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159
이윤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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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나라는 사람은 좋아하는 어떤 작가를 만나면 거의 맹목적이 된다. 처음에는 다소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모저모 뜯어서 생각하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구석에 실망을 표하기도 하고 짜증스러워하기도 하다가 일단 그 단계를 넘어서게 되면 무조건 좋은 시각으로 작품들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비평가들이 뭐라고 말을 하든, 다른 독자들이 뭐라고 불평을 하든, 한번 믿음을 바친 절대자에게 순종하는 신도처럼, 정작 작가분은 내게 아무런 부탁을 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저 좋아서 읽고 또 읽고 되짚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내가 기쁘고, 부족하면 내가 도리어 안스러워져서 어쩔 줄 모르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이윤학 시인의 작품의 경우, 내게 그러한 대상이다. 다른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으나 나에게 그의 시는 특별나지 않아서 좋고, 엄살을 부리지 않아서 좋고, 꾸미지 않아서 좋다. 시라는 것이 다른 글과 달라서 특별나야 하고 엄살을 부려야 하고 꾸며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의 시는 그런 점들이 과장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내 마음을 울린다. 시 속에 담겨 있는 그의 세계가 어둠에 시달리고 있어도 나는 편안하였고, 그가 깊은 슬픔을 노래하고 있어도 편안했으며, 괴롭거나 절망스러워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도 나는 편안한 마음을 그대로 누릴 수 있었다. 설사 시인이 그런 내게 어떤 배신감을 느낀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익숙한 편안함이다.

한때는 시를 읽고 가슴이 뛰어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금방이라도 뛰어나가야 할 것만 같은 충동에 어찌할 바를 모르도록 읽는 사람의 감정을 돋우는 것이 시의 막중한 임무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그래서 피가 끓어야 한다느니, 가슴이 터져야 한다느니, 우리 모두 손을 잡고 거리로 나가자고 하는 노래들에 빠져서 스스로 도취된 적도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찬 울림을 기대하고 살았던 시절. 그런데 어쩌다 내가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시를 읽게 되었을까.

'얼마나 많은 순간들이 겹쳐 지나간 것인가, 그리고 꽃이 시든다는 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가(64p)' 나는 무척 늙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니다. 금방 나는 설레고 곧 편안해진다. 시인의 말을 머리 속에 그리며 무심코 지나가면서 보는 노인들, 나무들, 장삿집 간판들, 그곳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 그리고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무수한 벌레와 고양이와 개들...꽃들. 설령 시인이 노을 속에서 자신의 무덤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59p)고 하더라도, 그 노을이 또한 나의 무덤처럼 황홀하게 보여지더라도 나는 내 눈에 비치는 모든 것에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시인에게 나는 또 맹목적으로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다.(y에서 옮김200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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