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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재나 ㅣ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평점 :
스웨덴에 가 본 적 없지만, 스웨덴의 도시 이름을 아는 것이라고는 수도인 스톡홀름 하나뿐이지만, 낯선 도시의 낯선 거리 이름들이 꽤 친숙하게 느껴지는 여정이었다. 그것도 범죄 수사를 따라가는 것으로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마르틴 베크 형사로서는 범인을 잡기 위한 경로였겠지만 나로서는 일없이 돌아다니는 기분을 느끼기에 아주 알맞았으니까. 북유럽의 도시를 이런 방식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니, 다시 떠나서 헤매고 싶다. 그렇게 하려고 한다. 아직 책이 많이 있으니까.
범죄추리소설을 몇몇 나라별로 읽다 보니 그것대로 구별되는 특징들이 있다. 살인 사건 자체는 차이가 없겠지만 스웨덴에서는 이런 형사들이 이렇게 수사를 하는구나, 실제로 어떻게 수사하는지는 전혀 모르고 영화나 소설로 본 게 전부이지만 이건 이것대로 추측하면서 즐기니 재미있다. 범인은 반드시 잡힐 것이고(소설이니까), 주인공인 형사는 감탄할 만한 능력을 기어이 발휘할 것이고, 이 사실을 믿게 되기까지 독자인 나는 끊임없이 의문에 시달렸고, 결국에는 믿게 되고 반하게 되고 다시 찾게 되는 것으로.
이 책의 주인공인 형사 마르틴 베크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탐정이나 형사들과 결이 좀 달랐다. 잘난 척하지도 않고, 비상하게 머리를 굴리지도 않고, 유머가 있다거나 인간 관계에 특출나다거나, 추리나 조사 방법에 자신만의 비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속으로야 이런 장점을 다 갖춘 인물이라고 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에서 내가 이렇게 느꼈다는 뜻이다. 다만 하나, 끈기!!! 묵묵히, 집요하게 매달리고 탐구하고 찾아내는 과정만큼은, 아, 이 사람, 정말 무서운 형사의 기질을 갖고 있구나 여겨졌다. 그러면서도 아내와의 불편한 관계나 심드렁한 태도는 얼마나 현실적으로 보이던지. 이게 또 색다른 매력으로 보였으니.
이 형사가 가진 장점을 잘 모른 채, 후다닥 범인을 잡아 내는 능력을 기대하고 읽었다면 오래 감탄하지 못했을 것 같다. 한 시간짜리 미국 범죄수사 드라마나 두 시간짜리 영화에서는 금방금방 범인을 잘도 잡아 내는 걸 무수히 보아 온 탓에 몇 달씩 걸리는 수사 과정의 이야기는 지루하다고 느꼈기 쉬웠을 테니까.
범인을 잡기 위해 범인보다 먼저 희생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희생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꾸준히 파헤치고 정보를 모으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왜 희생되었는가 하는 점을 새삼 생각해 보는 계기였던 셈이다. 희생자에게 어떤 잘못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라 범인이 범죄의 목표로 삼는 대상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게 아주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마르틴 베크 형사의 다음 활약담을 기대하게 되었다. (y에서 옮김2022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