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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가는 마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25년 2월
평점 :
앞서 읽은 책 <음악소설집>에서 이 작가의 글을 만났고 마침 출간된 이 책을 구입했다. 잘했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 더 잘되었다. 이 작가의 책 중 <레고로 만든 집>과 <구경꾼들>을 오래 전에 읽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괜찮게 읽었다는 메시지를 새삼 보고 있으니 작가에 대한 호감을 그때부터 막연하게 갖고 있었나 보다. 확 반했던 것은 아닌 모양이지만.
이 책 속의 글 8편. 경쾌한 기분으로 쓰다듬으면서 읽은 듯하다. 문장은 톡톡 끊어지는데 문단은 드물게 구분되어 있는 글. 짧은 호흡과 긴 호흡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내 읽기 방식으로는 좀 불편하다고 여겨 왔는데 이 책에서는 흥미롭다는 느낌으로 읽고 있어 내가 도리어 낯설었다. 읽기의 범위가 넓어진 것인가? 흐뭇해진다.
책 안에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엽서가 들어 있다. 작가도 엽서에서 미리 말해 놓은 셈이지만 글의 공통 소재를 생일로 봐야겠다. 다들 생일을 기념하고들 사나? 궁금하지만 꼭 알고 싶지는 않고. 생일이면 다른 날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굳이 기념을 하면서 챙기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이 오늘과 같아도, 아니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는 나로서는 생일뿐 아니라 기념일이라는 것에 딱히 관심이 없다. 생일이라고 해도, 내 생일이든 소중한 너의 생일이든. 그래서 소설의 소재에는 집중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한걸음 떨어져서 읽고 있자니 아, 생일, 일상의 고운 반짝임 같은 것이구나, 끄덕였다.
여러 모로 좀 부족한 여건에서 살면서도 하루하루의 삶 자체에 충실하게 대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꼬인 게 없는 이야기들이어서 좋았다. 사람끼리의 관계를 꼬아 놓았거나 지난 날의 기억과 지금의 시간을 꼬아 놓았거나 서로 못 잡아먹어서 서로의 삶을 정신없이 꼬아 놓은 게 아닌 무난한 이야기. 지긋지긋하고 익숙한 갈등이 아니라 갈등 같지 않아 오히려 신선한 갈등을 다룬 이야기. 오죽 바랐으면 요즘 같은 시절에 느리게 가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을까.
읽지 못한 작가의 다른 글을 찾아 곧 읽어야겠다.(Y에서 옮김2025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