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 날의 요리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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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너무나 말이 되도록 펼쳐 보이는 작가의 세상이다. 나쁠수록 더 유쾌하게 바꿔 놓은 설정들, 이게 뭐야 싶다가도 차라리 이렇게 되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 만큼. 10일 후에 지구가 끝이 나든 5년 후에 지구가 끝이 나든 그 끝 날에 함께 또 홀로 있어도 괜찮을 것만 같은 이 세상살이. 결국 살게 하는 힘은 맛있는 요리에서 나온다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보다 더 근사한 행복은 없을 테니까.

요리를 잘하는 요한, 지구의 끝 날을 계산하는 페트라, 가상 아바타를 이용하여 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는 앙네스 할머니. 앙네스 할머니처럼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나로서는 아주 중요하다. 고상한 할머니말고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발랄한 할머니. 환상적인 조합이란 이런 사람들의 모임을 말하는 게 아닐까. 아무도 정상인이 아닌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다들 정상인인 세상, 조금 더 나가고 조금 덜 나갔을 뿐, 나와 같지 않다는 이유로 함부로 나무라서는 안 된다. 이 또한 너무 자주 잊고 있다는 게 문제. 

나쁜 사람은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 바람이 고루 이루어지는 곳이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일 텐데. 내 욕심 차리자고 가까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는 사람, 거짓말로 속이고는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는 사람, 다른 사람의 정서를 학대하고 통제하여 제 마음대로 조종하는 사람,... 나는 소설 속 나쁜 인물들을 헤아리다가 자꾸만 현실의 나쁜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다. 그리고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나의 나쁜 습관들도 떠올린다. 다른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한다면 나도 벌을 받는 게 당연한 노릇인데, 나 정도는 슬 빠져도 되지 않나 하는 비겁한 이유까지 마련하면서.

작가는 지구의 끝 날을 마련해 놓고 지구 전체의 운명도 보여 주려고 한다. 2011년 배경으로 오바마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등장하는데 2025년인 지금 이 소설을 읽는 내게는 변한 게 없어 보인다. 사람 몇몇이 바뀌었을 뿐 지구 위 어리석은 생명체들이 하는 짓이란 달라진 게 없으니까. 어리석음에서 얻는 웃음은 또 얼마나 서글픈 것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어리석음과 서글픔의 감정에서 놓여 나오지 못했다. 

페트라가 지구 끝 날을 제대로 계산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현실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다 같이 망하자는 것으로 보이는데 딱히 섭섭할 것도 없겠다. 망하기 전에 나쁜 사람들의 엉덩이를 걷어 차 주거나 맛있는 요리와 와인을 한번 더 못 먹는다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겠지만.(y에서 옮김202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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