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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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좋아지는 이유 중의 하나, 묘사에 있다. 같은 풍경, 같은 심리를 어떻게 글로 그려 내는가 하는 점. 독자인 나로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할 수 없는 표현력을 보여 주는 글에 빠진다. 이 작가의 글처럼.

소설 안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차례로 흐르고, 사람들은 살고 또 사라진다. 여섯 편의 소설은 각기 다른 배경, 다른 주제를 보여 주지만 사람이 사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또 이렇게 마음 아프게 빠져들기도 하는 것이고.

소설들의 제목에서는 가볍고 경쾌한 낱말들이 보인다. 이제는 알겠다, 가벼운 제목일수록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주제가 그리 무겁지 않다면 소설가가 무겁게 삶을 다루려고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또 아닌 것처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가벼운 점심'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피아노'는 경쾌하기는커녕 무겁기만 했으며, '하품'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고전적인 시간'은 낭만도 없이 허름하기만 했고, '나의 루마니아 수업'은 어둡고 쓸쓸하기만 했다. '파수꾼'에서는 어쩌자고 고양이를 자꾸 불러내는 것인지.

전체적으로 밝지 않은, 밝을 수 없는 소설들이었다. 그런데도 어느 한 편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선물로 받은 책인데 준 이에게 돌려 주고 싶었다.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며, 같이 읽는 사람이 되자며, 같이 이 우울의 시대를 건너 보자며.

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계속 관심이 생겨서 반갑다.

표지 그림이 퍽 인상적이다. 표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 쪽인데 강하게 이끌렸다. 빈 자리가 강한 유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y에서 옮김202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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