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화형 법정
사카키바야시 메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법을 구사한 범죄는, 법으로 심판할 수 없다. 이 판결은 범죄 그 자체보다 사람들의 공포를 키웠다. 수많은 도시에서 마녀 타도를 외치는 집회가 열렸고, 마녀를 자처하는 이들은 자취를 감췄다. 거기에 행동파인 시민들이 거리에 숨은 마녀를 찾아내려고 과격한 행동에 나서는 바람에 나라의 치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녀사냥'이라는 단어가 또다시 현실이 된 것이다. 결국 왕국 의회는 형범에 특별 조항을 신설해 마녀 범죄에 맞서기로 했다.             p.13


곧 추락사 사건의 마녀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화형 심문관으로 첫 임관을 하게 된 오페라는 검사 시절 쌓은 눈부신 실적으로 마녀의 죄를 입증해 보이겠다고 다짐한다. 화형 법정 사무국에서 마녀재판을 열기로 결정하면 사건 현장 인근에 저절로 법정이 나타난다. 그리고 심리가 끝나면 다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 마치 마법처럼. 법정이라기보다 꼭 원형 극장을 연상케 하는 높은 돔 천장 아래에 피고인석, 변호인석, 심문관석이 배치되어 있다. 피고인 컬러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 해럴드 베너블즈 가의 저택에 창문을 통해 침입했기 대문에, 마녀라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그 사건으로 집주인 베너블즈 씨가 베란다 난간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이상한 것은 화형 법정에서는 컬러가 그를 죽게 했느냐가 아니라 마녀인지 여부에 대한 판결만 내린다는 점이다. . 


십여년 전부터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 속에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며 이능력을 구사하는 마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녀가 저지른 살인 범죄가 일어났고, 이 나라의 법이 마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한 마법을 써서 저지른 살인을 심판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마녀 범죄에 맞서기 위해 '화형 법정'이라는 특수 사법기관이 생기게 된다. 사건이 발생하면 서커스 천막처럼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특별 법정으로 판사 대신 열두 명의 배심원이 평결을 내린다. 그리고 마녀로 단정된 자는 법정에서 곧장 화형에 처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사건의 진상이나 피고인의 진범 여부는 상관없이, 오로지 피고가 '마녀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만 판결을 내린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누군가는 부당한 일을 겪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이 작품은 마녀로 의심받아 지옥에 법정에 서게 된 인물들을 둘러싸고, 정의의 화형 심문관과, 책략의 변호인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 아니, 잠깐만요!"

다레카는 크게 당황해 난간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말했고말고요'라뇨! 세상에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는 변호인이 어딨어요!"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이 법정에서 다투는 건 살인 사건의 진실이 아닌 다레카 양이 마녀인지 여부입니다. 따라서 시의원을 살해한 사람이 다레카 양이라고 해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문제 돼요! 전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요!"                p.259


<15초 후에 죽는다>라는 작품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던 사카키바야시 메이의 신작이다. 전작이 치열한 두뇌 싸움을 소재로 한 네 가지 단편을 엮은 연작 단편집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사카키바야시 메이의 첫 장편 소설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훌륭한 구성 능력으로 주목 받고 있는 젊은 작가답게, 이번 신작에서 참신하고, 기발한 미스터리를 보여주고 있다. 고전 미스터리인 <독 초콜릿 사건>과 <화형 법정>을 결합해 새로운 형식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해서, 읽기 전부터 기대를 했다. 그 기대만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며, 고양이로 변신하고, 사람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는 마녀라는 존재를 논리적으로 사건을 판결해야 하는 법정에 세울 생각을 했다니 시작부터 매우 기발했다. 마법을 구사한 범죄는 법으로 심판할 수 없기에, 그런 마녀를 단속하기 위해 화형에 처하는 처벌을 내린다는 점은 다소 폭력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에서 마녀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논리적인 추리가 펼쳐지는 법정 미스터리와 비현실적인 마법이 만들어내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사건과 기발하고 정교한 트릭으로 유명한 존 딕슨 카의 수수께끼와 추리소설의 논리에 심리적인 면을 정착시킨 앤서니 버클리의 퍼즐 미스터리의 장점을 매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고전 미스터리의 계보를 잇되 오늘의 감각으로 확장'했다는 평가처럼 사카키바야시 메이는 이성의 논리와 비이성의 신비를 공존시키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특히나 이 작품에는 공정한 추리를 위해 사건의 양상과 건물 구조 등을 보여주는 열 세 장의 삽화와 도면을 삽입되어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독자들이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림과 도면을 통해 이야기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인물들과 함께 미스터리를 풀어 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 작품의 출간 이후 결말이 주는 강한 여운과 등장인물들의 향후 이야기가 궁금하다며 시리즈화를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고 하는데, 속편이 나와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자, 논리와 상상력의 경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특수 설정 본격 미스터리의 세계를 만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