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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
노은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왜'를 어떻게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너무 쉽게 묻거나 혹은 아무도 묻지 않는 것들, 그리고 함부로 말해지는 것들과 말할 수 없는 것들. 그 사이에서 알 수 없는 모호한 마음들이 제발 알아봐달라고 아우성친다.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위로받을 수도 없는 마음들이다. 이름 없는 마음은 여러모로 다루기 어렵다. 누군가 "마음이 어때요?"라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다. p.4
예전에는 조용하고 예의 바른 것이 미덕이었다면, 지금은 단정하게 감정을 다루고, 애쓰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어려움을 소화해내야 하며, 실수조차 멋지게 감추어야 하는 자연스러운 완벽함이 추구되는 시대이다. 기름진 음식을 즐기지만 날씬한 몸을 유지하고, 갈등 상황에서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되 다른 사람을 수용하며, 직장에서는 유능한 동시에 여유로운 동료여야 하고, 집에서는 따뜻하면서도 간섭하지 않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한 가지를 따르자니 다른 하나가 어긋나고, 둘 다 따르자니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쉽지 않은 요구가 끊임없이 계속 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면서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과 마주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취약점, 특정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쿨하지 않은' 진짜 내면은 숨겨지고 점점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쓰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모순 속에 우리는 노력하는 모습을 들킬까 걱정하는 불안과 애써도 좋은 결과가 없을 까봐 부끄러운 수치심, 남에게 보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다른데서 오는 분열, 감정 표현을 억제하고 완벽함을 유지하려다 완전히 소진되고 마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야근은 자율이라며 정작 매일 야근하는 상사, 하루 종일 남의 기분만 생각하느라 정작 나를 살필 여유는 없고, 너무 보고 싶은데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전혀 다른 감정의 공존과 애인과 함께 있어도 늘 혼자인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리며, 절대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마음과 후배가 내 자리를 뺏을까 걱정되는 심리 등 누구나 한번쯤 겪어본 감정들을 풀어내고 있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감정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스스로를 비난하는 대신,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자신에게 호기심을 갖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착한 사람'이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과거의 관계를 지켜주었다면, 이제는 아팠던 내 감정을 돌볼 차례다. 상대방의 무심함이나 거절을 나의 결함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내가 느낀 감정에 주목해 보자... '착한 사람'의 외피를 벗고 나의 마음을 말할 수 있을 때, 관계도 나 자신도 건강해질 수 있다. p.272
오래 사귄 연인과 이별했을 때, 헤어져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좋으면서 밉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면서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음, 또는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을 그리워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하고 분노할 때, 좋은 사람이라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멀리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감정과 태도, 경향성을 동시에 느끼는 것을 '양가감정'이라 부른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누구나 종종 경험하게 된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퇴사 결정에 후련하면서도 불안해지고, 동료의 승진 소식에 축하하는 마음과 질투를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양가감정은 우리가 자기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준다. 중요한 것은 양가감정을 억누르거나 삭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괜찮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양가감정을 잘 다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은 기쁨, 슬픔, 즐거움, 불안, 두려움 등 명료한 감정들 외에 모호한 마음에도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28가지 심리학 개념과 정신분석 이론을 기반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겪는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되, 그 과정에서 힘들어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을 지칭하는 EP문화,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내면의 감정과 욕구는 억압된 심리상태인 노모패시, 타인을 기쁘게 하느라 내 감정은 뒷전인 피플 플리저... 그 외에도 리머런스, 판타즘, 말비빔, 시블링 트라우마, 데드마더 콤플렉스 등 일상에서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던 감정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탐구하고, 해석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마음들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정신분석의 언어를 빌려 낯설고 모순된 마음들에도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지금의 감정이 어떤 관계와 경험 속에서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이름 없는 마음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되찾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과 경험이 ‘생각되고’ ‘견딜 만해’지면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