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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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의 작가였지만 글이 마음에 들어 아주 만족스럽다. 나는 이렇게 부자가 되어 간다. 

영어의 홈은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말 집과 얼마나 겹치나. 홈과 하우스의 의미가 좀 다르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우리말 집이 홈과 하우스를 포괄하는 정도로 이해해도 될 것 같기는 한데.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작가가 말한 홈이 아니라 집에 대해 묻고 있었다. 

집이 없었던 적이 있고 집을 가진 적도 있고 집을 잃은 적도 있고 집을 지은 일도 있다. 집에 대한 경험은 어지간히 다 갖춘 셈이다. 홈은 좀 다르다. 태어나면서 홈 안에서 내 생이 시작되었을 것이고 홈을 잃은 적은 없으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내 홈은 확장이 되었으니까. 고잉 홈이라면 집으로 가고 싶다고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때의 집이라면? 

나는 홈을 집으로 바꿔 쓴다. 영어식 사고가 안 되고 우리말로 바꿔 대입하려다 보니 거리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겠다. 홈, 집, 내 집, 내 고향, 내 나라, 나의 지구, 나의 우주. SF소설을 읽다 보니 지구도 우주도 우리에게는 고향이고 집이던데. 나로서는 유학도 가 본 적이 없고 이민은 더더욱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 작가가 그려 놓은 타향과 타국의 세계는 내게 아득하기만 했다. 집으로 가고 싶은, 집으로 가야 하는,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는, 그 사이에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까? 살 만할까? 살아야 해서 사는 걸까? 살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하는 때가 있을까? 집을 떠났으면서? 더 잘 살려고 떠났으면서? 돌아오기가 얼마나 먼지 떠나고야 알았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때는 집을 떠나고 싶고 집을 떠나기만 하면 뭔가를 이룰 것 같고, 집을 떠나 있을 때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일이 안 될 때마다 집이 더욱 그립고 집으로 가는 길이 어려울수록 더욱 집으로 향하고. 본성의 원천이겠지. 홈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것은. 삶이 시작된 곳이고 이제 그만 내 삶을 끝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테니까. 멀리 있을수록 더 간절해지는 꿈으로서.

어느 한 편 쓸쓸하지 않은 글이 없었다. 애달픈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미국에 가면 다들 잘 사는 줄로만 알았는데, 미국에서 공부만 하고 돌아오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세상은 통으로 만만하지 않게 되고 말았다. 수월한 생도 수월한 세상도 수월한 나이도 없는 것이다. 여기도 어렵고 거기도 어렵고 어려도 어렵고 나이들어도 어렵고 집을 떠나도 고달프고 집으로 돌아와도 민망하고.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를 읽을 때만 해도 시큰둥했다. <고잉 홈>을 읽으면서 약간의 신선함을 느꼈으나 금방 처졌다. <핑크 팰리스 러브>를 읽고 나니 무서움이 남았다. <크리스마스 캐러셀>을 보는 동안 여러 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골드 브라스 세탁소>는 유일하게 안도감을 주는 글이었다. <뷰잉>은 그저 답답하게 읽었다. <나이트호크스>를 읽는 동안에는 불안해서 쓰라렸다. <뜰 안의 볕>에서는 고달프기만 했다. <우리들의 파이널 컷>을 보면서는 조바심에 흔들렸다. 다 읽고 다시 돌아보니 쓴 맛에도 좋았다고 적는다. 좋은 소설이란 이렇게 반대의 맛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게 해 준다니까. 

지금 나는 집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woojukaki님의 선물)(y에서 옮김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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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3 2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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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 1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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