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
노은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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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왜'를 어떻게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너무 쉽게 묻거나 혹은 아무도 묻지 않는 것들, 그리고 함부로 말해지는 것들과 말할 수 없는 것들. 그 사이에서 알 수 없는 모호한 마음들이 제발 알아봐달라고 아우성친다.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위로받을 수도 없는 마음들이다. 이름 없는 마음은 여러모로 다루기 어렵다. 누군가 "마음이 어때요?"라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다.              p.4


예전에는 조용하고 예의 바른 것이 미덕이었다면, 지금은 단정하게 감정을 다루고, 애쓰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어려움을 소화해내야 하며, 실수조차 멋지게 감추어야 하는 자연스러운 완벽함이 추구되는 시대이다. 기름진 음식을 즐기지만 날씬한 몸을 유지하고, 갈등 상황에서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되 다른 사람을 수용하며, 직장에서는 유능한 동시에 여유로운 동료여야 하고, 집에서는 따뜻하면서도 간섭하지 않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한 가지를 따르자니 다른 하나가 어긋나고, 둘 다 따르자니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쉽지 않은 요구가 끊임없이 계속 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면서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과 마주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취약점, 특정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쿨하지 않은' 진짜 내면은 숨겨지고 점점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쓰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모순 속에 우리는 노력하는 모습을 들킬까 걱정하는 불안과 애써도 좋은 결과가 없을 까봐 부끄러운 수치심, 남에게 보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다른데서 오는 분열, 감정 표현을 억제하고 완벽함을 유지하려다 완전히 소진되고 마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야근은 자율이라며 정작 매일 야근하는 상사, 하루 종일 남의 기분만 생각하느라 정작 나를 살필 여유는 없고, 너무 보고 싶은데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전혀 다른 감정의 공존과 애인과 함께 있어도 늘 혼자인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리며, 절대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마음과 후배가 내 자리를 뺏을까 걱정되는 심리 등 누구나 한번쯤 겪어본 감정들을 풀어내고 있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감정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스스로를 비난하는 대신,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자신에게 호기심을 갖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착한 사람'이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과거의 관계를 지켜주었다면, 이제는 아팠던 내 감정을 돌볼 차례다. 상대방의 무심함이나 거절을 나의 결함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내가 느낀 감정에 주목해 보자... '착한 사람'의 외피를 벗고 나의 마음을 말할 수 있을 때, 관계도 나 자신도 건강해질 수 있다.                p.272


오래 사귄 연인과 이별했을 때, 헤어져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좋으면서 밉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면서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음, 또는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을 그리워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하고 분노할 때, 좋은 사람이라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멀리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감정과 태도, 경향성을 동시에 느끼는 것을 '양가감정'이라 부른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누구나 종종 경험하게 된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퇴사 결정에 후련하면서도 불안해지고, 동료의 승진 소식에 축하하는 마음과 질투를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양가감정은 우리가 자기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준다. 중요한 것은 양가감정을 억누르거나 삭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괜찮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양가감정을 잘 다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은 기쁨, 슬픔, 즐거움, 불안, 두려움 등 명료한 감정들 외에 모호한 마음에도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28가지 심리학 개념과 정신분석 이론을 기반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겪는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되, 그 과정에서 힘들어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을 지칭하는 EP문화,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내면의 감정과 욕구는 억압된 심리상태인 노모패시, 타인을 기쁘게 하느라 내 감정은 뒷전인 피플 플리저... 그 외에도 리머런스, 판타즘, 말비빔, 시블링 트라우마, 데드마더 콤플렉스 등 일상에서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던 감정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탐구하고, 해석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마음들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정신분석의 언어를 빌려 낯설고 모순된 마음들에도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지금의 감정이 어떤 관계와 경험 속에서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이름 없는 마음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되찾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과 경험이 ‘생각되고’ ‘견딜 만해’지면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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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하는 고고학자 - 고대 인류 문명의 모습과 소리, 냄새, 맛을 재현하는 과학자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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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어 발굴 현장에 남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나무 자루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에렌은 사색에 잠겨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예컨대 나무─이 옛날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긴 것일 수 있어요. 어쩌면 석기 시대가 아니라 목기 시대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라요." 이것은 정말로 참신한 통찰인데, 고고학 교과서에서는 결코 접할 수 없는 통찰이다. 이 통찰을 얻으려면, 실제로 나무와 돌로 도구를 만들어봐야 한다.               p.107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의 도덕성과 윤리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주었던 <과학 잔혹사>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샘 킨의 신작이다. 과학과 스토리텔링을 함께 엮어 내는 그의 뛰어난 재능이 빛을 발하는 책이다. 보통 고고학이라고 하면 유물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사람들이 남긴 물리적 흔적으로 통해 그들이 살아가던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물만으로 옛사람들에 대해서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여기서 '실험고고학'이 등장한다. 


실험고고학자들은 과거 사람들의 행위를 직접 재현하며 유물에서는 떠올리기 힘든 '과정'을 복원해낸다. 이 책은 과학과 기술이 고고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현장을 누비며 실험에 직접 참여하는 동시에, 고대인들의 삶을 픽션으로 현실감 있게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결코 체험할 수 없는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세계 곳곳에 묻혀 있던 새로운 역사를 밝혀낸다는 점이 흥미로웠기에 고고학을 다룬 책들을 꽤 많이 읽어본 편이다. 그럼에도 '실험고고학'이라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너무 신기했다. 석기 시대의 뗀석기를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 보고, 고대의 수렵채집인들이 사냥에 사용했던 창을 그대로 구현해보기도 하고, 피라미드가 건설되는 동안 노동자들에게 지급되었던 이집트 빵과 맥주를 당시 레시피로 만들어 먹어보는 것은 그저 유물들을 보고 관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안뜰에서 실험을 마무리할 때, 해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알래스카 도자기를 재현하려는 시도들에서 겪은 실패들을 회상했다...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웃을 여유가 있다. 우리가 만든 못생긴 도자기가 부서져도 잃는 것은 자존심과 약간의 노동뿐이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지식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북극 지방의 빙상에 있던 아마루크에게는 훨씬 큰 것이 걸려 있었다. 그곳에서는 잘못 만든 도자기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p.536


고대 이집트는 인류 최초의 문명은 아니지만, 가장 거대하고 가장 오래 지속된 문명으로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반짝이는 보물과 불가사의한 미라, 그리고 고대 세계의 가장 경이로운 업적인 피라미드까지 이집트의 유산이니 말이다. 피라미드 건축은 전 사회가 동원된 노력이었고, 통념과 달리 피라미드 건축을 위해 일한 사람들은 박해받는 노예가 아니라, 이집트의 영광을 위해 노력한 자부심 높은 노동자들이었다. 가장 미천한 하인부터 가장 고귀한 왕족까지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식사 때마다 빵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4000여 년 전, 피라미드 노동자들이 먹던 빵은 어떤 맛이었을까?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이집트 미식학자인 시머스 블랙리는 이집트학자와 미생물학자의 자문을 통해 고대 이집트 빵을 구현해 낸다. 실제 이집트로 가서 고대 도기에서 효모를 채취했고, 파라오 시대의 화덕을 만들고 아카시아 나무를 구해와 1년 동안의 연습 끝에 제대로 된 빵을 만들어 낸다. 저자는 그를 만나 그가 구현해낸 고대 이집트의 빵 한 덩이를 직접 먹어본다. 스펀지처럼 폭신하면서도 쫄깃하고, 아주 맛있는 효모의 톡 쏘는 맛이 살아 있는 빵이었다. 이렇게 고대 인류 문명의 맛을 현대에 재현해내는 것이 실험고고학이다. 


실험고고학자들은 직접 돌을 깨고, 불을 피우고, 창을 만들어 던지며, 동물의 사체를 파묻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람의 시신을 기증받아 직접 미라를 만들어보기도 한다. 과거와 관련된 개념을 실험실에서건 자연에서건 실험을 통해 검증해보는 것이다. 물건을 발굴하고 수동적으로 그것에 대한 가설을 세우는 대신,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면서' 능동적으로 과거를 재현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바이킹의 맥주를 양조하고, 전차를 몰고, 아즈텍인의 공놀이를 직접 해보고, 투탕카멘 왕이 먹었던 시큼한 맛의 빵을 굽는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고고학인 셈이다. 어떻게 고대 이집트의 빵이나 수백만 년 전의 도구를 현대에 재현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면 이 놀라운 책을 놓치지 말자. 논픽션과 픽션을 근사하게 버무려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과거를 온몸으로 경험해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책이니 말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7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짧게 느껴질지도 모르니, 시간을 충분히 두고 천천히 읽어 보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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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 지음, 김은경 옮김 / 시공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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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흘 정도 그런 날들을 보냈을 때,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도 텔레비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텔레비전이 없는 숙박 시설에 체류하고 있는데 어째서 일에 진전이 없는가 미심쩍던 참에, 수수께끼가 풀려 마음이 한결 가뜬하다. 텔레비전의 유무 같은 자질구레한 일 따위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나의 집중력은 언제 어느 때건 그냥 없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위처럼 굳건하게 집중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말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슬슬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일하지 않으면 정말 곤란하다. 쓰고 또 쓰고 왕창 쓰겠다!                   p.149


<배를 엮다>, <사랑 없는 세계>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미우라 시온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여러 잡지와 신문에 연재했던 글과 단발성 작품을 모은 것으로 분량이 꽤 많아 매우 즐겁게 읽었다. 대부분의 에세이들은 분량이 작아 아쉬웠던 적이 많았는데, 이 책은 웬만한 소설보다 묵직해 아껴가며 읽을 수 있었다. 코로나 시기에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의 일상을 담은 에피소드부터 일본 근교의 소도시 여행기, 책 소개와 독서에 관한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소재로 쓰인 글들이 담겨 있다.


식물 가꾸기를 좋아해 제법 많은 식물들을 키우고 있지만 대부분 이름도 모른다거나, 입체물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해 수박 자르는 게 서툴어서 난처하다거나, 이파리에서 꿀이 나오는 식물 덕분에 개미와의 전투를 벌이고 나서는 왜 작은 생물들과 이토록 진심으로 싸우고 마는 것이냐고 생각하는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어도, 눅눅한 날씨 덕에 한참 빨래를 못해도 한숨 쉬지 않는다. 이렇게 살면 매일이 행복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은 글들이었다. '타인의 존재가, 인기척이, 일상에 빛을 내려주고 때로는 충돌을 일으킨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이 세상 아름다움의 근본이 '다양한 것',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나도 매일 하루치의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드는 시간이었다. 




나는 일단 어떤 대상을 좋아하기 시작하면 언제까지고 좋아하는 편이다. 어느 순간 '쿵' 하고 구멍에 빠지듯이 좋아진다. 구멍 안이 새카매도, 가슴께까지 흙이 차올라도, 그곳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다. 더듬더듬 그 세계를 탐험하고 "오오, 안쪽이 꽤 깊은데"라든가 "벽에서 신기한 버섯이 자라고 있어!"라든가 자그마한 뭔가를 발견하고는 혼자서 기뻐한다. '질린다'라는 감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좋아하기 시작하면 일편단심'이라고 말하면 듣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변화와 성장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p.247~248


혼자 사는 친구가 이사할 때가 되어 집 찾기를 도와주었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만화와 옷을 좋아해서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친구였는데, 어느 정도냐면 다다미 여섯 장 크기의 방 벽면을 천장까지 닿는 책장으로 모조리 채우고, 방바닥 전체에 허리까지 올라올 만큼 만화를 쌓아도 부족할 정도였다고. 만화책이 이 정도였으니 옷장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집을 고를 때 건물의 건축 시기도, 역과의 거리도, 방범 수준이 좋은지 어떤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수납에 관해서 만큼은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영원히 세련되고, 물건이 적어 깔끔한 집에서는 살 수 없는 운명이라는 친구의 말에 공감하며, 인간의 마음과 가치관이란 정말 이상하고도 다양하다고 함께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 역시 미우라 시온과 그녀의 친구와 같은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역시 만화용 집을 따로 빌려야 할까 봐'라는 친구의 말에 공감하며, 나 역시 수납공간이 넉넉한 집을 꿈꿔 보았다. 


미우라 시온의 소설도 좋아하지만, 에세이는 소설과는 또 다른 결로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침대 위에도, 침실 바닥에도, 식탁 위에도 아직 읽지 않은 책으로 바리케이드를 쳐두어 이 집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면서도 도 책을 사고 마는 모습도, 실수가 있더라도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저 속 편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도, 어떤 대상이든 한번 좋아하면 영원히 계속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성향도 너무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봄은 벚꽃이 만개해서, 여름은 산이 울창해서, 가을은 단풍이 아름다워서, 겨울은 폭신폭신한 침구에 감싸여 잠드는 행복감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얼굴 찌푸리고, 기분이 나빠질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런 마음이라면 일년 내내 허투루 보낼 날은 하루도 없지 않을까. 매일이 다른 방식으로 행복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선이 책을 읽는 사람까지 긍정적인 마인드가 되도록 만들어 주는 느낌이었다. 해피 바이러스가 필요한 이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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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처럼 노래하라 - 물속 생명을 조율하는 소리,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아모리나 킹던 지음, 김지원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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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수중에서 소통하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소리는 주파수, 지속 시간, 타이밍, 진폭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동물의 청각 능력에 따라서 다른 개체들로부터의 음정이나 소리를 구분할 수도 있다. 인간은 주로 시각적 생물이지만(이것은 주관적이고, 아마도 문화적인 평가다) 우리 역시 핵심적인 인간적 소통의 특성으로 소리를 사용한다. 바로 언어다. 파도 아래에서 그저 해양 포유류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동물들이 소리로 소통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p.114


우리 모두 욕조에 머리를 담그거나, 수영장에서 물 속에 들어갔을 때 소리가 희미해지거나 왜곡되어 잘 들리지 않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보통 물속에서는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혹은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이 감지하지 못하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귀를 사용해서 소리를 들었고, 인간의 귀는 수중에서 작동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물속에 사는 생물들은 침묵의 세계에 사는 것일까. 물속에는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은 인간이 여태껏 놓쳐왔던, 놀랍도록 다양한 수중 소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자들은 많은 수중 동물들의 경우 다른 감각들(시각, 미각, 후각, 촉각)은 물속에서 종종 약해지는 반면에 청각은 강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물속에서 소리는 공기 중에서보다 4.5배 더 빠르게 움직이고, 적절한 조건에서 전달되는 적절한 소리는 바다를 건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래와 물고기가 많은 소리를 내고, 심지어 노래를 한다는 사실부터 산호초, 문어, 가재처럼 소리를 거의 내지 못하는 것 같거나 귀라고 부를만한 것을 갖지 않은 동물들조차 물아래에서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부터 매우 놀라웠다. 동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의 인지 너머에 있는 주파수대에서 서로 소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왜 소리가 물속 동물들에게 중요한지, 소리가 물속에서 공기 중에서와는 어떻게 다르게 움직이는지, 왜 우리가 파도 아래에서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지, 듣게 된다면 어떤 것을 배우고, 듣지 못하면 어떤 것을 놓치는지에 관해 이야기해준다. 




새해의 바다는 어둡고 얼음으로 덮여있으며, 조용하지만 고요하지는 않다. 얼음이 빠직거린다. 물고기는 조용히 그르렁거리고 턱수염물범들은 떨리는 음을 낸다. 5월쯤 얼음이 깨지기 시작하면서 쿵쾅 소리가 나고, 바람과 파도의 휘파람 소리가 커진다. 벨루가가 울음을 울기 시작하고, 수염고래도 울고, 턱수염물범은 점점 조용해진다. 고래의 울음은 7월과 8월에 절정에 달하고, 선박 소음 역시 마찬가지다.               p.310


바다는 지구 면적의 70프로를 넘게 차지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5프로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다는 항상 미지의 세계였다. 바다 속 세계가 결코 조용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바다 생물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물속 소리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너무도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바다에서 심해의 긴수염고래가 발하는 울음소리는 무려 72킬로미터를 갈 수 있다고 한다. 고래들의 울음소리는 적절한 환경에서는 수백 킬로미터까지 닿는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어떻게 1,0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다른 개체와 소통하고 싶어하는지, 고래들의 신호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롭게 느껴진다. 


사실 고래가 소리를 내는 방식이라던가 노래로 소통을 한다는 사실은 꽤 많이 알려져 있지만, 물고기가 소리를 낸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집에서 물고기들을 여러 마리 길러 보기도 했기 때문에 물고기가 소리를 낼 뿐만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는 합창도 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이었다. 수중 의사소통의 대가 중 일부는 가장 단순한 '목소리'를 가진 존재인 물고기들인데, 그들은 놀랄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를 내고, 굉장히 기발하다. 고래의 소리가 아마 가장 유명하겠지만, 물고기의 소리는 굉장히 일찌감치 진화했고, 소통의 원리를 가장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 책 속에서 저자가 어두운 밤에 작은 해안가 동네의 조용한 만에서 청음기를 물속에 넣고는, 소리를 듣는 장면이 있다. '확실하게, 착각할 수 없는 허밍이 들린다. 내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너무 커다래서 뺨이 아플 지경이다." 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상상해 보았다. 청음기를 물에서 들어 올리자 소리는 즉시 사라지는데, 조용한 밤공기 속에서 물고기들이 바닷속에서 온힘을 다해 부르는 노래 소리를 직접 듣게 되면 어떤 기분일지 눈앞에 그려져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 이 책을 통해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물속 생명이 내는 경이로운 소리의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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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신세계 - 동물이 가르쳐준 인간의 12가지 경이로운 감각
재키 히긴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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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눈박이귀신고기의 두개골 안에서 어떻게 이러한 메커니즘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지 묻자 더글러스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철학자들의 영역으로 남겨두겠습니다." ... 이 의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사실에 근거한 사고 위에 더 많은 상상력을 더해야 한다. 공작사마귀새우의 사례는 다른 생명체의 눈을 통해서 세계를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었는데, 심해 공간에서 끌어올린 '네눈박이' 생명체의 눈을 통해서 세계를 보려면 우리의 상상력을 극한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p.84


우리는 감각 기관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지각으로 주변 세계를 느낀다. 이러한 감각 덕분에 책표지를 보고, 손에 전해지는 무게를 느끼고,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가끔 보면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들으면서도 귀 기울이지 않으며, 들이마시는 공기 속 향기를 자각하지 못한다. 익숙함이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하고, 세계의 경이에 눈과 귀를 닫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인지의 영역 너머에서 작동하는 수많은 감각들을 경험하게 해준다. BBC, 내셔널지오그래픽, 디스커버리 채널 등에서 약 20년 동안 야생 동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저자는 세계 곳곳에 있는 과학자들을 직접 취재하며 알게 된 놀라운 발견들을 통해 인간에게 오감 이상의 더 넓은 미지의 감각 세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공작사마귀새우는 동물계 '최고의 색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영장류의 인지 능력이 있는 것처럼 눈을 마주치는 행동을 하는데, 이는 공작사마귀새우가 지닌 수많은 시각적 능력의 하나일 뿐이다. 그들의 눈은 표면이 낱눈이라고 부르는 육각형 수정체 수천 개가 촘촘히 박혀 있는 구조로 밝고 선명한 서로 다른 색의 작은 덩어리들을 가지고 있다. 빨강, 주황, 노랑, 파랑, 분홍, 보라색이 흩어져 있는데, 마치 눈 속에 무지개가 숨어 있는 것과도 같다. 각 줄의 세포들이 각기 다른 파장을 흡수하기 때문에, 공작사마귀새우가 보는 세계는 수많은 색으로 가득하다. 실제로 감각신경학 연구를 이끌었던 저스틴 마셜 교수는 '이 정도의 색 지각 능력이라면 어이없이 과한 것이 아닌가 싶어 당황스러웠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그야말로 공작사마귀새우의 눈은 이 세상 눈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색각은 우리 인간이 세상을 보는 많은 방식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던져준다. 




먼지거미는 자연의 시간을 상징하는 부적 같은 존재다. 우리는 우리에게도 시간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바 있다. 이 발견에 용기를 내어 인공 시계는 내던지고 우리의 몸속 시계에 따라도 되지 않을까. 먼지거미가 손쉽게 발현하는 생체리듬이 우리가 꿈꿔온 시간여행 아닌가.... 어쩌면 우리의 여덟 다리 친구에게 길을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존스는 말했다. "이 거미들이 어떻게 매일 아침 아무 해도 입지 않고 시차를 조정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능하게 해줄지 상상해보세요...."                 p.367~368


먼지거미는 사람 머리카락 한 가닥의 10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움직임도 탐지해낸다. 그들은 그 미미한 움직임이 바람에 흔들린 것인지, 수컷 구애자가 접근하는 것인지, 영양 만점 먹이가 잡힌 것인지 구문한다. 또 흥미로운 점은 거미들이 어둠 속에서 거미줄을 부분적으로 수선하는 게 아니라, 매일 밤 아예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것이다. 주행성인 먼지거미들은 한밤중, 해가 뜨기 전부터 깨어 움직인다. 바치 빛을 앞질러 예측하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도 시계 장치처럼 규칙적으로. 한편 신경초라 불리는 미모사는 가지와 잎이 햇볕이 강한 쪽을 향해 자라는 식물이다. 미모사를 빛이 들어가지 않는 공간에 두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 태양과 햇빛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직접 빛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간을 감지하는 식물이라니 놀랍기 그지 없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사실 감각이 허락한 만큼만 세상을 경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계 곳곳에 있는 과학자들을 직접 취재하며 알게 된 놀라운 발견들에 대해 읽으며 인간에게 5감 이상의 더 넓은 미지의 감각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감탄도 하게 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짓는 먼지거미는 아주 특별한 생체시계를 가지고 있고, 큰뒷부리도요는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집을 찾을 수 있는 방향감각이 있으며, 공작사마귀새우는 인간보다 4배 더 넓은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 색각을 지녔다. 빛이 전혀 없는 심해에 서식하는 귀신고기는 출중한 시각 능력을 소유했으며, 큰회색올빼미의 예리한 청력은 소리 하나만으로 놀랍도록 정확하게 먹잇감을 찾아내어 귀로 보는 능력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 외에도 흡혈박쥐, 골리앗메기, 블러드하운드, 참문어 등 열두 종의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경이로운 감각들을 통해 미지의 감각 세계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가능성을 상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을 해낼 수도 있는 존재로서 인간 감각의 새 지평을 여는 이 책을 통해 지각의 '멋진 신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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