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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진화의 세계 -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발견한 생존의 법칙
이정모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어둠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다. 그것은 조건이다. 빛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감각의 방향을 바꾸고 구조를 바꾸며 결국 존재의 방식을 바꾼다. 나는 더 많이 보기 위해 변한 것이 아니라 이 정도의 빛으로도 볼 수 있도록 변했다. 나는 넓게 보는 대신 필요한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의 위치와 방향을 바꾼다. 환경은 감각을 만들고 감각은 행동을 만들며 행동은 형태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나는 형성되었다. p.29
뼈를 깎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극지,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심해, 굳은 용암으로 뒤덮인 화산섬, 물 한방울 찾아보기 힘든 메마른 사막 등 인간의 상상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극한'의 풍경 속에서도 생명이 존재한다. 400도로 펄펄 끓는 물 옆에 사는 폼페이웜,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가로지르는 알파인 아이벡스,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도 생존하는 물곰 등 무수히 많은 생명이 극한 환경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화해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찬란한 멸종>으로 46억 년 지구의 역사를 정말 재미있게 들려주었던 이정모 관장의 신작이다. 이번에는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진화한 지구 생명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진화의 비밀을 들려준다. 인간이라면 단 몇 초에서 몇 분 만에 죽고 말 상상 불가능한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생명체들을 다루는 책은 한번 읽어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이번에 나온 <극한 진화의 세계>가 더 재미있게 잘 읽힌다. 왜냐하면 이 책은 잠시 인간의 자리에서 벗어나 극한 환경에서 사는 생물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 이정모 관장 특유의 유쾌한 입담이 과학 이야기를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낸다. 또한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놀라운 모습으로 진화한 26종의 동식물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도록 110여 컷의 고화질 사진들도 알차게 수록되어 있다.

생명이 반드시 복잡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단순할수록 더 빠르게 작동할 수 있다. 구조가 줄어들수록 에너지는 다른 곳에 사용되고, 그 에너지는 속도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 속도는 결국 규모를 만든다. 인간은 결과로써의 크기를 보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반복과 축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너무 작아서 의미 없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제로는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거대한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것들이다. p.282
달에는 공기가 없다. 공기가 없다는 것은 생명을 감싸 줄 막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태양에서 날아온 빛은 대기에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쏟아지고, 낮에는 섭씨 120도, 밤에는 영하 170도를 오가는 생명이 허락되지 않은 장소라는 뜻이다. 달은 고요하지만, 그 고요는 온화함이 아니라 무방비의 폭력이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존재가 있었으니, 길이가 0.5밀리미터 정도에 불과한 작은 완보동물인 물곰이다. 2007년 9월 14일, 이 생명체를 작은 용기 안에 담아 위성에 실었다. 물곰을 우주에 노출해 생명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실험이다. 물곰은 생존하기 어려운 극한 환경에 맞닥뜨리면 몸을 오므리고 휴면에 돌입한다.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단지 멈추었을 뿐이다. 그렇게 물곰은 12일간의 우주 체류를 끝내고 지구로 무사히 돌아왔다. 진공과 방사선을 지나, 멈춤을 통과해 다시 흐름 속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생명체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고,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보며 그저 감탄하게 된다. 영화 80도까지 내려가는 극지,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심해, 굳은 용암으로 뒤덮인 화산섬에서도 생명이 존재한다. 지구 생명체의 90퍼센트는 인간이 절대 살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간다고 하니, 새삼 생명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진화는 영웅적인 결단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조금 더 유리한 형질이 세대를 통과하는 과정이라는 것, 그러니 완벽한 생물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그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진화'에 대해서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내가 세계를 보고 살아가는 방식이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낸다. 지구 곳곳에서 환경에 맞춰 눈을 없애고, 호흡을 멈추고, 먹이를 포기하는 등 각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뜨거운 생명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