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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에게 ㅣ 아침달 시집 9
김소연 지음 / 아침달 / 2018년 9월
평점 :
읽는 시작은 좋았다. 좋다는 기분으로 시작되고 있었으니. 이러다가 온 문장을 다 붙잡아 보게 되는 거 아냐? 살짝 떨리기까기 했는데...
어떤 시집에서는 시 한 편을 얻고 어떤 시집에서는 시인을 얻고 어떤 시집에서는 시집 제목을 얻는다. 나는 이 시집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놓쳤을까. 쉽게 얻었다고 여기는 5대목의 구절들이 끝내 얻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남은 시를 길게 부른다. 내 눈과 귀가 잠깐 멀어버린 한 순간이 지나갔을지도.
아쉬움이 영 가시지 않는다. 내가 소홀하게 읽었음이야, 다시 처음부터 넘긴다. 멈춘 자리에서만 멈춘다. 일부러 머뭇거리는데도 한번 놓아 보낸 시는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 글은, 마음은, 노래는, 흘러도 흐르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가 있고 흐르지 않는데도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생긴다. 만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조각나 있는 나의 기억들을 잠깐 떠올려본다. 아프지 않다. 시집 속 시인의 독백과 맞춰 본다. 아프지 않다. 나는 하루하루 괜찮은 모습으로 나이 들고 있는 듯하다. 멀리 떠나오고 있어서 다행스럽다.
처음 만났던 날이 그리하여 우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게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이 처음 만났던 날로부터 그렇게나 멀리 떠나가는 게 좋았다. - P10
기억에만 귀를 기울이며 지나간 소리들을 명심하느라 조용히 오래오래 내 귀는 멀어버렸다 - P16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거대한 흉터라는 걸 알아챈다면 진짜로 미칠 수 있겠니 - P25
온갖 이름들을 덕지덕지 붙인 아파트 상가처럼 오래 낡아가는 게 원래의 소원이었다고 말하지 않고 싶다 - P32
아무에게도 악의를 드러내지 않은 하루에 축복을 보내니. 누구에게도 선의를 표하지 않은 하루에 경의를 보내니.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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