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나고 찢긴, - 여성 바디호러 앤솔러지
조이스 캐롤 오츠 외 지음, 신윤경 엮음 / 문학수첩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그려낸 독특하고, 강렬한 바디호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이 든 화형 법정
사카키바야시 메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법을 구사한 범죄는, 법으로 심판할 수 없다. 이 판결은 범죄 그 자체보다 사람들의 공포를 키웠다. 수많은 도시에서 마녀 타도를 외치는 집회가 열렸고, 마녀를 자처하는 이들은 자취를 감췄다. 거기에 행동파인 시민들이 거리에 숨은 마녀를 찾아내려고 과격한 행동에 나서는 바람에 나라의 치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녀사냥'이라는 단어가 또다시 현실이 된 것이다. 결국 왕국 의회는 형범에 특별 조항을 신설해 마녀 범죄에 맞서기로 했다.             p.13


곧 추락사 사건의 마녀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화형 심문관으로 첫 임관을 하게 된 오페라는 검사 시절 쌓은 눈부신 실적으로 마녀의 죄를 입증해 보이겠다고 다짐한다. 화형 법정 사무국에서 마녀재판을 열기로 결정하면 사건 현장 인근에 저절로 법정이 나타난다. 그리고 심리가 끝나면 다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 마치 마법처럼. 법정이라기보다 꼭 원형 극장을 연상케 하는 높은 돔 천장 아래에 피고인석, 변호인석, 심문관석이 배치되어 있다. 피고인 컬러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 해럴드 베너블즈 가의 저택에 창문을 통해 침입했기 대문에, 마녀라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그 사건으로 집주인 베너블즈 씨가 베란다 난간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이상한 것은 화형 법정에서는 컬러가 그를 죽게 했느냐가 아니라 마녀인지 여부에 대한 판결만 내린다는 점이다. . 


십여년 전부터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 속에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며 이능력을 구사하는 마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녀가 저지른 살인 범죄가 일어났고, 이 나라의 법이 마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한 마법을 써서 저지른 살인을 심판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마녀 범죄에 맞서기 위해 '화형 법정'이라는 특수 사법기관이 생기게 된다. 사건이 발생하면 서커스 천막처럼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특별 법정으로 판사 대신 열두 명의 배심원이 평결을 내린다. 그리고 마녀로 단정된 자는 법정에서 곧장 화형에 처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사건의 진상이나 피고인의 진범 여부는 상관없이, 오로지 피고가 '마녀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만 판결을 내린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누군가는 부당한 일을 겪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이 작품은 마녀로 의심받아 지옥에 법정에 서게 된 인물들을 둘러싸고, 정의의 화형 심문관과, 책략의 변호인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 아니, 잠깐만요!"

다레카는 크게 당황해 난간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말했고말고요'라뇨! 세상에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는 변호인이 어딨어요!"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이 법정에서 다투는 건 살인 사건의 진실이 아닌 다레카 양이 마녀인지 여부입니다. 따라서 시의원을 살해한 사람이 다레카 양이라고 해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문제 돼요! 전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요!"                p.259


<15초 후에 죽는다>라는 작품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던 사카키바야시 메이의 신작이다. 전작이 치열한 두뇌 싸움을 소재로 한 네 가지 단편을 엮은 연작 단편집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사카키바야시 메이의 첫 장편 소설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훌륭한 구성 능력으로 주목 받고 있는 젊은 작가답게, 이번 신작에서 참신하고, 기발한 미스터리를 보여주고 있다. 고전 미스터리인 <독 초콜릿 사건>과 <화형 법정>을 결합해 새로운 형식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해서, 읽기 전부터 기대를 했다. 그 기대만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며, 고양이로 변신하고, 사람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는 마녀라는 존재를 논리적으로 사건을 판결해야 하는 법정에 세울 생각을 했다니 시작부터 매우 기발했다. 마법을 구사한 범죄는 법으로 심판할 수 없기에, 그런 마녀를 단속하기 위해 화형에 처하는 처벌을 내린다는 점은 다소 폭력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에서 마녀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논리적인 추리가 펼쳐지는 법정 미스터리와 비현실적인 마법이 만들어내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사건과 기발하고 정교한 트릭으로 유명한 존 딕슨 카의 수수께끼와 추리소설의 논리에 심리적인 면을 정착시킨 앤서니 버클리의 퍼즐 미스터리의 장점을 매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고전 미스터리의 계보를 잇되 오늘의 감각으로 확장'했다는 평가처럼 사카키바야시 메이는 이성의 논리와 비이성의 신비를 공존시키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특히나 이 작품에는 공정한 추리를 위해 사건의 양상과 건물 구조 등을 보여주는 열 세 장의 삽화와 도면을 삽입되어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독자들이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림과 도면을 통해 이야기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인물들과 함께 미스터리를 풀어 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 작품의 출간 이후 결말이 주는 강한 여운과 등장인물들의 향후 이야기가 궁금하다며 시리즈화를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고 하는데, 속편이 나와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자, 논리와 상상력의 경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특수 설정 본격 미스터리의 세계를 만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 - 테마파크 식물 총감독의 정원 이야기
이준규 지음 / 시공사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꽃을 찬양하지만 그것을 피우기 위해 영양분을 모으고, 추운 겨울바람을 견디고, 꽁꽁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숭고한 노력을 한 잎과 줄기는 미처 살피지 못한다. 잎과 줄기가 보내는 치열한 시간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분명 꽃 이외에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훨씬 많다. 이파리도 세상 모든 초록이 감히 따라가지 못할 깊이의 색감을 사계절 보여 준다... 몰라서 자세히 보지 못했을 줄기와 잎을 전면에 내세워 식물 본연의 미를, 다양함으로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을 정원에서 선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p.75


헤르만 헤세에게는 정원이 영혼의 안식처였고, 사색과 명상을 즐겼던 괴테는 탁월한 조경가, 정원가이기도 했으며, 빛과 인상의 화가 모네는 마음에 드는 풍경을 찾느라 여러 번 이사를 했으며 사는 곳마다 정원을 가꾸며 즐겼다. 하지만 도심에서 정원을 가꾸며 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종 꽃 축제며, 잘 꾸며진 정원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꽃축제를 최초로 시작한 곳이 바로 에버랜드이다. 40년간 무려 6천만명이 방문했으며, 신품종 장미도 40품종이나 개발해왔다. 이번에 만난 책은 영국에서 정원의 전통과 문화를 깊이 있게 공부하고 에버랜드에서 10여 년간 조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들려주는 '정원다운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수백만 명이 오가는 대형 테마파크 식물 총책임자로서 울타리로 둘러싸인 화단, 배경으로만 소비되는 꽃, 결과만 요구받는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정원의 본질을 찾기 위한 도전 과정을 하나씩 실행에 옮긴다. 무엇보다 '정원을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유산이 물리적인 공간에서 생명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재현'이 아닌 '성장'이다.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 문화재 다수가 파괴되었는데, 정원 문화도 예외가 아니어서 원형을 간직한 사례가 드물다. 역사 유적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복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살아 있는 식물을 소재로 한 정원을 당시 모습 그대로 되살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 하지만 정원 주인이 정원과 삶에 대해 가졌던 태도를 바탕으로 한다면 역사적 사실이 계속 성장하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p.249


정원과 조경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조경은 대중이 주인이 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인데 비해, 정원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개인이 주인이다. 조경은 공공의 영역으로, 정원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으로 이해하면 된다. 소설가가 촘촘한 논리로 이야기를 전개하듯 조경 디자이너는 휴식 공간, 산책 공간, 꽃을 감상하는 공간 등으로 분리된, 촘촘한 서사를 공간에 부여하고 동선으로 서사를 연결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환경 또는 자연이 주는 무한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만으는 이러한 공간을 공원이라고 부른다. 그에 비해 정원은 개인이 창조주가 되는 공간이다. 식물을 키우고, 애써 키운 식물이 야생 동물의 먹이가 되는 것을 막고자 담장을 두르면서 정원의 모습이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정원의 본질을 찾고자 영국으로 떠났고, 5년여의 시간 보내고 돌아왔다. 그래서 이 책에는 영국 정원 강의를 비롯해서 영국의 정원들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도 많이 수록되어 있어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정원에서 식물이 자라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서는 사람과 꽃이 가까이에서 서로 소통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에버랜드 정원도 처음에는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울타리가 눈에 거슬리고, 정원이 숨 쉬지 않는 액자 속 그림이 된 것 같아 숨이 턱 막혔다고 한다. 그는 꽃에 다가가려는 고객과 이를 막으려는 관리자들의 지루한 싸움을 끝내기 위해 더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만드는 대신 역으로 걷어 내기로 결정한다. 내부적인 저항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지만, 울타리를 제거해선 안 된다는 수만 가지 이유를 넘어서, 그는 기어코 그 일을 해낸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그 결과는 에버랜드에 직접 방문해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사람과 식물의 관계에 대해서, 사람과 자연이 함께 보내는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나 다양한 정원 사진들이 가득 수록되어 있어서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힐링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연을 '소비'가 아니라 삶의 태도로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능력자 - 제12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우수상 수상작 책깃노블
함설기 지음 / 책깃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개를 저었다. 생각도 하기 싫었다. 난 아직도 초능력자로서 살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제는 무너지는 비계를 막아 사람들을 구했다지만, 애초에 내가 초능력자가 되지 않았으면 체육관에 비계가 달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겐 초능력이 필요 없다. 그런데도 필요 없는 힘 때문에 평생을 초능력자로 살아가야 한다니.             p.59


고1의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 평범한 날, 교실 천장이 무너지고, 책상과 의자가 사방으로 날아가는 폭발이 일어난다. 마침 체육 수업이라 교실에는 한 명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한 명이 폭발의 원인이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누군가 흔드는 감각에 눈을 뜬 수안은 뻥 뚫인 구멍 너머로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20년 전 홍대 거리에서 폭발했던 중학생처럼, 나도 초능력자가 된 걸까. 오래 전 초능력자의 폭발로 엄마를 잃은 뒤로 자신이 가장 증오하던 존재가 되어버렸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보내던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드는 시기에 갑작스럽게 초능력자가 되기도 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각성'이라 불리는 초능력자들은 잊을 만하면 한 명씩 나타났는데, 이들은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폭발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초능력이 발생할 때 생기는 반작용으로 몸이 폭발 성분을 내뿜는 거였다. 문제는 그로 인해 애꿎은 일반인 피해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과 대각성이 될 아이들을 미리 구분할 수 없다는 거다. 그렇게 열일곱 수안은 하루 아침에 초능력자가 된다. 초능력자가 되기 전, 수안은 극단적인 '초능력자 강경 격리파'였다. 격리파 사람들은 폭발을 일으켜 죄없는 일반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자들을 사회에서 추방하라고, 잠재적 자폭 테러범들을 죽을 때까지 가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5년 전 국립초능력연구센터에 격리되었던 초능력자들이 연쇄 폭발해 전원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뒤로, 초능력자 격리제는 폐지된 상태였다. 수안은 초능력자의 인권 운운하는 소리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그 죽일 놈의 초능력자가 된 것이다. 




처음에 초능력자가 되었을 때, 그 '우리'에서 벗어난 것이 제일 무서웠다. 머릿속을 몇 년간 잠식해 온 혐오가 나 자신을 향하는 순간순간이 너무 괴로웠다. 내 인생은 얼마든지 극단적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 그런 결말이 바뀌게 된 게기는 놀라울 정도로 사소했다. 염우정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뛰어간 것. 그날 염우정의 뒤를 쫓지 않았다면, 애들한테 욕먹고 기죽어 발을 멈췄다면 나는 체육관 비계가 무너지는 사고를 막지 못했을 것이다. 안 해도 그만이었던 작은 행동이 그날 염우정의 목숨을 살리면서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p.286~287


원치 않게 '살아 있는 폭탄'이 된 수안은 우연히 체육관 붕괴 사고에서 초능력을 사용해 친구들을 구하게 된다. 제어패치 덕분에 사고 당시의 기억은 지워졌지만, 그로 인해 수안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이 조금 달라지게 된다. 정부에서는 재난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초능력자들을 동원해 사람을 구조하곤 했다. 그래서 수안도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도와 주면서 점차 새로운 세상에 대해 눈뜨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엄마를 죽게 만들었던 스타타워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수안은 친구들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엄마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찾아 나서게 되면서 자신이 미처 몰랐던 엄마에 대해 하나씩 더 알아 가게 된다. 그렇게 점차 사건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데, 과연 진짜 범인은 누구였으며 그 뒤에 숨겨진 더 큰 진실은 뭘까.


이 작품은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우수상 수상작이다. 초능력이라는 장치를 통해 차별과 낙인, 극단주의와 가짜뉴스가 확산되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데, 속도감 있는 전개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군더더기 없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초능력이란 매우 흔한 소재이기도 하면서, 잘 다루기만 하면 무주건 재미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작품처럼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 있는 이야기 속의 초능력이라면 더욱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책의 표지가 청소년 문학과 성인 문학 두 가지 버전으로 나왔는데, 성인판에서는 작가의 작업 노트와 캐릭터 및 공간 설정 자료를 수록한 스페셜 구성으로 만나볼 수 있다. 하루아침에 초능력자가 되어 두려움과 호감, 멸시와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된 기분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가장 증오하던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의 과정을 밀도 있게 보여주고 있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비뚤어진 세상에 맞서는 불완전하지만 특별한 연대의 이야기, 지금 바로 만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갖 근심
마리아나 레키 지음, 장혜경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뒤로 기댄다. 비스듬하게 기댄다. 너무 피곤하다. 나는 부스스 일어난 파란 코듀로이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속으로 질문한다. 얼마나 많은 얽힘과 풀림이, 얼마나 많은 꿈이, 얼마나 많은 이와 침묵과 바지가 여기에 누웠을까? 그러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잠이 든다. 나의 삼촌 울리히와 내가. 삼촌이 웅얼거리는 소리가 여전히 들린다. "우리가 붙들고 씨름하는 것들이 얼마나 하잖은가요. 우리를 붙들고 씨름하는 것들이 얼마나 위대한가요." 지금 저 구절은 확실히 릴케이다.            p.49


인생에 관한 한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 우리는 당장 내일 우리에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 지 알지 못한다. 두통은 사실 뇌종양일 수도 있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될 수도 있으며, 길을 가다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예약한 비행기가 취소될 수 있고, 아이가 학교에서 다칠 수도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생각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불확실한 우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는 불안과 우울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 문제가 되어 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불안의 한가운데에서, 하지 않아도 될 온갖 근심으로 둘러싸인 이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독일의 심리학 잡지에 연재된 서른아홉 편의 글을 엮은 것으로 두려움, 걱정, 불안, 상실, 상처, 고독 등의 주제로 쓰인 초단편 형식의 연작 소설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법한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 속 다양한 내면이 그려져 있는데, 한 걸음 비켜서서 바라보는 작가의 다정한 시선이 위로가 되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나 결핍이나 상처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고,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공포와 분노, 상실 등 크고 작은 '근심'들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극중 인물들은 잠을 이루지 못해 불면으로 힘들어 하고, 광장 공포증으로 나서지 못하며, 사랑의 상처에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그 중에서 평소에는 조용하고 매우 예의 바른 사람이지만 광장 공포증으로 힘들어 하는 폴 씨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엘리베이터와 대중교통을, 금방 밖으로 뛰쳐나올 수 없는 온갖 건물들을 무서워했다. 공포증을 털어내고자 행동치료사를 세 번이나 바꾸어가며 치료를 받았고, 불안을 가라앉히는 약도 먹어 봤지만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 그 상황들이 상상이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각자 자신만의 분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책 속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비제 여사에게는 진정제가 아니라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것도 시급하게 필요하다. 그녀와 함께 미치광이 교수들이 연구하는 그녀의 내면 지하 보일러실로 내려가줄 사람이 필요하다. 오이대왕에게 재갈을 물릴 사람(나라면 나중에는 그와 친구가 되도록 도와주겠지만, 일단은 나도 안전을 위해 재갈을 택할 것이다), 비제 여사를 생각의 덤불에서 꺼내줄 사람, 믿음이 가지 않는 자동이체를 해지할 사람, 선택지에서 불행의 역청으 긁어낼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p.194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랑해서 불안하고, 부모라서 불안하고,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관계가 불안하고, 미래가 불안하다. 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각종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 사고들부터 전세계적인 팬데믹과 테러, 재해, 그리고 일상에서 겪는 가족 문제, 회사에서의 고민, 연인 관계,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걱정까지 우리의 삶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삶은 매번 걸러내야 할 정보와 쉴 새 없이 많은 자극으로 둘러싸여 있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면, 불안과 근심, 걱정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들은 하나같이 삶의 일부가 되어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니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마음을 졸이고 흔들리며, 작은 일에도 금방 마음의 중심을 잃고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마리아나 레키의 글을 읽으면서 일상의 '온갖 근심'들으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 보면 내 이웃이, 내 친구가, 내 가족이 겪을 수도 있는 근심들이었던 거다. 그리고 비록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각종 근심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마리아나 레키의 글은 결코 무겁거나 비관적이지 않고, 기발한 유모와 따뜻함으로 하찮고도 위대한 우리의 근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분량이 짧기 때문에 가볍게 한 편씩 읽기 좋아서, 내 현실의 문제가 고단할 때, 스트레스가 극단에 치달은 것 같을 때 페이지를 넘겨서 한 편씩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읽다 보면 우리가 붙들고 씨름하는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지 깨닫게 되면 툭툭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고, 우리가 붙들고 씨름하는 것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되어 조금 덜 외로워지는 기분이 들 것이다. 타인에게는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근심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