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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결함
예소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평점 :
묘한 끈기로 읽은 소설집이다. 모두 10편. 한 권의 책 안에 10편의 소설이라니, 다 읽고 횡재를 얻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첫 작품보다 읽어나갈수록 좋은 기분이 들었다. 중간에 이르기 전에 그만둘까 망설이기까지 했는데 그랬다면 얼마나 서운했을까, 이 만족감을 이 반가움을 영영 모르고 말았을 테니.
무엇보다 등장인물의 특성이 내게 새롭다. 내가 이제까지 좋아해 온 유형의 인물들이 아니다. 정반대에 있다고 하는 게 적절하다. 그래서 이런 특성을 가진 인물의 이야기라면, 알았다면 소설도 드라마도 영화도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성향이 바뀐다. 바뀌는 밀도가 느껴져서 신기하고 즐겁다. 이 영역으로 들어선다고? 내가?
못된 사람이 있다. 싫다. 내게도 못된 성질이 있다. 역시 싫다. 그래서 숨기거나 무시한다. 없는 것처럼, 아닌 것처럼,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의 못된 모습을 나무라고 비난하고 비판까지 한다. 숨겨 둔 내 안의 못된 성질을 부정하고 더 깊이 감추기 위해서라도.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누구보다 내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딱하다, 못된 너도 못된 나도.
이 소설집 속 인물들은 못된 나를 마주하게 한다. 못된 이 인물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당당해서 당황스러웠다. 나는 글을 읽는 내내 작가를 의심한다. 그리고 묻는다. 답을 모르는 질문들.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에 작가 자신의 모습은 얼마나 투영되었을까, 작가도 못된 사람의 특성을 제법 갖고 있는 것일까, 상상만으로 취재만으로 조사만으로 못된 사람을 이렇게 잘 형상화시킬 수 있을까, 작가의 실력인 것일까, 읽고만 있는 나는 왜 자꾸 따끔따끔 아프고 부끄럽고 민망한 것일까, 읽기 싫은 마음인데 왜 계속 붙잡고 책장을 넘기고 있을까,... 이렇게 읽었다. 아직도 모르는 마음 투성인 채로.
사랑 따위 믿는 나이는 아니다. 그저 정으로 아니면 의무와 의리로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포장에 불과하므로, 혹은 그럴 듯한 말로 잘난 척 하고 싶을 때 사용하면 좋은 말에 그치는 정도로. 말로든 글에서든 얼마나 무책임하고 대책 없이 써 왔던 말인지, 내가 사랑이라는 것을. 이러니 이 책 안에서 작가가 다루는 사랑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이래?가 사랑하니까 이렇게도 못되게 할 수 있다는 장면을 계속 만났으니. 놀랐다. 이제부터는 결함이 많은 사랑이라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 된다.
올해 초 이 작가는 이 책 안에 있는 작품인 <그 개와 혁명>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읽은 내가 뿌듯하다.
어쩌면 한 사람의 역사를 알면 그 사람을 쉬이 미워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P227
천냥금이 계절을 기억하듯이, 잎이 마를 때가 되면 마르듯이, 이유 없이 새잎을 돋워내듯이.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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