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하는 고고학자 - 고대 인류 문명의 모습과 소리, 냄새, 맛을 재현하는 과학자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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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어 발굴 현장에 남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나무 자루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에렌은 사색에 잠겨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예컨대 나무─이 옛날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긴 것일 수 있어요. 어쩌면 석기 시대가 아니라 목기 시대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라요." 이것은 정말로 참신한 통찰인데, 고고학 교과서에서는 결코 접할 수 없는 통찰이다. 이 통찰을 얻으려면, 실제로 나무와 돌로 도구를 만들어봐야 한다.               p.107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의 도덕성과 윤리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주었던 <과학 잔혹사>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샘 킨의 신작이다. 과학과 스토리텔링을 함께 엮어 내는 그의 뛰어난 재능이 빛을 발하는 책이다. 보통 고고학이라고 하면 유물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사람들이 남긴 물리적 흔적으로 통해 그들이 살아가던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물만으로 옛사람들에 대해서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여기서 '실험고고학'이 등장한다. 


실험고고학자들은 과거 사람들의 행위를 직접 재현하며 유물에서는 떠올리기 힘든 '과정'을 복원해낸다. 이 책은 과학과 기술이 고고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현장을 누비며 실험에 직접 참여하는 동시에, 고대인들의 삶을 픽션으로 현실감 있게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결코 체험할 수 없는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세계 곳곳에 묻혀 있던 새로운 역사를 밝혀낸다는 점이 흥미로웠기에 고고학을 다룬 책들을 꽤 많이 읽어본 편이다. 그럼에도 '실험고고학'이라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너무 신기했다. 석기 시대의 뗀석기를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 보고, 고대의 수렵채집인들이 사냥에 사용했던 창을 그대로 구현해보기도 하고, 피라미드가 건설되는 동안 노동자들에게 지급되었던 이집트 빵과 맥주를 당시 레시피로 만들어 먹어보는 것은 그저 유물들을 보고 관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안뜰에서 실험을 마무리할 때, 해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알래스카 도자기를 재현하려는 시도들에서 겪은 실패들을 회상했다...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웃을 여유가 있다. 우리가 만든 못생긴 도자기가 부서져도 잃는 것은 자존심과 약간의 노동뿐이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지식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북극 지방의 빙상에 있던 아마루크에게는 훨씬 큰 것이 걸려 있었다. 그곳에서는 잘못 만든 도자기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p.536


고대 이집트는 인류 최초의 문명은 아니지만, 가장 거대하고 가장 오래 지속된 문명으로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반짝이는 보물과 불가사의한 미라, 그리고 고대 세계의 가장 경이로운 업적인 피라미드까지 이집트의 유산이니 말이다. 피라미드 건축은 전 사회가 동원된 노력이었고, 통념과 달리 피라미드 건축을 위해 일한 사람들은 박해받는 노예가 아니라, 이집트의 영광을 위해 노력한 자부심 높은 노동자들이었다. 가장 미천한 하인부터 가장 고귀한 왕족까지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식사 때마다 빵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4000여 년 전, 피라미드 노동자들이 먹던 빵은 어떤 맛이었을까?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이집트 미식학자인 시머스 블랙리는 이집트학자와 미생물학자의 자문을 통해 고대 이집트 빵을 구현해 낸다. 실제 이집트로 가서 고대 도기에서 효모를 채취했고, 파라오 시대의 화덕을 만들고 아카시아 나무를 구해와 1년 동안의 연습 끝에 제대로 된 빵을 만들어 낸다. 저자는 그를 만나 그가 구현해낸 고대 이집트의 빵 한 덩이를 직접 먹어본다. 스펀지처럼 폭신하면서도 쫄깃하고, 아주 맛있는 효모의 톡 쏘는 맛이 살아 있는 빵이었다. 이렇게 고대 인류 문명의 맛을 현대에 재현해내는 것이 실험고고학이다. 


실험고고학자들은 직접 돌을 깨고, 불을 피우고, 창을 만들어 던지며, 동물의 사체를 파묻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람의 시신을 기증받아 직접 미라를 만들어보기도 한다. 과거와 관련된 개념을 실험실에서건 자연에서건 실험을 통해 검증해보는 것이다. 물건을 발굴하고 수동적으로 그것에 대한 가설을 세우는 대신,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면서' 능동적으로 과거를 재현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바이킹의 맥주를 양조하고, 전차를 몰고, 아즈텍인의 공놀이를 직접 해보고, 투탕카멘 왕이 먹었던 시큼한 맛의 빵을 굽는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고고학인 셈이다. 어떻게 고대 이집트의 빵이나 수백만 년 전의 도구를 현대에 재현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면 이 놀라운 책을 놓치지 말자. 논픽션과 픽션을 근사하게 버무려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과거를 온몸으로 경험해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책이니 말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7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짧게 느껴질지도 모르니, 시간을 충분히 두고 천천히 읽어 보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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