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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조 씻기기 - 제31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ㅣ 민음의 시 189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난감하다. 할 말이 없는데 꼭 해야 하는 상황처럼. 시는 읽었고, 읽었으나 죄다 빠져 나갔고, 남은 시어는 없는데 빠져 나간 자리에 흔적은 남아서 난감하게 만든다. 뭐라도 남겨 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겨져 나는 나를 달래 본다.
읽기는 쉬웠으나 넘기기는 쉽지 않았다. 읽는 나는 시로부터 자꾸 떨어져 나온다. 내 취향이 아니라거나, 내게 머무는 구절을 만나지 못했다거나, 내 수준이 이르지 못하고 있다거나, 나를 위한 변명을 나열한다. 민망하다. 이러려면 굳이 쓰지 말아야 하는데, 혹시라도 놓친 시어나 의도가 있었던가, 안절부절못하며 메모해 두는 마음이다. 미련이 깊은 시집이다.
읽는 내 쪽에 문제를 만들어 본다. 시집에 개종이라는 시가 5편 나오는데 한 편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라는 사람은 지금으로서는 개종이 안 되는 탓이다. 뒷날의 일은 모르겠고 마음을 바꾸지 못하니 글로도 시로도 바꾸지 못한다. 아닌 것은 아닌 대로 둘 일이다. 아주 아닌 것은 아니었다는 것만 두 줄로 남긴다.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에서 나는 단 하나의 여름을 발견한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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