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2 조선 천재 3부작 1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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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우리는 붓글씨 수업을 자주 받았다. 붓, 먹, 벼루, 화선지 같은 필기구도 만났고 먹물로 옷에 얼룩을 묻혀서 곤란을 겪기도 했다. 삐뚤빼뚤 줄 긋기부터 한글, 한자를 쓰는 재미도 얻었다. 방학숙제로 붓글씨를 써서 제출하는 재주를 부리기도 했다. 대회에 나간다거나 특별한 보상을 받았던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나는 붓글씨에 어떤 소질도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내가 좋아서 쓰고 놀았던 셈이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붓을 잡은 적이 없으니 거기까지 그대로 추억으로 남은 한 시절의 모습이다. 내가 붓글씨를 꽤나 잘 썼고 이후로도 가까이 해 왔다면 나는 이 책을 다른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을까? 지금보다는 덜 서운할까? 추사의 생애보다 추사의 글씨보다 추사의 흔적보다 내가 얻지 못한 능력 때문에 아쉬워진 마음이 크다. 나만 소중한 게지.


추사체, 참으로 유명한 말이다. 글씨 이름에 호를 넣을 만큼. 나는 이 소설로 조선 시대 말기 양반의 삶을 보았다. 가문도 벗들도 개인의 능력도 충분하였으나 왕권을 중심으로 적이 된 쪽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유배까지 당했던 양반. 학문도 깊고 글씨도 잘 써서 이름까지 널리 날렸던 양반. 아내는 두 명, 첩은 한 명, 양자와 서자를 두었던 학자이자 정치가이자 예술가인 아버지의 삶. 많은 부분은 예측이 되었고 어떤 점은 생소했던 양반의 이야기. 작가의 냉철한 문체는 추사를 향한 내 시선을 깊이 끌어당기기도 했고 멀리 물리치기도 했다. 이 작가의 글이 아니었다면 안 읽었을 수도 있고. 나는 추사에게 그다지 호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래저래 조선 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싶지 않은 탓도 컸다. 


과천에 추사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예산에는 추사의 고택과 기념관이 있다고 한다. 나는 모르고 있었고 지금으로서는 가 볼 예정도 없다. 내 탓이 아닌 누군가의 탓을 괜히 하고 싶다. 책을 읽은 눈맛의 끝이 매우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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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3 1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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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3 15: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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