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 창비교육 성장소설 17
연여름 지음 / 창비교육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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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 이처럼 고요한 안트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순간, 두 눈동자가 짙은 보랏빛으로 번뜩였다. 까마득히 오랜만에 맞닥뜨리는 밤의 헤마였다.

이런. 안 돼. 왜 하필 지금.

자책과 후회가 동시에 밀려왔다. 나쁜 일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걸 알면서도 방심하고 말았다. 그게 지금은 아닐 거라는 희망에 기대어서. 마음이 평소보다 들떠 있던 탓이었다. 경솔하고 어리석었다.                p.86~87


열여덟 살의 겉모습을 하고 있는 소녀 영소의 나이는 실제보다 꽤 많다. 무려 274년간 가족을 잃은 외톨이였다가, 침략자들의 노예이기도 했고, 도망자, 방랑자, 누군가의 피를 훔치는 괴물이자 도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이런 존재를 흡혈귀, 또는 뱀파이어라고 불렀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헤마'라고 칭했다. 낮의 헤마인 영소는 유달리 예민한 청각 때문에 인간이 내는 모든 소음이 괴롭다. 웬만한 소리는 철분제를 먹으면 볼륨을 낮춘 오디오처럼 아주 잘게 들리게 되었다. 철분제가 헤마의 갈증과 공격성을 달래 주면서 청각의 예민함까지 누그러지게 돕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채기만은 예외였다. 안트로(인간)과 섞여 사는 한 재채기를 완벽히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게 더 문제였다. 


영소가 열여덟 소년 은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것도 라이브 공연장에서 예고 없이 터져나온 재채기 덕분이었다. 스캣에서 공연을 즐기기 위해 음료 한 잔을 주문하고 앉아 태인의 부드럽고 깊은 목소리를 듣던 중이었다. 유난히 무대를 뚱하게 응시하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는데, 짧은 머리에 후드 티셔츠 차림으로 이런데 음악을 즐기러 찾아올 타입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풍겨 온 희미한 후추 냄새에 누군가 재채기를 터뜨렸고, 동시에 날카로운 통증이 영소의 귀를 관통한다. 반사적으로 소음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바로 그 애였던 것이다. 은수는 유일한 혈육이었던 할머니를 여의고 완전히 혼자가 되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 있는 학교 밖 청소년이다. 두 사람은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조금씩 가까워진다.

 



"영소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 나는 100년이 넘도록 이름을 불린 일이 없었어요. 원래 나를 알았던 안트로는 모두 세상을 떠났고, 머무는 데 없이 혼자 떠돌아다니다 보면...... 사실 이름 같은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게 되잖아요?"

키엔이었던 나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 주는 누군가 존재한다는 건, 나에게 기적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p.260


닷새 전 아르헨티나 한 지역에 운석이 추락했다. 직경 20미터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 대기권에서 폭발하며 운석우로 쏟아진 것이었다. 다행히 추락 지점은 작은 시골 마을로, 숲이 일부 불탔으나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사건이었기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비현실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얼마 뒤, 영소와 은수가 살고 있는 운경시 일대에도 운석우가 쏟아지며 도시 전체가 잿빛 어둠에 잠기게 된다. 운석 하나가 운경시 상공에서 폭발했고, 그때 생긴 충격파가 엄청나게 커서 건물도 뭄너지고, 나무 같은 건 다 타 버린다. 재와 먼지로 인해 낮인데도 사방이 캄캄했다. 바깥은 거대한 후추통과도 같았고, 하늘에 재가 걷힐 때까지는 일주일은 더 걸리는 상황이라 다들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었다. 병원에는 부상자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하늘은 캄캄하고 혼탁했다. 태양이 사라진 아수라장 속에서 영소와 은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손을 맞잡는다. 


우리 일상은 생각보다 수많은 소음들로 가득 차 있다. 나도 소리에 예민한 편이라 시끄러운 걸 잘 견디지 못하는데, 음악만큼은 예외다. 그래서인지 극중 영소에 대한 설정이 너무도 공감이 되었다. 이 작품은 이러한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해 타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경청'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해준다. 영소와 은수의 특별한 우정은 다정한 선의와 경청이 만들어 낸 것이니 말이다. 이 박자에 참견하고 저 박자에 끼어들고, 도움은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기어코 웃는 얼굴을 들이밀고, 때로는 기다린 적 없는 노크처럼 요란하고 시끄러운. 어쩌면 그것이 '내가 여기에 있다고 알려 주는 신호이기도 할 것이다. 혹은 나를 도와 달라고, 아니면 내가 도와줄 수 있다고 말이다. 요란하고 시끄러운 재채기 소리처럼. 타인의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어떻게 한 사람을 구하는지 보여 주는 이 작품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좋을 것 같다. 운석우로 무너진 도시를 배경으로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작품이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였다. 연여름 작가의 첫 청소년 소설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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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진화의 세계 -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발견한 생존의 법칙
이정모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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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어둠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다. 그것은 조건이다. 빛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감각의 방향을 바꾸고 구조를 바꾸며 결국 존재의 방식을 바꾼다. 나는 더 많이 보기 위해 변한 것이 아니라 이 정도의 빛으로도 볼 수 있도록 변했다. 나는 넓게 보는 대신 필요한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의 위치와 방향을 바꾼다. 환경은 감각을 만들고 감각은 행동을 만들며 행동은 형태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나는 형성되었다.            p.29


뼈를 깎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극지,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심해, 굳은 용암으로 뒤덮인 화산섬, 물 한방울 찾아보기 힘든 메마른 사막 등 인간의 상상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극한'의 풍경 속에서도 생명이 존재한다. 400도로 펄펄 끓는 물 옆에 사는 폼페이웜,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가로지르는 알파인 아이벡스,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도 생존하는 물곰 등 무수히 많은 생명이 극한 환경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화해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찬란한 멸종>으로 46억 년 지구의 역사를 정말 재미있게 들려주었던 이정모 관장의 신작이다. 이번에는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진화한 지구 생명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진화의 비밀을 들려준다. 인간이라면 단 몇 초에서 몇 분 만에 죽고 말 상상 불가능한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생명체들을 다루는 책은 한번 읽어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이번에 나온 <극한 진화의 세계>가 더 재미있게 잘 읽힌다. 왜냐하면 이 책은 잠시 인간의 자리에서 벗어나 극한 환경에서 사는 생물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 이정모 관장 특유의 유쾌한 입담이 과학 이야기를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낸다. 또한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놀라운 모습으로 진화한 26종의 동식물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도록 110여 컷의 고화질 사진들도 알차게 수록되어 있다.




생명이 반드시 복잡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단순할수록 더 빠르게 작동할 수 있다. 구조가 줄어들수록 에너지는 다른 곳에 사용되고, 그 에너지는 속도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 속도는 결국 규모를 만든다. 인간은 결과로써의 크기를 보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반복과 축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너무 작아서 의미 없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제로는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거대한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것들이다.                p.282


달에는 공기가 없다. 공기가 없다는 것은 생명을 감싸 줄 막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태양에서 날아온 빛은 대기에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쏟아지고, 낮에는 섭씨 120도, 밤에는 영하 170도를 오가는 생명이 허락되지 않은 장소라는 뜻이다. 달은 고요하지만, 그 고요는 온화함이 아니라 무방비의 폭력이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존재가 있었으니, 길이가 0.5밀리미터 정도에 불과한 작은 완보동물인 물곰이다. 2007년 9월 14일, 이 생명체를 작은 용기 안에 담아 위성에 실었다. 물곰을 우주에 노출해 생명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실험이다. 물곰은 생존하기 어려운 극한 환경에 맞닥뜨리면 몸을 오므리고 휴면에 돌입한다.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단지 멈추었을 뿐이다. 그렇게 물곰은 12일간의 우주 체류를 끝내고 지구로 무사히 돌아왔다. 진공과 방사선을 지나, 멈춤을 통과해 다시 흐름 속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생명체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고,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보며 그저 감탄하게 된다. 영화 80도까지 내려가는 극지,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심해, 굳은 용암으로 뒤덮인 화산섬에서도 생명이 존재한다. 지구 생명체의 90퍼센트는 인간이 절대 살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간다고 하니, 새삼 생명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진화는 영웅적인 결단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조금 더 유리한 형질이 세대를 통과하는 과정이라는 것, 그러니 완벽한 생물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그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진화'에 대해서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내가 세계를 보고 살아가는 방식이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낸다. 지구 곳곳에서 환경에 맞춰 눈을 없애고, 호흡을 멈추고, 먹이를 포기하는 등 각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뜨거운 생명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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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처럼 생각하기 - 기후 위기의 지구에서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벤 롤런스 지음, 김주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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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너희가 경험하는 세상은 부모 세대가 살아온 세상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졌어. 두 세상 사이에는 내게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간극이 존재하지. 원래도 다른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지 상상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단다. 만약 세대 간 경험 차이가 너무 벌어지게 된다면 과거 세상을 바탕으로 쓰인 책과 이야기가 더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게 될 거야. 한 세대와 다음 세대가 같은 세상을 공유한다는 개념도 무너지겠지.              p.63~64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다가올 10년 후나 20년 후에 내 아이가 안정된 직장에서 보람 있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살기 좋은 나라에서, 건강하게 아프지 않고 지내길 바라기 때문에, 내가 없더라도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전례 없는 폭염을 겪었던 올해 여름을 지나면서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극단적인 기상 현상으로 인해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 심각한 홍수 등 지구 곳곳이 기후 위기로 인한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이니 말이다. 북극의 기온은 지구상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50년 만에 찾아오던 폭염이 이제는 10년에 한번 꼴로 찾아온다. 게다가 더 길고, 더 뜨겁다. 


이 책은 바로 기후 위기라논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 아이들에게 뼈아픈 진실을 마주하고 다정하게 연대하는 법을 알려 준다. 생태 활동가이자 작가, 기후 대안 학교의 설립자인 저자는 두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부모로서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다 괜찮아질 거야, 라는 말대신 지금 우리 세계가 겪고 있는 변화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알려주기로 한 것이다. 현대 사회는 기술과 의학 등에서 눈부신 발전을 성취했지만, 동시에 우리의 서식지와 생명 유지 시스템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인류의 생존이 걸린 실존적 위기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미래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이들은 앞으로 무엇을 알아야 할까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이 결국 부모가 되는 일이라고 말이다. 




생물권이 파괴되어 가는 부당한 현실이 새삼 뼈아프게 다가오더구나. 1970년대 내가 태어났을 때 존재했던 야생동물 개체수의 80퍼센트 이상이 내 생애 동안 사라졌어. 막대한 양의 탄소 오염 물질도 이 시기에 배출되었고, 그중 절반 이상은 2000년 이후 발생했지. 플라스틱 쓰레기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 파괴는 이처럼 최근 들어 급격히 가속화된 거야. 시시, 네 말이 맞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왜 하필 너는 이런 시대에 태어나, 이런 가혹한 지식을 안고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걸까?               p.248


기후 변화 때문에 계절이 뒤섞이고 있다. 기후 변화는 모든 게 더 따뜻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이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고 망가져 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날씨와 계절과 연관된 기존 상식이 무너진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 홍수와 산불이 일상화된 시대는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뒤바꿀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아이들 세대가 걱정되는 게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 변화는 인간이 멈추기 어려울 만큼 규모가 크고 영향 범위가 넓어서,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기후 재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모든 어른들에게, 자녀를 염려하며 미래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상실을 슬퍼하는 법을 배우고, 멸종해 가는 생명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될 아이들을 위한 선물과도 같다. 


인류는 언제나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지식과 전통을 전해왔고, 역사적으로 부모의 역할 또한 생명 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일이다. 이 책이 크게 와 닿고 공감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아주 오래된 인간의 습성이고, 부모들이 늘 해온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야기는 세상을 이해하게 해주고, 우리 마음을 감싸안아 주며, 상상력의 문을 열어주고, 지도처럼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인간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우리가 서로 연결된 생태계의 일부이며, '숲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기댈 수 있는 건 이야기뿐이라는 저자의 말이 크게 와 닿았다. 동물에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숲과 바다처럼 생각하는 생태적 사고 속에서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이 책이 다정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누구나 알기 쉬운 말로 기후 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에 관한 기본적인 사실을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삶은 언제나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므로 결코 늦지 않았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일상을 위협하는 재앙 수준이 된 지금, 꼭 읽어봐야할 책이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기후 위기 시대를 헤쳐 나갈 지헤를 배우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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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바꾸려는 사람들 - 프랑켄슈타인에서 현대 신경기술까지, 뇌과학으로 만나는 신경윤리의 질문들
김명호.류영준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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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73년 오스트리아 궁정 의사였던 양 잉엔하우스는 전기 실험 중 우발적인 사고로 머리에 큰 전기 충격을 받았다. 사고 직후, 그는 질문에 답하지도 읽거나 쓰기도 하지 못했기에, 주변 사람들은 그가 죽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다음날, 그는 회복되었을 분만 아니라 머릿속이 더 맑고 또렷해진 기분을 느꼈고, 판단력이 전보다 더 예리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8세기 중반부터 확산된 전기 치료는 정신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생각했고, 신경 질환부터 정신 질환 치료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되어 왔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을 탄생시킨 것이다.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사람의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실험을 시작해, 결국 완전히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이 오싹한 생명 창조의 순간이 허무맹랑한 허구가 아니라, 당대의 과학적 실험으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은 과학사의 흥미진진한 장면들을 그래픽노블을 통해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부터 현대 신경기술에 이르기까지, 생명과 전기의 관계, 뇌의 작동 원리, 정신 질환의 치료, 인간 향상 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을 ‘신경윤리학’이라는 렌즈로 살펴본다. 왜 사람들은 머리에 전기를 가하면 정신과 육체가 향상된다고 믿게 되었을까? 살아 있는 건 어떤 상태이며, 살아 있는 존재와 죽은 존재는 어떻게 다른 걸까? 그렇다면 생명의 본질은 무엇일까? 


질병을 고치기 위해 시작된 의학 기술이 어느새 인간의 능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도구가 된다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을까. 전기와 화학적 신호를 인위적으로 조절해 인체 기능과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어디까지 인간을 바꾸어도 되는 것일까? 질문이 이어지다 보면 결국 치료와 향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정상 상태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점에 이른다. 무엇을 정상 상태로 볼 것인가, 그 정상은 자연적인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인가. 





사실 메리 셸리는 소설 속에서 괴물이 생명을 얻게 되는 순간을 모호하게 서술했는데, 이후 수없이 각색된 다른 작품에서 존재의 불꽃은 보통 전기(번개)로 표현되었다. 당시만 해도 '살아 있다는 것이 생명력이 덧붙여진 상태라면, 여러 물질에 덧붙여져 그것을 움직이게 만드는 전기는 생명력과 모종의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8세기부터 유럽은 새로 발견한 힘이자 생명과 영혼의 근원으로서 보이지 않는 유체인 전기에 매료되었다. 이후 실험과 관찰이 거듭되면서 전기생리학과 신경과학의 기초가 생기고, 전기 연구의 초점이 신체 전체에서 신경계와 뇌로 이동하게 되면서 20세기 초 정신분석학이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점차 겉으로는 알 수 없었던 뇌의 활동을 관측할 수 있게 되면서, 신경학적, 정신의학적, 심리학적 현상에 대한 탐구가 깊어진다. 


재미있는 점은 '뇌를 자극해 인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생각과 치료를 넘어 향상을 탐색하려는 시도'는 21세기가 된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인공 생명인 괴물을 탄생시켰지만,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 책임을 사회로 떠넘겼던 것처럼, 과학기술의 발전 역시 늘 이와 유사한 패턴을 반복해 오고 있는 것이다. 




만약, 시험 기간에 집중력을 30% 올려주는 약이 있고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해보자. 게다가 친구들 절반이 이미 그 약을 먹고 효과를 본 상태다. 그렇다면 나도 그 약을 먹게 될까? 전체 분위기상 자연스럽게 먹게 되지 않을까? 그 약을 먹지 않을 자유와 선택권은 각자에게 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자칫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과학 개념을 명확하게 정리해주고, 지루할 수도 있는 지점도 시각적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래픽노블이라는 형식이 딱딱한 과학 개념을 더할나위없이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과학 지식과 어려운 용어들을 나열하는 대신, 실험실 장면과 인물들의 논쟁을 만화로 보여주기 때문에 가독성도 뛰어나다. 쉽고 재미있게 뇌과학과 신경윤리학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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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회한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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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는 사람을 딱 하나 죽일 거야. 반드시 자연사로 보이게 말이야. 그러나 시신은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겠지.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들어봐.

TV 방송국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으나 과거 '커렉터'라는 전례도 있어서 현경 수사1과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p.89


우라와 의대 교수이자 법의학 교실의 주인인 미쓰자키 교수는 한 방송에 출연해 사법 해부의 필요성과 예산, 기관, 인원도 부족한 현실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하고 시청자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그러던 중 누군가 방송국 홈페이지에 도발적인 글을 남기는데, 반드시 자연사로 보이게 사람을 딱 하나 죽일 테니, 살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시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과거에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던 전례도 있어서 현경에서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 현에서 발견되는 모든 변사체를 의심의 눈길로 봐야 하는 난감한 상황 속에서 과연 '살인'을 밝혀낼 수 있을까. 


미쓰자키 교수가 방송에서 말한대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90퍼센트는 돈으로 해결이 된다. 반대로 돈이 없어서 감춰진 진실과 돈이 없어서 운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미쓰자키 교수는 그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10퍼센트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카메라에 대고 말할 사람이 아니기에, 대부분은 그가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학에 쇄도한 항의 전화를 비롯해서 범인 역시 그러했을 것이고 말이다. 이야기는 연작 단편 형식으로 각각의 사안에 대해 해부와 사인 규명을 반복하며 살인 여부를 확인해 나간다. 병사 가능성이 큰 노인, 지병으로 죽은 것처럼 보이는 베트남 노동자, 오토바이 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한 남자, 열중증으로 거리에서 쓰러진 필리핀 여성,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영아 돌연사로 사망한 아기까지 유족의 반대, 비용 문제 등 사법 해부를 쉽게 할 수 없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 고테가와와 마코토의 고군분투가 펼쳐 진다. 




마코토는 최근 미쓰자키의 상태를 설명했다. 이전이라면 전혀 관여하지 않았을 범인의 상황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살해 동기에도 관심을 드러냈다는 것. 쓰쿠바는 설명을 다 들은 후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묘하군. 시신에만 관심 있는 사람이 범죄 자체에 관심을 가지다니."                 p.311


나카야마 시치리의 법의학 미스터리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 시리즈'가 세 번째 이야기로 찾아왔다. 1편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2편 <히포크라테스 우울> 모두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내가 썼던 리뷰를 찾아보니 무려 9년 전이다. 정말 오랜 만에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 멤버들을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법의학계의 권위자 미쓰자키 교수와 자신은 시신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는 미국인 조교수 캐시, 그리고 연수 차 왔다가 결국 정식 조교가 된 마코토, 그리고 저돌적인 형사 고테가와와 현경 최고 검거율의 신화 와타세까지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법의학 교실에 휴게실이냐며 타박을 줄 정도로 뻔질나게 드나드는 형사 고테가와와 점점 더 베테랑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 마코토의 티격태격 콤비 플레이가 너무도 유쾌하고, 귀엽게 느껴져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총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 문제, 인종 차별, 각종 혐오, 법의학 제도의 문제 등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이고, 이들은 죽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그것도 부검을 하게 되는 경우에만 가능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법의학 교실 팀과 고테가와는 어떤 진실에 도달하게 될까.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마코토와 고테가와의 케미가 돋보이고, 미쓰자키 교수의 과거가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다작을 하기로 유명한 나카야마 시치리는 음악, 경찰, 의료 등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를 선보여 왔는데, 개인적으로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 시리즈도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허둥대고 삐걱대던 사이에서 이제 제법 손발이 잘 맞는 관계가 된 마코토, 고테가와 콤비의 활약도 앞으로가 더 기대되고 말이다. 자, 가독성 뛰어난 미스터리를 찾고 있다, 법의학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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