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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체육과 시 ㅣ 일상시화 5
김소연 지음 / 아침달 / 2024년 11월
평점 :
쉽게 읽히는 시가 아니었다. 읽고 있으면 자꾸 마음이 다른 길로 빠지는, 빠지다가 멈칫 시 안으로 들어서지만 다시 금세 벗어나는, 시도 고달프고 시를 쓴 시인도 고달프게만 여겨지고 시를 읽는 나도 고달프기만 하는 독서였다. 안 읽고 살면 좋으련만, 되도록 희희낙락 살 수 있으면 고마우련만.
알아보는 만큼만 알아본다. 작가는 서운할 수 있겠으나 독자인 나는 이대로도 괜찮다. 아프게 썼을 시를 아프지 않게 읽어도 내 책임, 원통하고 분한 마음으로 썼을 시를 무료하게 읽어도 내 책임, 나는 시 사이에서 흔들리지도 헤매지도 않았다. 그저 안타까웠다. 우리들의 노래는 어찌 한 소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십 년 전에도 삼십 년 전에도 이천 년 전에도 내내 이렇게 부르고 있었을 것만 같으니. 한심한 게 아니라 위대한 세상이어서 이런 것일까.
시인의 다른 시집을 찾았다. 거꾸로 사는 맛을 찾아가 볼 테다.
책 읽는 벗(woojukaki)의 선물.(y에서 옮김20250227)
우리가 우리조차 알아보지 못할 때
누군가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걸
잠깐 그 이름을 모자처럼 쓰고 있다
벗어도 좋다는 걸 - P15
반성할 것도 남아 있지 않으면서
후회할 리도 없는 것을 자꾸 되짚어보면서
달리 믿을 구석도 없으면서 - P16
막연한 가능성, 느슨한 비판, 낭만적인 채색을 미끄럽게 곁들이는 수고 정도에 그친다. - P34
언어는 불과 칼처럼 유용하게 사용하는 중에 필연적으로 사용자를 다치게 한다. 언어는 본성이 사나운 것이다. - P39
우리는 올바른 애도를 하고 싶다. 그릇된 삶 속에서도. 올바른 애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도. - P45
시는 인간이 언어로 그을 수 있는 가장 큰 포물선이다. - P70
시적인 재능은 시 속의 문장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말해야 할 것과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냉정하게 구분해내는 데에 있다. - P79
오늘의 위기가 무사히 지나가고 있기를. 작은 위무를 얻기 위하여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친구가 더 잘 인지하기를. 어떤 혹독함은 이런 방법으로만 버틸 수 있다. 액션 영화 속 주인공의 과장됨처럼. 시트콤 드라마의 나무하는 가짜 웃음소리처럼. - P99
좋은 소설은 기억하고 있던 것을 되새김질하듯 기록하지 않는다. 비어 있던 기억의 구멍들을 두터운 진실들로 채워나가기 위하여 기억하지 못했던 기억들을 비로소 소환하거나 발명한다. - P108
쓸모가 없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쓸모가 너무 많아서 아름답다. 쓸모가 있으려고, 아름다우려고, 애를 쓰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 - P133
한번도 만난 적 없으면서도 이름이 적혀 있고 생몰연도가 적혀 있는 묘비 앞에서 한 사람의 생애를 막연하게 그려보듯, 나의 시도 그런 모양으로 누군가의 앞에 묘비처럼 낯설고도 낯익게,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었던 듯싶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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