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민음의 시 221
서윤후 지음 / 민음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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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마음이 자꾸 막혔다. 길을 잃은 소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렵고 낯설고 투박하며 위험한데 약한 소년이다. 나는 소년과 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손을 내밀지도 못하고 어깨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도 못한다. 여동생도 남동생도 다 있지만 그러고 보니 나는 동생들과도 친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동생은 누구인가. 나와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가. 나는 동생을 얼마나 믿고 있고 동생은 나를 얼마나 의지하고 있을까. 알려고 해 본 적도 없고 지금도 그다지 알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나, 동생은 동생. 이러면 시를 읽는 길이 점점 더 고달파질 텐데. 시인의 마음과도 자꾸 멀어질 텐데. 시집을 읽고도 나는 반성도 다짐도 안 하고 있다. 메마르기 짝이 없는 언니 혹은 누나다.

나의 팍팍한 심정과는 별도로 시 안에도 다정한 풍경이 별로 없었다. 다정한 대화도 다정한 표정도 찾지 못했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내몰리기만 하는 동생과의 교류, 그럼에도 뚜렷하게 보이는 형의 따뜻한 눈길 그리고 관심. 내가 시를 쓸 줄 알았다면 동생들과 좀더 친해질 수 있었을까. 시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어진다.

몇 줄의 구절을 얻는다. 오래 마음이 거북할 것 같다.

17

우리는 단지 조금 다른 높낮이의 울음소리를 냈다 구별되는 슬픔이 있었다


22

좋은 일에 쓸 예정이다 오늘치의 어둠을 모아서 어두웠던 것을 빛나 보이게 할 생각이다


29

선생님, 꽁꽁 언 마카롱을 녹일 만한

그런 따옴표를 줍고 싶습니다만

홀로 집에 가는 그 길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30-31

바라봐 줄 사람만 있다면 살아야 하는 것이 씨앗인 오늘


42

나는 창문의 취미가 된다

예측되지 않는 그런 구름에 둘러싸여서

흐린 마음을 닦는다


67

매달린 평행봉에서 떨어져

그다음에 할 수 있는 건, 더 괜찮은 쪽으로

또다시 떨어지는 일뿐입니다


71

부축하는 마음 없이 혼자서 눈보라 속으로 간다


99

모를수록 살 만해졌다 밑줄 없는 세상에 잘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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