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처럼 생각하기 - 기후 위기의 지구에서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벤 롤런스 지음, 김주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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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너희가 경험하는 세상은 부모 세대가 살아온 세상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졌어. 두 세상 사이에는 내게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간극이 존재하지. 원래도 다른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지 상상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단다. 만약 세대 간 경험 차이가 너무 벌어지게 된다면 과거 세상을 바탕으로 쓰인 책과 이야기가 더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게 될 거야. 한 세대와 다음 세대가 같은 세상을 공유한다는 개념도 무너지겠지.              p.63~64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다가올 10년 후나 20년 후에 내 아이가 안정된 직장에서 보람 있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살기 좋은 나라에서, 건강하게 아프지 않고 지내길 바라기 때문에, 내가 없더라도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전례 없는 폭염을 겪었던 올해 여름을 지나면서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극단적인 기상 현상으로 인해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 심각한 홍수 등 지구 곳곳이 기후 위기로 인한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이니 말이다. 북극의 기온은 지구상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50년 만에 찾아오던 폭염이 이제는 10년에 한번 꼴로 찾아온다. 게다가 더 길고, 더 뜨겁다. 


이 책은 바로 기후 위기라논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 아이들에게 뼈아픈 진실을 마주하고 다정하게 연대하는 법을 알려 준다. 생태 활동가이자 작가, 기후 대안 학교의 설립자인 저자는 두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부모로서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다 괜찮아질 거야, 라는 말대신 지금 우리 세계가 겪고 있는 변화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알려주기로 한 것이다. 현대 사회는 기술과 의학 등에서 눈부신 발전을 성취했지만, 동시에 우리의 서식지와 생명 유지 시스템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인류의 생존이 걸린 실존적 위기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미래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이들은 앞으로 무엇을 알아야 할까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이 결국 부모가 되는 일이라고 말이다. 




생물권이 파괴되어 가는 부당한 현실이 새삼 뼈아프게 다가오더구나. 1970년대 내가 태어났을 때 존재했던 야생동물 개체수의 80퍼센트 이상이 내 생애 동안 사라졌어. 막대한 양의 탄소 오염 물질도 이 시기에 배출되었고, 그중 절반 이상은 2000년 이후 발생했지. 플라스틱 쓰레기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 파괴는 이처럼 최근 들어 급격히 가속화된 거야. 시시, 네 말이 맞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왜 하필 너는 이런 시대에 태어나, 이런 가혹한 지식을 안고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걸까?               p.248


기후 변화 때문에 계절이 뒤섞이고 있다. 기후 변화는 모든 게 더 따뜻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이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고 망가져 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날씨와 계절과 연관된 기존 상식이 무너진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 홍수와 산불이 일상화된 시대는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뒤바꿀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아이들 세대가 걱정되는 게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 변화는 인간이 멈추기 어려울 만큼 규모가 크고 영향 범위가 넓어서,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기후 재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모든 어른들에게, 자녀를 염려하며 미래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상실을 슬퍼하는 법을 배우고, 멸종해 가는 생명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될 아이들을 위한 선물과도 같다. 


인류는 언제나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지식과 전통을 전해왔고, 역사적으로 부모의 역할 또한 생명 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일이다. 이 책이 크게 와 닿고 공감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아주 오래된 인간의 습성이고, 부모들이 늘 해온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야기는 세상을 이해하게 해주고, 우리 마음을 감싸안아 주며, 상상력의 문을 열어주고, 지도처럼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인간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우리가 서로 연결된 생태계의 일부이며, '숲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기댈 수 있는 건 이야기뿐이라는 저자의 말이 크게 와 닿았다. 동물에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숲과 바다처럼 생각하는 생태적 사고 속에서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이 책이 다정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누구나 알기 쉬운 말로 기후 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에 관한 기본적인 사실을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삶은 언제나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므로 결코 늦지 않았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일상을 위협하는 재앙 수준이 된 지금, 꼭 읽어봐야할 책이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기후 위기 시대를 헤쳐 나갈 지헤를 배우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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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바꾸려는 사람들 - 프랑켄슈타인에서 현대 신경기술까지, 뇌과학으로 만나는 신경윤리의 질문들
김명호.류영준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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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73년 오스트리아 궁정 의사였던 양 잉엔하우스는 전기 실험 중 우발적인 사고로 머리에 큰 전기 충격을 받았다. 사고 직후, 그는 질문에 답하지도 읽거나 쓰기도 하지 못했기에, 주변 사람들은 그가 죽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다음날, 그는 회복되었을 분만 아니라 머릿속이 더 맑고 또렷해진 기분을 느꼈고, 판단력이 전보다 더 예리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8세기 중반부터 확산된 전기 치료는 정신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생각했고, 신경 질환부터 정신 질환 치료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되어 왔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을 탄생시킨 것이다.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사람의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실험을 시작해, 결국 완전히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이 오싹한 생명 창조의 순간이 허무맹랑한 허구가 아니라, 당대의 과학적 실험으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은 과학사의 흥미진진한 장면들을 그래픽노블을 통해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부터 현대 신경기술에 이르기까지, 생명과 전기의 관계, 뇌의 작동 원리, 정신 질환의 치료, 인간 향상 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을 ‘신경윤리학’이라는 렌즈로 살펴본다. 왜 사람들은 머리에 전기를 가하면 정신과 육체가 향상된다고 믿게 되었을까? 살아 있는 건 어떤 상태이며, 살아 있는 존재와 죽은 존재는 어떻게 다른 걸까? 그렇다면 생명의 본질은 무엇일까? 


질병을 고치기 위해 시작된 의학 기술이 어느새 인간의 능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도구가 된다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을까. 전기와 화학적 신호를 인위적으로 조절해 인체 기능과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어디까지 인간을 바꾸어도 되는 것일까? 질문이 이어지다 보면 결국 치료와 향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정상 상태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점에 이른다. 무엇을 정상 상태로 볼 것인가, 그 정상은 자연적인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인가. 





사실 메리 셸리는 소설 속에서 괴물이 생명을 얻게 되는 순간을 모호하게 서술했는데, 이후 수없이 각색된 다른 작품에서 존재의 불꽃은 보통 전기(번개)로 표현되었다. 당시만 해도 '살아 있다는 것이 생명력이 덧붙여진 상태라면, 여러 물질에 덧붙여져 그것을 움직이게 만드는 전기는 생명력과 모종의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8세기부터 유럽은 새로 발견한 힘이자 생명과 영혼의 근원으로서 보이지 않는 유체인 전기에 매료되었다. 이후 실험과 관찰이 거듭되면서 전기생리학과 신경과학의 기초가 생기고, 전기 연구의 초점이 신체 전체에서 신경계와 뇌로 이동하게 되면서 20세기 초 정신분석학이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점차 겉으로는 알 수 없었던 뇌의 활동을 관측할 수 있게 되면서, 신경학적, 정신의학적, 심리학적 현상에 대한 탐구가 깊어진다. 


재미있는 점은 '뇌를 자극해 인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생각과 치료를 넘어 향상을 탐색하려는 시도'는 21세기가 된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인공 생명인 괴물을 탄생시켰지만,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 책임을 사회로 떠넘겼던 것처럼, 과학기술의 발전 역시 늘 이와 유사한 패턴을 반복해 오고 있는 것이다. 




만약, 시험 기간에 집중력을 30% 올려주는 약이 있고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해보자. 게다가 친구들 절반이 이미 그 약을 먹고 효과를 본 상태다. 그렇다면 나도 그 약을 먹게 될까? 전체 분위기상 자연스럽게 먹게 되지 않을까? 그 약을 먹지 않을 자유와 선택권은 각자에게 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자칫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과학 개념을 명확하게 정리해주고, 지루할 수도 있는 지점도 시각적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래픽노블이라는 형식이 딱딱한 과학 개념을 더할나위없이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과학 지식과 어려운 용어들을 나열하는 대신, 실험실 장면과 인물들의 논쟁을 만화로 보여주기 때문에 가독성도 뛰어나다. 쉽고 재미있게 뇌과학과 신경윤리학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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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회한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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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앞으로 나는 사람을 딱 하나 죽일 거야. 반드시 자연사로 보이게 말이야. 그러나 시신은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겠지.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들어봐.

TV 방송국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으나 과거 '커렉터'라는 전례도 있어서 현경 수사1과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p.89


우라와 의대 교수이자 법의학 교실의 주인인 미쓰자키 교수는 한 방송에 출연해 사법 해부의 필요성과 예산, 기관, 인원도 부족한 현실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하고 시청자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그러던 중 누군가 방송국 홈페이지에 도발적인 글을 남기는데, 반드시 자연사로 보이게 사람을 딱 하나 죽일 테니, 살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시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과거에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던 전례도 있어서 현경에서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 현에서 발견되는 모든 변사체를 의심의 눈길로 봐야 하는 난감한 상황 속에서 과연 '살인'을 밝혀낼 수 있을까. 


미쓰자키 교수가 방송에서 말한대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90퍼센트는 돈으로 해결이 된다. 반대로 돈이 없어서 감춰진 진실과 돈이 없어서 운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미쓰자키 교수는 그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10퍼센트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카메라에 대고 말할 사람이 아니기에, 대부분은 그가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학에 쇄도한 항의 전화를 비롯해서 범인 역시 그러했을 것이고 말이다. 이야기는 연작 단편 형식으로 각각의 사안에 대해 해부와 사인 규명을 반복하며 살인 여부를 확인해 나간다. 병사 가능성이 큰 노인, 지병으로 죽은 것처럼 보이는 베트남 노동자, 오토바이 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한 남자, 열중증으로 거리에서 쓰러진 필리핀 여성,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영아 돌연사로 사망한 아기까지 유족의 반대, 비용 문제 등 사법 해부를 쉽게 할 수 없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 고테가와와 마코토의 고군분투가 펼쳐 진다. 




마코토는 최근 미쓰자키의 상태를 설명했다. 이전이라면 전혀 관여하지 않았을 범인의 상황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살해 동기에도 관심을 드러냈다는 것. 쓰쿠바는 설명을 다 들은 후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묘하군. 시신에만 관심 있는 사람이 범죄 자체에 관심을 가지다니."                 p.311


나카야마 시치리의 법의학 미스터리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 시리즈'가 세 번째 이야기로 찾아왔다. 1편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2편 <히포크라테스 우울> 모두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내가 썼던 리뷰를 찾아보니 무려 9년 전이다. 정말 오랜 만에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 멤버들을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법의학계의 권위자 미쓰자키 교수와 자신은 시신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는 미국인 조교수 캐시, 그리고 연수 차 왔다가 결국 정식 조교가 된 마코토, 그리고 저돌적인 형사 고테가와와 현경 최고 검거율의 신화 와타세까지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법의학 교실에 휴게실이냐며 타박을 줄 정도로 뻔질나게 드나드는 형사 고테가와와 점점 더 베테랑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 마코토의 티격태격 콤비 플레이가 너무도 유쾌하고, 귀엽게 느껴져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총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 문제, 인종 차별, 각종 혐오, 법의학 제도의 문제 등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이고, 이들은 죽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그것도 부검을 하게 되는 경우에만 가능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법의학 교실 팀과 고테가와는 어떤 진실에 도달하게 될까.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마코토와 고테가와의 케미가 돋보이고, 미쓰자키 교수의 과거가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다작을 하기로 유명한 나카야마 시치리는 음악, 경찰, 의료 등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를 선보여 왔는데, 개인적으로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 시리즈도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허둥대고 삐걱대던 사이에서 이제 제법 손발이 잘 맞는 관계가 된 마코토, 고테가와 콤비의 활약도 앞으로가 더 기대되고 말이다. 자, 가독성 뛰어난 미스터리를 찾고 있다, 법의학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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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나선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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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위로할 필요 없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굳이 말하자면 지금 하는 일은 속죄야."

이 물리학자답지 않은 예민한 말투였다.         

"......어머님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가요?"

"신만이 아시겠지. 아버지 말씀으론 반년 전 흡인성 폐렴에 걸린 이후로 몇몇 장기 기능이 저하된 모양이야."              p.127


도쿄 인근 바다에서 표류하는 시체가 발견된다. 사십 대 남성으로 추정되었으나 신원을 알 수 있는 물건은 없었고, 뒤에서 총에 맞았으니 자살 가능성은 낮았다. 최근 실종 신고된 인물이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는데, 신고한 동거 여성이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당연히 사라진 여성이 사건에 관여한 것처럼 보였으나, 남자의 사망 추정일에 그녀는 교토 여행 중이었다. 함께 간 친구가 있어 증인도, 알리바이도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구사나기는 수사 과정에서 뜻밖에 오랜 친구인 유카와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는 구사나기의 요청은 단칼에 거절하며, 다른 형태라면 수사에 협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과연 유카와는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 책으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후반부에 단편 <겹치다>라는 작품이 에필로그처럼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갈릴레오 시리즈 중 장편과 단편이 함께 엮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투명한 나선>에서 벌어졌던 사건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여운을 남겨주고,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도 가지게 만들어 주었다. 대부분의 시리즈가 그렇듯이 전편을 읽지 않더라도 전혀 상관없을 만큼 각각의 이야기가 완결된 구성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 시리즈를 읽어 보지 않았다면 이 작품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괴팍한 학자의 개인사를 통해 수사에 협조할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고, 캐릭터에게 애정이 생긴다면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도 더 재미있게 읽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나에의 가슴에 북받쳐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억누르려고 침을 꼴깍 삼키고 마나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까 다른 기회라고 했지? 자세한 사건 설명은 다른 기회에 얘기해 주겠다고. 그럼 나를 또 만나 줄 거니?"

"물론입니다. 저희는 가족이잖아요." 마나부가 미소를 지으며 뒷말을 이었다. "그렇죠. 어머니?"

숨이 멎을 정도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p.342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열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1996년 처음 연재되어 올해 30주년을 맞이했다. 이 시리즈는 경시청 형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부딪힐 때 친구인 대학 물리학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일명 탐정 갈릴레오로 통하는 물리학자가 과학적 증거와 논리적인 추리를 기반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상식을 초월하는 불가사의한 사건이나 초자연적인 현상 등 비합리적인 것들을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해결해내는 것이 이 시리즈만의 매력이기도 했다.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용의자 X의 헌신> 등 시리즈 작품들을 꽤 많이 읽어 왔기에, 이번 신작도 매우 기대가 되었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유카와 교수와 구사나기 형사 콤비의 활약'이라기 보다 그 동안 유카와가 긴 세월 동안 혼자 끌어안고 살아온 비밀이 드러나면서 "인간 ‘유카와 마나부’를 마침내 발견해 낸 작품”으로서 더욱 의미가 있다. 유카와가 자신의 과거와 얽힌 수수께끼와 마주하는 이 작품에 대해 작가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라며 오랫동안 간직했던 이야기를 비로소 풀어냈다고 말했다. 천재 물리학자가 평생 숨겨 온 비밀이 궁금하다면, 그가 저지른 죄(?)의 정체를 알고 싶다면 이번 신작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냉정하지만 냉소적이진 않은, 인간 유카와'를 발견하게 될테니 이 시리즈를 오랫동안 읽어온 팬이라면 색다른 감회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전해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식에 모두 놀랐을 것 같다. 나 역시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라 영원히 작품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너무 이른 나이에 별이 되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작품 집필 중이셨다고 하니 더 마음이 좋지 않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수십 년 동안 읽어온 독자로서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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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이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9
장강명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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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렇게 슬퍼? 그는 아내에게 가끔 물었다.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듯이 밀려와, 슬픔이. 아내가 대답했다.

그 문장을 곱씹을 때 그는 안개가 자욱해서 수평선이 보이지 않고 사람 하나 없어 쓸쓸한 바닷가 갯벌에 자신과 아내가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들의 네 발은 이미 진창에 잠겨 있다. 슬픔은 밀려 들어온다기보다는 차오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고 있다.            p.23


소설가인 안시찬은 몸이 안 좋아서 일찍 집에 들어온 아내가 자다가 구토를 하고, 제대로 의식을 못 차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해 119를 부른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그냥 좀 심한 감기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구급대원에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어눌한 목소리로 엉뚱한 대답만 한다. 결국 아내는 뇌출혈이라는 진단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게 되는데,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사흘 동안의 그 모든 과정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그 속도 그대로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듯이' 고스란히 감정을 체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안시찬은 스스로에 대해 '마음 깊은 곳에서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 '타인의 불행에 진심으로 무심해서 냉소를 보내려는 수고조차 하지 않'는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했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온갖 악덕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고, 그런 자신감이 때로 그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응급실에서도 그는 자신이 '갑작스럽게 아내가 쓰러지는 바람에 침통해져서, 응급실 침상 옆에서 밤을 지새우며 아내를 돕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착한 남편'처럼 보이는 연기를 하고 있다고 여겼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침통한가? 정말 슬픈가?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아내 곁을 지킬 건가? 심한 감기에 불과한데 119를 부르는 바람에 시간을 뺏겼다고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소시오패스가 아니었다. 그저 슬퍼하거나 공감하는 마음이 둔하고, 그에 비해 이성이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조급할 따름이었다. 실감을 못할 만큼의 거대한 비극 앞에 마주선 적이 있다면 누구나 그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침대 시트와 베갯잇을 건조기에서 말리는 동안에는 밀대에 끼우는 습식 물걸레로 바닥을 청소했다. 더러워진 청소포를 버리고 새 청소포를 밀대에 끼우려는데 손이 덜덜 떨려서 잘 되지 않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왜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무서웠다.

너무너무 무서워서 다른 감정을 품을 겨를이 없었다.            p.162~163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 쉰아홉 번째 작품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개인의 윤리적 선택을 집요하게 탐구해온 장강명은 이번 신작에서는 부부 관계와 가족의 문제로 관심사를 확장한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뇌종양 발병 이후, 병원과 현실적인 문제들 사이에서 흔들리던 남편의 심리를 따라가는 이 작품은 장강명 작가의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쓰여진 '소설'이다. 주변 인물을 비롯해 많은 부분이 허구인 소설이지만, 그의 아내에게 벌어진 일을 비롯해 주인공이 겪은 감정은 상당 부분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작품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 역시 이십여 년 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었기에, 가족에게 갑작스럽게 큰 병이라는 비극이 닥쳤을 때의 그 기분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십 여 년 전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당시 119를 불러 구급차를 탔던 기억부터 혼잡했던 응급실 한켠, 병원을 오갔던 언덕길 등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행히도 엄마는 완쾌하셔서 여전히 건강하게 계신다. 


장강명 작가의 글은 감상적이지 않아서 더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응급실의 풍경을 묘사하는 부분이라던가, 자살에 실패해 난동을 부리는 젊은 여성을 바라보며 무심코 생각하는 것들까지... 너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살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왜 그렇게 불확실한 방법으로 죽으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곧 이사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잔금을 지불하기 위해 아내 명의 통장의 비밀번호를 알아내야 하는 문제라든가...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이 서사에 핍진성을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말 진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글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읽는 내내 슬프기도 했다. '서성이다'라는 제목처럼 누구나 살다 보면 어찌할 바를 몰라 서성이고, 한 동안 떠나지 못해 그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두려움과 불안함, 죄책감과 자기혐오, 걱정과 사랑... 한 남자가 겪는 심리적 압박은 비슷한 경험을 한 모든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우리 가족이 이겨낸 것처럼 작가님도, 아내 분도 극복하고 이겨내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섣부른 기대와 낙관을 말하고 싶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필요한 순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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