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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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살 만하든 그렇지 못하든 누구나 바라는 세상, 이를테면 이상향이라는 게 있을 것이다. 평범한 바람 속에 그리는 곳이라면 지금 내가 사는 곳보다 더 좋은 쪽일 테지. 그런데 어떤 때에는 지금 처한 곳보다 조금 더 비현실적이면서 조금 더 실감나게 못난 세상을 그려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674층 건물 도시처럼. 


건물 도시의 겉모습은 많이 비현실적인데, 한 겹만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 사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결국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사는 사람의 문제라는 뜻이겠다. 욕심과 차별과 기득권과 우월감과 지배욕 따위들이 집약되어 드러나는 곳. 작가는 절묘하게도 이 모든 문제 사항들을 소설 안에 버무려 놓았다. 어쩌면, 어쩌면, 이렇게 잘도... 현실에서는 짜증과 불만이 넘치기 짝이 없는 요소들이 소설 안에서는 유쾌하고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고 있었으니. 


2009년에 나온 책이 십 년이 지나 새로 출간된 책이다. 그 때는 이 작가에게 관심이 없었는데 십 년 사이에 호감도가 많이 높아졌다. 이 또한 세월의 변화이겠지. 2009년 작가의 말에서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L씨가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말, 이번 책에서 L씨가 누구인지 밝혀 놓았다. 작가의 말을 먼저 보고 소설을 읽었는데, L씨가 어떻게 영감을 줬다는 것인지 알아채는 대목마다 또 얼마나 즐겁던지. 


SF소설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소설집이다. 현실에는 없는 세상이다. 아니, 내가 모르는 곳에 있을지도. 꼭 있을 것만 같다. 의심이 들지 않는다는 게 짜증스러우면서도 유쾌하다. 소설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y에서 옮김20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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