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봄비를 맞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604
황동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5월
평점 :
시인의 나이가 많다(1938년생), 많은 편이다. 시는 시인의 나이에 따라 조금 다르게 쓰이기도 하고 다르게 읽히기도 하는 것 같다. 시인을 모르고 시인의 나이를 모르고 시만 읽었다면 읽는 내 마음이 지금과 어떻게 달랐을까. 영영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삶의 풍경은 어떠할까. 이 시인이 그려 놓은 시 속의 세상과 비슷해 보일 것 같다. 거창하고 거대하고 웅장한 것들보다 작고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 마음이 먼저 쓰이는 순간을 계속 느끼게 되는 시간들. 그 시간 안에서 살고 죽는 것에 문득 가까워졌다가 잠시 물러났다가 하는 일을 되풀이하는 마음의 동작들. 낯설지 않게 조금은 반갑게 만났다. 나도 어느 새 나이들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된 모양이다.
시인이 젊어 쓴 시들보다 쉬운 인상을 받으면서 편한 분위기에 잡혀 읽었다. 그래서 조금은 심심하게 조금은 홀가분하게 읽었다. 어려웠어도 쉽게 읽었을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약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치료약이든 영양제든 먹고 버티고 또 누려야 하리. 시인이 약을 챙겨 먹느라 놓치는 일상의 순간들이 애달팠다. 이 애달픔이 시가 되어 준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y에서 옮김20240713)
이 세상에 다 써버린 목숨 같은 건 없다! - P19
아끼려 들다 섭섭게 한 게 어디 사람뿐이랴. - P29
기다렸던 꽃이 질 때 뜻밖에 혼자 남게 될 때 다저녁때 예고 없이 가랑비 뿌릴 때 내 삶의 관절들을 온통 저릿저릿하게 했던 시들. - P32
아침이 가고 저녁이 온다. 혼자 있음. 혼자 없음. 지내다 보니 있음이 없음보다 한참 비좁고 불편하다. - P51
외로움을 징하게 느낀다는 건 바깥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는 거 아니겠니. - P54
‘세상 사람들 뭐라 뭐라 해도 꽃이 노래하다 죽어야 열매가 열지.‘ - P91
참맹세든 헛맹세든 지난 맹세는 다 그립다. - P95
별빛 듬뿍 받고 풀벌레 소리 속을 담담히 걸어 커피와 시가 있는 아침에 가닿을 거다. - P99
우연한 만남이 주는 놀라움 섞인 반가움은 기대했던 만남이 주는 즐거움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우연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세상 사는 즐거움 80~90퍼센트를 잃을 수 있다. - P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