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머나먼 바닷가 ㅣ 어스시 전집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평점 :
어스시의 세 번째 이야기. 대현자인 게드는 왕자인 아렌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난다. 무엇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찾아 떠나는 이야기. 그 과정이 대단하다. 어쩌면 지극히 단조로울 여정을 이토록 섬세하고 매력적으로 그려 낼 수 있다니,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기도 휘황찬란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나는 끝내 바다 여행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라고 할 이도 없겠지만 너무도 고단하고 너무도 광활하며 너무도 막막해서 조금도 동경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왕은 혹은 한 사회의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이런 사람을 길러 내는 일은 어떤 일일까. 게드가 아렌을 데리고 떠난 길에서, 둘이 끝없이 묻고 답하고 의심하고 의문을 자아내는 동안에 왕자인 아렌은 배우고 깨닫는다.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동료의 목숨을 지켜 주기 위해 버텨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면서 살고 죽는 것의 본질을 파악하기까지 참으로 길고 긴 여행을 한다.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자꾸만 철학 소설로 읽고 있는 내가 대견스러울 정도로 놀라운 전개다. 나는 이제 어스시의 세상을 이상향으로 삼을 만큼 소설 속을 걸어 왔다.
이 작품으로 영화도 나오고 애니메이션도 나온 것으로 안다.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연출이 부족했던지 각색이 부족했던지 안 봤으니 흥행을 하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고 영상화 시키기에 쉽지 않은 글인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글로 표현된 묘사는 거대하기만 하여 상상만으로도 벅찬데 이를 촘촘히 색으로 모양으로 형상화시키려면 어지간히 고된 작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으니까.
읽는 이의 성향에 따라 이 책을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주인공인 두 사람이 여정에서 만나 부딪히는 장벽이 긴장감을 높인다거나 가슴 떨리는 감동을 불어일으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밋밋한 편이다. 이 정도로 무슨, 싶을 정도로. 그래서 영화 장르에서 덜 주목을 받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화려한 볼거리는 있었겠으니 밀도 높은 갈등 관계가 드러나지 않으니.
대신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는 알듯 모를듯 여운을 남기면서 의문도 던지면서 이어진다. 알아들으려면 알아듣고 못 알아들으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나는 드문드문 알아낸 독자다. 이렇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못 알아듣는 대목이 답답하지 않다는 것도 이 작가의 글의 매력 중 하나다. 모른 채로 몽롱한 채로 불투명한 채로 넘어가도 그것대로 또 근사한 기분을 갖게 해 주었으니까. 그렇지, 살고 죽는 것에 명확하고 뚜렷한 답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일에서는 더한 노릇일 테지.
소설에서 아렌은 결국 대현자의 가르침을 잘 받게 된다. 대현자 또한 아렌을 통해 배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가르치고 배우는 건 늘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세상은 넓고 한 사람의 생은 짧고 또 길다. 목적이나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게 생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쩌면 그런 것들이 다 부질없는 허상인지도 모르겠다. 뭘 몰라서 매달린 게지.
이 시리즈는 권에서 권으로 넘어갈 때 시간적 틈이 크다. 그래서 이어지는 느낌이 적다. 4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려나.(y에서 옮김20200528)
우리가 삶을 지배하는 힘을 갈망하면, 끝없는 부와 철석같은 안전과 죽지 않는 생명 같은 것을 얻으려 한다면 그때는 소망이 탐욕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지식이 그러한 탐욕과 합쳐지면 그땐 악이 생겨나지. 그러면 세계의 균형은 흔들리고, 파괴가 저울을 더 무겁게 내리누르게 된단다. - P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