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이름을 덜 알린 영웅들 덕분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헛된 욕심 대신에 자신이 세운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이들, 베크와 그를 도와주는 순박하고 올곧은 사람들처럼. 

나는 좀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다행스럽기도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살면서 해 온 일이 베크 경감만큼 세상에 무게를 채워 주지 못했던 것 같아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내 몫의 사명만큼은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내가 소설 속 인물이 되지 못하는 이유이겠다. 자신의 삶을 소설책 한 권 이상으로 대신할 수 있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봐 왔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는 못하니까. 그만큼 베크 경감의 매력에 빠져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인데. 

시리즈를 한창 읽을 때는 스웨덴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베크가 다니던 길을 괜히 따라 걸어 보고 싶다는 허영심 같은. 책을 다 읽고 나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제 마이 셰발, 페르 발뢰도 없고 마르틴 베크도 그곳에는 없을 테니까. (y에서 옮김20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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