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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입니다 - 딴 세상 사람의 이 세상 이야기
배명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2월
평점 :
소설가가 쓴 산문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고 기억한다. 가끔 소설가가 쓴 소설보다 산문이 더 좋다는 느낌을 받아 내가 도로 당혹스러울 때도 있는데 결국 소설가의 소설을 더 잘 받아들이는 쪽으로 도움이 되었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작가의 이 책, SF 소설가로서 SF 소설을 쓰려고 하는 작가나 읽으려고 하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글쓰기 과정을 전하는 이 책, 이 책으로 나는 이 작가의 책을 더 좋아하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지금 SF 소설을 한창 읽고 있는 독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읽으면서 어떤 SF는 내 마음에 들고 어떤 SF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구분을 할 정도에 이르기는 했다. 이건 어떤 SF 소설은 좋고 어떤 SF 소설은 좋지 않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뜻이다. 내 취향의 SF 소설을 발견해 나가고 있는 것일 뿐, SF 소설에 대한 평가나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SF 소설의 특징을 아직 내가 정리해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좋기는 한데, 무엇이? 왜? 좋은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취향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말하기가 쉽고 편하다. 아닌 건 아니어서다. SF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다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여기고 있는데 이건 계속 읽으면서 내가 찾아봐야 할 재미있는 숙제 같은 일이다.
이 책은 SF 소설에 대해 품고 있는 내 숙제를 해결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SF 작가가 이런 생각과 이런 고민과 이런 장치로 이런 소설을 써 내고 있다는 것을, 하나하나 꼬집어서 설명을 해 주고 있으니 알아듣기 아주 쉬웠다. 게다가 재미있기도 했다. 작가라는 직업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종종 잊곤 하는데(가끔 이를 잊게 만드는 글을 만날 때가 있어서) 어떤 글이든 함부로 덤벼들거나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되새기게 했다. 아무렴, 내 생에 소설가가 끼치는 고마운 영향력이 얼마나 큰데.
SF 소설을 쓸 것도 아니면서 작가가 권하는 작가로서 가져야 할 태도에 자꾸만 몰입했다. 작가의 권유가 그만큼 절실하고 깊었던 탓이다. SF 소설 독자의 입장으로 바꿔 읽는 즐거움, 덕분에 또 꼬박꼬박 누렸다. 글쓰기도 글읽기도 즐거운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y에서 옮김2021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