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급 한국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3월
평점 :
나는 소설가가 아니고 앞으로도 소설가가 될 생각은 전혀 없고 그저 소설을 내내 읽으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소설을 찾아, 내 취향인 소설을 찾아서 즐겁게 헤매고 있을 따름인데. 이 작가의 소설에도 서서히 빠져들고 있어서 나름 흐뭇하게 여기고 있는 중인데.
나는 글을 읽는 내내 자꾸만 소설가에 이입되고 있다. 이 점이 내게는 단점이 된다. 마음이 고단해지기 때문이다. 작가에게는 어떻게 여겨질까? 도움이 될까, 거북함을 주게 될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현진건의 빈처를 배우면서 소설가의 꿈은 접었다. 누가 소설가가 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이미 그때부터 이건 아니다 싶었으니까. 잘 나가는 소설가보다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것 같은 소설가들이 훨씬 먼저 다가왔다. 서늘하게 접은 꿈 하나.
작가는 많이 배우고 잘 배우고 공부도 잘했으면서 마침내 소설가가 되었다. 그동안 아주 힘들었겠다. 독자인 나는 이만큼밖에, 더 이상은 알아줄 수가 없다. 소설가의 사명, 소설가의 보람, 소설가의 영광 같은 것들은 모를 일이고, 나는 그저 편하게 즐겁게 유쾌하게 읽고 싶을 때 읽으면 그만인 독자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자꾸만 내게 죄책감을 갖게 했다. 읽고 있는데도 불편하게, 흥미롭다고 느끼고 있음에도 답답하게.
소설은 가정이고 허구이고 삶이다. 아는 만큼 즐기고 있다. 소설이 없다면 생은 얼마나 메마르게 될까, 내게는 텔레비전보다 영화보다 음악보다 더 소중한 장르다. 그런데 소설가는, 소설가로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다른 예술가도 처지는 비슷하겠지만 나는 소설가에게 특별히 몰입한다.(시인에 대해서도 비슷한 마음이기는 하다.)
소설 쓰는 사람들의 처지가 지금보다 나아졌으면, 전국의 도서관에서 우리 소설가들의 작품을 일정한 권수 이상 의무적으로 갖추어 주었으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책 값을 걱정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장치가 만들어졌으면. 무엇보다 소설가가 제 살림 걱정을 덜고 소설을 쓸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세계로 뻗어 나가는 K-노래도 K-영화도 K-스포츠도 좋지만 K-소설도 더더더.
작가의 이름이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작가의 현실과 작품 속 배경이 얼마나 비슷하며 얼마나 다른지를 따져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게 남의 삶은 어차피 소설로 읽히니까. 장르가 무엇이든 남의 삶을 읽고 배우면서 내 삶을 돌아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구입하여 읽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는 것이 황송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