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 괴테와 마주앉는 시간
전영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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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마음에 드는 그림이라 고른 책이다. 작가에 대해서도 여백서원에 대해서도 작가가 평생을 괴테에 대하여 연구한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이만큼 다 알았다. 표지 그림에 반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서운했을 일인가. 


위대한 사람은 그 사람 자체로도 위대할 수 있다. 더하여 그 위대한 사람을 흠모하는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이 책의 사정과 비교해서는 안 될 만큼 가벼운 말이겠지만 이런 것이 덕질의 근본인가 한다. 흠모하고 응원하고 따르는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그 사람 자신도 바뀌게 되니까. 


어려서부터 내게도 흠모하는 대상이 자주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흠모는 지극히 가볍고 순간적이면서 감정적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무겁고 진지하였더라면 나의 생도 지금과 많이 달랐을까? 그러지 못했을 것을 알면서도 섭섭해진다. 딱 이만큼이 내 그릇의 크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작가가 부러웠기 때문이다. 괴테라는 사람도 부럽고 괴테를 공부한 작가의 열성도 부럽다. 내게는 없었을 이 자질. 


작가는 계속 제안한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무시할 것인가, 어쩌면 나는 어려서 익히 들었음에도 결국 내 것으로 삼지 못했던것 같다. 그 시절이라고 훌륭한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었을 것이고 내게도 누군가 훌륭한 당부를 해 주었을 것이나 알아듣지 못했던 것. 지금의 작가가 젊은 영혼들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심정이, 내게는 이제 이 말들이 들리고 이 상황이 보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말해 주는 이가 있어도 무안하겠다. 


작가는 경기도 여주에 여백서원을 짓고 괴테의 작품들과 살고 있다고 한다. 하나를 깊이 연구하는 자세를 갖지 못하고 여럿을 넓고 얕게 아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온 나를 돌아본다. 나는 또 이런 사람이니 이대로 받아들이련다. 길은 달라도 방향은 같다는 것을 믿으니까. 이 책처럼 좋은 글을 읽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나는 나대로 충분히 체험하고 있으니까.

시인이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분의 글을 읽고 내가 어찌 함부로 살 수 있을까요. 워낙 약하신 분이라 이만큼 버텨주시는 것도 너무 고맙지만, 이런 귀한 분들이 정말이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이 땅덩이 위에, 긴 시간 동안 계셔주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 P60

어디서든, 장엄한 자연 속이면 더더욱, 자신을 만나는 순간은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인간과 그 공동체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면 더더욱 그렇지요. 만난 것이 굳이 운명까지는 아니어도, 스스로 느낀 그 어떤 기쁨과 놀라움을 평생의 업으로 이어가는 것이라면, 그런 지혜를 확인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 - P157

세상이 진정으로 나아지려면, 정치인들부터 부디 주관을 내려놓고 사심 없이 의논하고 지혜를 모아야 하겠지만 우리가, 무력감만 끝없었던 시대를 지나 이렇듯 새로운 걸음도 뗄 줄 아는 우리가, 우리의 뜻에다 꾸준함을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을 시작하든 첫 마음을 잃지 않고, 무엇보다 누구든 제자리에서 하던 일에서 손을 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각자 자기 일을 성심껏 해가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불의에 대해 눈 부릅뜰 줄 알아야겠지만 주변 또한 돌아볼 줄 알고, 분수 넘게 이것저것 사느라 혹은 허겁지겁 남 따라가느라 허덕이던 손길로 제 옷깃도 좀 여며볼 줄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 우리의 자긍심을 세우는 일이 아닐까요. 모두가 뜨거운 가슴으로 자기 안의 등불을 켜는 시간이야말로 그 모든 것을 위한 성찰의 시간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P161

돌아보면 글을 배워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만나고, 글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또 같은 글을 읽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도 되고…… 얼마나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는지, 그 사람들의 마음속이야말로 제 삶의 천상적 지분인 것 같습니다. - P190

세상 무엇이든 더이상 놀랍지 않을 때, 그 무감각은, 생물학적 연령이 어떻든 이미 실질적인 삶의 종말인지도 모릅니다. - P203

남을 아껴주고 키워줌으로써 미미했을 수도 있는 그들 자신의 삶이 얼마나 찬란히 빛났는지, 빛나는지를 꼭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 P209

도토리 키 재기 하느라 여념이 없고, 자기보다 조금만 더 커 보이면 미워하느라 공연히 스스로를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고 공기까지 오염시키는 일, 그런 좀스러운 일은 웬만하면 하지 않아야 우선 각자 저 살기가 좀 나아질 것 같고 사회가 건강해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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