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설탐정사의 밤 - 곽재식 추리 연작소설집
곽재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6월
평점 :
이번 소설집의 주인공인 탐정은 도대체가 매력적인 조건을 갖고 있지 않다. 가난하고 맡게 되는 일도 뭔지 애매하게 딱하고 해결만큼은 시원하게 하는 것 같은데도 통쾌하지 않고. 작가가 애써서 구해 낸 인물일 텐데, 영웅 쪽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읽고 싶어진다. 자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다음 사건을 기다리게 된다. 현장에서 맞고 다니는 탐정이라도, 조사하는 중에 끝도 없이 욕을 먹는 탐정이라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탐정이라도, 저러다가 아무도 모르게 당하지나 않을까 읽는 내내 염려하게 되는 탐정이라도. 주인공 탐정이니까 그래도 살려는 주겠지? 기대하면서.
배경은 우리나라가 해방된 이후이며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949년 서울이다. 전기가 잘 안 들어온다는 상황이 소설의 주요한 조건 중 하나인데 꽤나 음산하게 전개한다. 손님이 없는 불꺼진 사무실 풍경은 서글퍼 보인다. 어쩌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기대어 사건을 해결해 주면서 살고 있는데 도무지 신통하지가 않고. 홈즈나 푸아로 경감을 떠올려서는 아주 곤란하다. 이래서야 의뢰인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겠나 아득하다가도 어느 순간 해결을 하는 주인공의 활약에 흥미가 지속되어 무척 신기했다.
지독히 나쁜 사회 문제들, 공무원의 비리, 소시민의 애환, 찾기 힘든 공정과 정의, 부의 불평등 구조, 언론 비리, 정치적 혼란, 일본 지배가 남긴 청산하지 못한 문제들... 이 정도 소재라면 없는 게 없다고 해야겠다. 작가는 이 모든 요소들을 추리소설로 잘 엮어 놓았는데 특유의 해학과 풍자가 멋지게 작동하고 있다고 보았다. 무섭지 않고 지루하지 않고 통쾌하지는 않은데 개운한 느낌은 들고. 세상이라는 게 아무리 소설 속이라도 분명하고 선명할 수만은 없을 테니. 1949년을 배경 삼아 상상한 이야기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절을 점검하도록 해 주는 장치가 아주 돋보였다.
이 탐정의 등장, 이 소설집으로 그칠까? 좀더 활약해도 괜찮지 않을까? 작가에게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y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