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에 만족하며 [인문사회-뉴필로소퍼 2024 28호]

뉴필로소퍼 2024 28호 - Vol 28 : 좋은 삶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ㅣ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28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4년 10월

삶은 과정이다. 따라서 행복 또한 과정에 있는 감정으로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행복을 위한 삶이어야 하는가, 행복한 삶이어야 하는가, 꼭 행복해야 하는가... 사는 일도 행복도 답은 없는데 이것만큼 답을 구하는 이가 많은 물음도 없을 것 같다. 행복하면서도 행복한 줄 모르고 살고 있으면서 삶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모르듯이.

계절마다 나오는 잡지책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읽는 내가 썩 괜찮다는 느낌을 얻게 된다. 책의 주제와 내용에 호응하는 내가 괜찮게 느껴지고 계속 읽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것조차 그럴 듯하게 여겨진다. 약간의 허영과 약간의 자부와 약간의 양심과 약간의 사명이 적절하게 섞인 채로 나를 포장해 주는데 만족스럽다. 마치 이 책을 읽는 것이 내가 사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계속 읽을 작정이다.

이번 호에서는 '기꺼이 즐기겠다, 이 부조리한 세상을'을 쓴 마이클 폴리의 글이 특히 좋았다. 사람마다 좋은 삶을 얻기 위한 조건이 다를 것인데 이제까지 내가 믿고 있던 좋은 삶의 영역을 확장시켜 준 글이다. 세상은 부조리한 상태가 자연스럽고 부조리한 세상의 광기를 즐기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해 주는 글, 내 생각의 경계선이 흐려지는 것에 흐뭇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전 같았다면 의식적으로 고집을 부렸을 텐데, 세상은 부조리한 게 아니라고,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고 지키지 않으면 혼나거나 벌을 받아야 한다며, 그래서 그렇지 못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얻곤 했으니, 이 또한 미성숙한 태도의 한 면이었을 것이다. 이 점을 알게 하는 책, 내가 좋아하는 이유다.

책이 나오는 대로 읽는 게 아니어서 실제 현실의 계절에는 밀린다. 그래도 사 놓고 가까이 둔다. 이 또한 내 주변의 흐뭇한 풍경이어서.

자아에 대한 몰입보다 점차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넓혀가는 삶이 의외로 크나큰 기쁨을 준다는 것, 그리고 나의 행복을 절대로 남의 행복과 똑같은 모양새로 갖추려하지 말 것. - P5

창의력, 호기심, 판단력, 배움에 대한 열정, 균형감, 용기, 인내, 정직함, 진정성, 열정, 사랑, 친절함, 사회적 지능, 협동력, 공정함, 통솔력, 용서, 겸손, 신중함, 자기 조절, 그리고 아름다움, 훌륭함, 감사함, 희망, 유머, 숭고함을 알아볼 줄 아는 능력 - P13

번영을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적당히 잘 사는 완만한 삶soft life이 아닐까. - P29

더 많은 것에 관심을 둘수록 행복의 가능성은 커지고 운명에 덜 휘둘리게 된다. 만일 한 가지를 잃더라도 다른 무언가에 기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모든 것에 관심을 두기에 너무도 짧지만, 하루하루를 채울 만큼 여러 가지에 관심을 두는 것은 좋은 일이다. - P34

주의력을 높이는 방안으로는 예술이 특히 유용하다. 예술은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놀라움을 선사함으로써 지루한 일상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 P73

배움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지만, 깨달음 자체도 기쁨을 가져다준다. 예측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세계 속에서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76

과연 누구나 평등을 원할까? 현실에서는 모두가 남들보다 우월하기를 바란다. 민주주의의 묘미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 방식대로 우월감을 느낄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타인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므로 가장 만족스러운 제도가 될 수 있다. - P79

내게 효과적인 대응책은 분노가 아니라 세상의 광기와 부조리를 즐기는 재주다(분노는 일종의 자해라고 생각한다). - P80

사방 천지에 대단한 놈도 불쌍한 놈도 하나 없다. - P91

여행하는 동안은 그저 살아갈 뿐이다. - P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