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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3 - 듄의 아이들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평점 :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토록 느리고 이토록 환상적이고 이토록 모호한데 지루하지가 않은 소설이다. 어떻게 이렇게 길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나 몽롱한 기분으로 계속 읽게 할 수 있는 것일까. 낯선 용어들로부터 인물들의 의식 속 서술 형태까지 도무지 친절하지 않은데, 표현이 던지는 의미들을 미처 다 파악하지 못하고 모른 채로 넘기는 기분이 수도 없이 드는데도 읽혀진다. 읽혀지고 이해가 되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말로 이렇다저렇다 설명할 수는 없는데 내 머리는 끄덕끄덕 하고 있는 상태. 희한하다고 할 수밖에.
3권은 폴과 챠니의 쌍둥이 아이들(레토와 가니마)과 폴의 여동생인 알리아가 폴이 사막으로 떠난 뒤(폴은 죽은 건지 살아 있는 건지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서로 대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폴의 어머니인 제시카, 알리아의 남편인 던컨, 폴로부터 쌍둥이를 보호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스틸가, 거니 할렉, 이룰린 등등 2권에서 이어지는 주요 인물들이 둘의 대결 상황에 이리저리 얽혀 있다. 저마다의 목숨을 걸고 벌이는 갈등 혹은 대치 상태. 지구로부터 멀리멀리 떨어진 우주라고 해도 지구 역사보다 훨씬 발달한 미래 우주라고 해도 인간이 빚어내는 갈등이란 지금이나 옛날이나 먼 훗날이나 조금도 달라질 게 없어 보인다는 암담함이라니. 인간이라서? 인간이니까? 인간 주제에?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놓을 수가 없는 독서를 했다.
책은 두껍고 글은 많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제시하는 머리말도 읽기에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이 작가의 상상력은 한계가 없다. 이 소설이 이후 SF 영화들에 도움을 주었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조금은 알겠다. 영화 이전에 이 소설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이렇게 알게 된 셈이다. 거대하고 거대해서 내 능력으로는 헤아릴 수가 없다.
미래를 안다면, 다른 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막연하나마 상상으로라도 좋을 것 같기만 했다. 그 미래에,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대비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제는 아주 조금이나마 짐작이 되면서 바랄 만한 상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폴이, 레토가, 가니마가 보이는 미래와 들리는 남의 생각 때문에 얼마나 괴롭고 힘들어 했는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네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금과 같은 불완전하고 부족한 상태여서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소설은 길고 감흥은 깊다. 이 소설을 읽고 있을 때만큼 우주의 크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좀 대견하다. (y에서 옮김2023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