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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80주년 광복절을 맞아 이 책을 읽는다. 책은 2022년에 나왔고 그때 바로 구입했는데 가까이에 두고만 보면서 읽지는 않았다. 주인공과 배경에 대한 대략의 내용은 역사 지식으로 알고 있었고 안중근을 만날 용기는 없었으며 그 어두운 시절로 들어가기가 몹시 꺼려졌던 탓이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읽었고 쓴다. 나는 여전히 비겁하고 소심하게 움츠러들어 있지만, 이런 채로 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 글을 써야 할 만큼의 용기를 낸다. 내가 지금 이렇게라도 살 수 있도록 해 준 그 멀고먼 사명을 기려야 한다고, 잊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책은 자꾸 나를 끌어당겼다. 고맙고 또 두려웠다.
역사 속 인물을 되살려 이야기하는 일은 쉬울까, 더 어려울까. 소설가들이 노년에 역사 속 인물을 다루는 글을 써 낸 것을 종종 본다. 젊어서는 가공의 인물을 다루다가, 다루는 중에 역사 속 인물을 저마다의 취향대로 만나게 되는 걸까. 그리고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일생을 취재하게 되는 것일까. 취재하는 중에 또 인물의 일생과 소설가 자신의 일생을 동시에 짚어보고 비교하고 평가하면서 글을 써야만 하게 되는 것일까. 오래 전 사람 안중근이 지금의 소설가 김훈에 의해 살아난 것처럼, 오래 전 사람 안중근을 살려 내어 지금의 소설가 김훈이 새로 사는 것처럼.
나는 김훈의 안중근을 읽으면서 안중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함께 읽는다. 이 일은 나에게 퍽 흥미롭고 유익하다. 어떤 인물을 사이에 두고 작가와 나 사이의 거리를 헤아리는 일의 재미와 가치를 알고 있는 덕분이다. 지어낸 인물 이야기도 재미있고 실제 있었던 인물의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대상과 작가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전해 받는 기분이 된다. 둘 중 실제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는 가상의 인물 이야기보다 훨씬 무겁게 다가온다. 읽는 내내 자주 떨릴 정도로, 내 삶이 이 떨림만큼이나 흔들릴 정도로, 흔들리다가 주저앉고 흔들리다가 솟구칠 정도로. 하얼빈의 안중근으로 인하여 이번 8월에 얼마나 흔들려야 했던지 속수무책이었다.
구구절절하지 않아서, 애절하지 않아서 얼마나 마음 아프고 절망스러웠는지 모르겠다. 작가의 문체는 여름을 단번에 겨울로 만들어버린다. 감상은 보이지 않고 묘사로 채운 글. 차갑고 냉정한 무게를 담아 읽는 이의 마음 바닥을 쓸며 울리는 글. 지독히도 서늘한 문장들 안에서 안중근의 말씀 없는 말씀을 들었다. 고백이 되지 않는 고백을 들었다. 더 아팠고 더 시렸고 더 힘들었다. 이래서 내가 읽고 싶지 않았단 말이다. 이리 될 줄 짐작했으므로, 내가 안중근을 아는 만큼 김훈을 아는 만큼 고달픈 독서가 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으므로. 우리의 광복절은 여름이지만 안중근의 하얼빈은 더없이 추운 곳이어서 내 독서도 못내 위험하였다.
그러나 끝내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 읽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읽어도 읽어도 모자란다는 것도 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다 안다면서도 어찌하지 못하는 못난 자의식도 느낀다. 안중근의 사명, 안중근의 남겨진 가족들의 삶, 안중근의 벗들의 삶, 역사의 의미 혹은 교훈들, 말로만 아는 척 해온 무수한 나의 교만들. 우리는 지금 옛사람의 어깨를 짚고 살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과 덜 훌륭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과 나라를 팔아 먹은 사람들까지 모조리 영향을 받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받으면서.
답 없는 답을 따라 오늘도 살고 읽는다. 하얼빈에서 외로웠을 모든 선조들을 기리며 내 몫의 사명을 다하고자 한다.
이토를 조준해서 쏠 때 이토를 죽여야 한다는 절망감과 복받침, 그리고 표적 너머에서 어른거리는 전쟁과 침탈과 학살과 기만의 그림자까지도 끊어버리고 둘째 마디의 적막과 평온을 허용해야 할 것이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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