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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2022 17호 - Vol 17 :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ㅣ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17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2년 1월
평점 :
이번 호의 주제는 '나는 누구인가'이다. 너무도 많이 듣고 자주 들어서 흔하게만 여겨졌던 이 질문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답도 없이 맴돌았다. 정녕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으로 인해 설렜고 부담스러웠고 약간 아팠고 오래 흔들리고 있다. 철학이 이래서 필요한 거다. 사람을 난처하고 곤란하게 만들어주는 것, 이 난처함과 곤란함 때문에 내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각각의 글은 읽기 좋을 만큼의 분량이다. 절대로 부담스럽지 않다. 다만 내용은 분량과 달리 꼭 그러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짧은 글에서도 작가나 인터뷰를 하는 이들은 제 할 말을 다 해 놓고 있다. 주제에 맞게 각각의 글들은 조금씩 겹치는 대목이 있지만 더 많은 부분에서 다른 내용의 전문성을 보여 준다. 이게 이 잡지의 가장 큰 장점이자 생명력인 것이고. 그러다가 더러 내 능력에 넘치는 글을 만나면 소홀해지는 점,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가. 미처 말할 수 없다면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이건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나임을 스스로 인정하려면. 책에는 정체성에 대한 많은 자료가 실려 있다. 하나로 말할 수 없다는 뜻이렷다. 그렇겠지. 관계에 따른 나, 시간에 따른 나, 생물학적인 나 등등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내 안에 얼마나 많은 내가 있는 것인지 모르는 바도 아니고. 그럼에도 끊임없이 내가 나를 붙잡아 보려고, 붙잡고 있으려고 애를 쓰고 있어야 하니.
바깥 세상의 시끄러운 소식들로 인해 정신이 사나워지고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저 쉽고 편한 책을 읽으며 속마음을 가라앉히다가도 이 책과 같은 책을 만나면 기분이 달라진다. 아주 좋은 쪽으로. 무엇보다 깨어 있으라고 하는 것 같아서,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깨어 있는 이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같아서, 이 말을 내가 듣고 싶어했던 것 같아서.
당신은 누구인가를 물어보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를 먼저 물어 봐야 할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형태로 진행되고 있든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이전 시대에 만들어 놓았던 결과물일 것이므로. 현재가 우리 과거의 수준을 증명하는 모습일 것이므로. 그리고 지금 묻는 '나의 정체성'과 '우리 사회의 정체성', 이 물음과 답을 얻으려는 노력이 바로 내일의 우리 사회를 결정하게 될 것이므로.
특별히 마음 쓰이는 대목을 골라 타이핑을 했다. 과거, 특히나 아프고 힘든 과거의 기억(개인의 것이든 사회의 것이든)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만 믿고 있었던 바가 어떤 경우에는 잊혀져야 한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망각 또한 삶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방편 중 하나라는 것을. (y에서 옮김20220207)
실제로 꽤 많은 심리학 연구에서 밝혀진 결과는 부정적인 경험을 잊는 것이 사회 정체성 발달에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순간들을 모조리 기억한다면 아예 꼼짝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잊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념적인 차원에서 미래의 자기 모습을 자유로베 상상하며 변화와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망각은 사회 정체성 발달은 물론이고 정치적 의미와도 연관되어 있다. 나는 과거를 뒤로 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감으로써 우리가 사회에 변혁과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망각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보다 폭넓은 사회적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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