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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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우리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나이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외국 소설을 읽을 때는 그러지 않는데 우리 소설에만. 내가 왜 이러나, 이참에 잠시 나를 따져 본다. 뭔지 고리타분한 듯한 깨달음이 온다. 내가 나이를 따진다는 게 썩 유쾌하지 않다. 변명으로 포장을 하고 싶기는 한데, 나이와 우리 사회를 보는 눈과의 연관성을 알아보겠다는 의도? 또는 이 나이에는 어떤 식으로 세상을 보나, 어떤 글을 쓰고 있나 확인하겠다는 의도? 어쨌든 고분고분하게 읽게 되지는 않는데 한편으로는 우리 소설가들에 대한 나의 기대감이 어긋났던 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이 작가는 1984년생이라고 하고, 우리 나이로는 35살인 셈인데, 35살은 한 사람의 생에서 어느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릴 때의 나는 35살이라면 세상에 대해 다 알고 있을 어른인 줄 알았고, 35살을 지날 무렵의 나는 35살에 눈을 돌릴 틈이 없을 만큼 날마다 살아 있어야 하는 것에 벅찼고, 이제 35살을 저만치 내려다 보는 지점에 두고 생각해 보니, 젊은 나이다. 젊은데 고단한 나이다.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돌아볼 틈이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의 시간은 후다닥 지나가고 있는 나이, 그런데도 막상 어제는 무얼 했는지 오늘은 무얼 했는지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지 막막하기만 한 나이, 그럼에도 또 내일을 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나이. 


역시 그렇다. 작가의 나이를 머리에 담아 놓고 이 책을 읽으니 한결 절실하게 다가온다. 작가라면 제 나이를 초월한 작품을 써야지 어쩌고 하는 말에 유혹되지 않겠다. 그런 책은 또 그런 책대로 있을 테고,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는 작가의 나이를 떠올리는 게 꽤 도움이 되었다. 나는 슬프고 안쓰러웠고 그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있어서 좋았다. 유머나 풍자를 잃지 않고 있다면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는 쪽이니까.      


모두 9편의 소설. 기괴하다고 말할 수 있을 소재와 배경을 그린 작품도 있고, 암담한 현실에 고달파하는 청춘의 이야기도 있고, 끝내 살아남지 못하고 떠나는 가여운 영혼을 다룬 이야기도 있다. 모두 지금 우리 현실에서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심지어 환상까지도. 이것만 있었다면 내 취향이 아닌 소설이었을 텐데 이 작가는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유머와 풍자를 적절하게 담아 놓은 것이다. 답답하던 마음을 탁 튀워 주는 문구나 나로서는 감히 하지 못할 상상으로 주인공을 살게 하는 방법들, 소설 읽는 마음을 섭섭하지 않게 해 준다. 


25살만이 아니라 35살의 청춘에게도 위로와 격려를 해 주어야만 하는 시대라는 게, 이들에게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내 나이가 쓸쓸하고 미안하다. 계속 더 읽어 주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y에서 옮김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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