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 - 테마파크 식물 총감독의 정원 이야기
이준규 지음 / 시공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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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꽃을 찬양하지만 그것을 피우기 위해 영양분을 모으고, 추운 겨울바람을 견디고, 꽁꽁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숭고한 노력을 한 잎과 줄기는 미처 살피지 못한다. 잎과 줄기가 보내는 치열한 시간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분명 꽃 이외에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훨씬 많다. 이파리도 세상 모든 초록이 감히 따라가지 못할 깊이의 색감을 사계절 보여 준다... 몰라서 자세히 보지 못했을 줄기와 잎을 전면에 내세워 식물 본연의 미를, 다양함으로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을 정원에서 선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p.75


헤르만 헤세에게는 정원이 영혼의 안식처였고, 사색과 명상을 즐겼던 괴테는 탁월한 조경가, 정원가이기도 했으며, 빛과 인상의 화가 모네는 마음에 드는 풍경을 찾느라 여러 번 이사를 했으며 사는 곳마다 정원을 가꾸며 즐겼다. 하지만 도심에서 정원을 가꾸며 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종 꽃 축제며, 잘 꾸며진 정원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꽃축제를 최초로 시작한 곳이 바로 에버랜드이다. 40년간 무려 6천만명이 방문했으며, 신품종 장미도 40품종이나 개발해왔다. 이번에 만난 책은 영국에서 정원의 전통과 문화를 깊이 있게 공부하고 에버랜드에서 10여 년간 조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들려주는 '정원다운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수백만 명이 오가는 대형 테마파크 식물 총책임자로서 울타리로 둘러싸인 화단, 배경으로만 소비되는 꽃, 결과만 요구받는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정원의 본질을 찾기 위한 도전 과정을 하나씩 실행에 옮긴다. 무엇보다 '정원을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유산이 물리적인 공간에서 생명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재현'이 아닌 '성장'이다.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 문화재 다수가 파괴되었는데, 정원 문화도 예외가 아니어서 원형을 간직한 사례가 드물다. 역사 유적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복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살아 있는 식물을 소재로 한 정원을 당시 모습 그대로 되살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 하지만 정원 주인이 정원과 삶에 대해 가졌던 태도를 바탕으로 한다면 역사적 사실이 계속 성장하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p.249


정원과 조경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조경은 대중이 주인이 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인데 비해, 정원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개인이 주인이다. 조경은 공공의 영역으로, 정원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으로 이해하면 된다. 소설가가 촘촘한 논리로 이야기를 전개하듯 조경 디자이너는 휴식 공간, 산책 공간, 꽃을 감상하는 공간 등으로 분리된, 촘촘한 서사를 공간에 부여하고 동선으로 서사를 연결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환경 또는 자연이 주는 무한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만으는 이러한 공간을 공원이라고 부른다. 그에 비해 정원은 개인이 창조주가 되는 공간이다. 식물을 키우고, 애써 키운 식물이 야생 동물의 먹이가 되는 것을 막고자 담장을 두르면서 정원의 모습이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정원의 본질을 찾고자 영국으로 떠났고, 5년여의 시간 보내고 돌아왔다. 그래서 이 책에는 영국 정원 강의를 비롯해서 영국의 정원들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도 많이 수록되어 있어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정원에서 식물이 자라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서는 사람과 꽃이 가까이에서 서로 소통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에버랜드 정원도 처음에는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울타리가 눈에 거슬리고, 정원이 숨 쉬지 않는 액자 속 그림이 된 것 같아 숨이 턱 막혔다고 한다. 그는 꽃에 다가가려는 고객과 이를 막으려는 관리자들의 지루한 싸움을 끝내기 위해 더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만드는 대신 역으로 걷어 내기로 결정한다. 내부적인 저항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지만, 울타리를 제거해선 안 된다는 수만 가지 이유를 넘어서, 그는 기어코 그 일을 해낸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그 결과는 에버랜드에 직접 방문해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사람과 식물의 관계에 대해서, 사람과 자연이 함께 보내는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나 다양한 정원 사진들이 가득 수록되어 있어서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힐링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연을 '소비'가 아니라 삶의 태도로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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