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1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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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는 얼음처럼 찬바람이 눈꽃 회오리를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스튜디오 안은 한여름 같았다. 실제 거리를 완벽하게 재현한 세트장에서 출연 배우들과 엑스트라들은 강렬한 조명을 받아 마치 땡볕 아래 나앉은 듯이 보였다. 마침 그 장면은 내가 책을 쓰면서 아주 마음에 들어 한 부분이었다. 행인들이 오가는 거리의 한 카페 테라스에서 남녀 주인공 마크와 알리시아가 마침내 마주친다. 몇 년 동안 헤어져 지내다가 다시 조우하는 순간이다. 그들은 상대방에게 애써 말을 건넬 필요가 없다. 서로 마주보는 눈길만으로도 잃어버린 지난 시간을 되찾기에 충분하다.            p.23~24

 

알래스카 샌더스는 환한 햇살처럼 밝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게다가 어찌나 상냥하고 친절한지 그녀가 일하는 주유소 사장은 물론, 손님들 또한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운트플레전트의 스코탐 호수 근처 모래밭에서 알래스카의 시신이 발견된다. 곰이 시신을 훼손하고 있는 걸 누군가 발견해 신고한 것이다. 처음에는 곰에 의한 피해인가 했지만, 그녀의 사인은 교살이었다. 피해자의 가죽바지 뒷주머니에서 종이가 한 장 발견된다. '나는 네가 한 짓을 알아.'라는 컴퓨터로 쓴 짤막한 문구 한 줄이었다. 여러 미인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미모가 출중했고,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스물 두 살의 젊은 여성은 대체 왜 살해된 것일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자, 그리고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과 <볼티모어의 서>에서도 화자로 등장했던 마커스 골드먼이 등장한다. 작가인 마커스 골드만은 스물여덟의 나이에 발표한 첫 소설로 단 몇 주만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 작품이 바로 스승이자 멘토인 해리 쿼버트가 관련되었던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다. 해리의 집에서 유해 한 구가 발견되었는데, 수십 년 전에 실종되었던 소녀로 추정되었고, 그 일로 해리는 체포된다. 어린 소녀와의 부적절한 관계, 살인과 오랜 세월의 은폐로 인해 도서관마다 비치될 정도의 문학적 교과서같은 위대한 작품을 쓴 국민 작가는 한순간에 추락한다. 마커스는 스승에게도 분명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믿고, 그 사건에 뛰어들어 진실을 파헤치는 데 일조를 하게 되고, 그 과정을 소설로 써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다. 이 작품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에 등장하는 마커스는 바로 그 시점의 마커스이다. 첫 소설이 영화로 각색되어 크랭크인에 들어가고, 두 번째 책 <해리 커버트 사건의 진실>이 출간되어 영화 판권 계약을 논의하고 있는, 유명 작가가 된 마커스말이다. 하지만 그는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해리가 사라진 뒤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유일한 친구라고는 당시 함께 수사를 했던 경찰 페리와 그의 식구들뿐이었으니 말이다.

 

 

 

랜스데인 과장이 사무실 문을 나서는 페리를 불러 세웠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이 공식적으로 종결된 걸 축하해."
"어떤 사건이든 종결될 수는 없어요." 페리가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저는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요.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 모두."                 p.260~261

 

이 소설은 현재 시점인 2010년과 11년 전인 1999년 시점을 끊임없이 오가며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킨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페리가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에 관한 의문의 편지를 받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커스와 함께 재수사에 착수하게 되는 것이 주요 플롯이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이다 보니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두 사람은 사건을 재수사하기로 결정한다. 이유는 내가 가제본 도서를 읽었기 때문인데, 본 책은 다음 주에 정식 출간될 예정이다. 본책은 1권이 484페이지, 2권이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인데, 가제본 도서는 358페이지까지라 1권도 채 되지 않는 분량의 내용을 만났다. 전체 이야기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를 읽고, 2부의 초반부를 살짝 만난 거라... 본책으로 출간될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아마도 가제본으로 만난 독자들 모두 이 엄청난 분량의 본책을 사서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니 말이다.

 

 

오래 전에 만났던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라는 작품을 아주 좋아했었다. 미스터리와 소설쓰기라는 매혹적인 소재를 절묘하게 그려낸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고, 캐릭터, 플롯, 반전 모두 너무 흥미진진했던터라 조엘 디케르라는 작가에게 한 눈에 반해버렸으니 말이다. 그 뒤로 출간되었던 <볼티모어의 서>와 <스테파니 메일러 실종사건>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아쉽게도 해당 작품들은 현재 절판 상태라, 데뷔작이었던 <우리 아버지들의 마지막 나날>과 신간인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만 구매가 가능한 상태이다. 오랜 만에 만나게 되는 신작이 이렇게 두툼한 분량으로 출간되어 매우 설레이는 마음이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과 <볼티모어의 서>를 잇는 삼부작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앞선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번 신작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 작품은 스토리 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건을 수사하는 중심 인물이 겹치기 때문에 연작소설같은 느낌도 든다. 각각의 내용이 독립되어 있어 별도로 읽어도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시리즈처럼 하나씩 다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가제본으로 읽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전개가 진행되기 전까지만 만난 상태라 다음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하다. 어서 빨리 두 권짜리 본책을 만나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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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진짜 공부 - 10대를 위한 30가지 공부 이야기
강원국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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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에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살 때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만 하면서 살게 됩니다.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일이어서 그 일을 할 대는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싫은 걸 하지 않는 데 그쳐선 안 됩니다. 좋아하는 걸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맞는,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찾으려면 책을 읽어야 하지요.          p.41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로 만났던 강원국의 첫 공부법 책이다. 그는 김우중 회장을 모시면서 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말이 절실했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아래서 '말'을 듣고 쓰고 고치는 일을 해왔다. 청와대에서 연설비서관으로 8년간 일했던 것을 바탕으로 두 대통령에게서 직접 보고, 듣고, 배운 ‘말과 글’에 관한 책을 썼고, KBS1 라디오 <강원국의 말 같은 말> 진행을 하며  '말이 되는 삶, 삶이 되는 말'에 관해 들려 주었다. 말하기에 자신이 없어 언제나 말이 어렵고 두렵기만 했던 그가 수천 번의 강연을 진행해온 강사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전작에서 읽었었기에, 그런 그가 들려주는 '공부법'은 어떨지도 매우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은 청소년 독자들을 대상으로 30가지 공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전히 입시 지옥과 성적 만능주의의 굴레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 우리 나라의 10대 청소년들이라, '진짜 공부'가 무엇인가에 대해 짚어보는 이 책이 상당히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딱 4주 분량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어, 하루에 하나의 챕터씩 읽다 보면 한 달이 지났을 때 공부를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확 달라져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서 시작해, 동기 부여, 시간 관리, 지구력 등을 다지는  Week 1, 습관 형성, 노력과 성실, 상상력, 집중력 등을 배워보는 Week 2, 요약력, 기억력, 질문력, 어휘력 등을 살펴보는 Week 3, 그리고 관계 맺기, 만남과 대화, 말투와 인격, 리더의 사고법 등으로 공부의 범위를 확장해 보는 Week 4로 구성되어 있으니 지금부터 '진짜 공부' 로드맵을 따라가 보자.

 

 

 

공부 잘하는 비결도 여기에 있습니다. 선생님 입장이 되어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말해 보면서 자기 것으로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이죠. '내가 선생님이다. 지금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겁니다. 그리고 선생님처럼 말해 보는 겁니다. 그러려면 혼잣말을 많이 해 봐야 합니다... 할 말이 있는지, 말할 수 있는지 혼자 말해 봐야 합니다. 말해 보면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내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하다 보면 생각이 나고 정리도 됩니다... 말할 수 있어야 공부가 제대로 된 것입니다.            p.143~144

 

삶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과제를 부여한다. 어떤 과제는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을 정도로 중대하고, 또 어떤 과제는 비중이 소소하다. 하지만 그러한 무게와 상관없이 어떻게든 주어진 문제를 풀고, 숙제를 해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런 점에서 인생은 공부의 연속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공부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우선 배우고 익히는 '학습'이 온전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중, 고등학교에서 배움만 있었다면, 대학이나 직장에서는 배움과 익힘을 함께해야 하고, 마침내 익힘만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이 책 또한 공부가 막막한 10대뿐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앞둔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어떤 공부가 필요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도록 쓰였다.

 

무엇보다 공부는 '마음으로' 한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라니, 의문부터 들 수도 있겠다.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마음 근육을 단단하게 만드는 게 공부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공부가 하고 싶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것이고, 마음에 걱정이 없고 불안하지 않아야 본격적으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스스로에 대해 마음 근육이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감도 부족하고, 매사에 의기소침하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느라 늘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말이다. 그가 낮은 자존감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자아 효능감을 어떻게 높였는지,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이 책을 통해 만나 보자.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떤 도전이든 시도해 볼 수 있는 용기가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공부는 끗발 싸움이다. 할 수 있다고 믿고, 버티고, 기세를 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의 힘이 강해야 한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하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법이고, 지속하는 것 자체가 성공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진짜' 공부에 대해 고민하고, 배워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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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질리언 매캘리스터 지음, 이경 옮김 / 반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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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간여행을 하게 된 거죠?"
"4일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 난 그걸 막아야 해."
"무슨 일이요?"
"그게...... 별로 좋은 일이 아니야, 토드. 4일 후에 네가 누군가를 죽여."
이번에는 모닥불에서 불을 붙이는 느낌이었다. 작은 불꽃이 곧 크게 번져 활활 타올랐다... 토드에게 말해서 그 일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어쩌지?              p.148

 

변호사인 젠은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열여덟 살 아들 토드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거리를 천천히 달려오고 있던 토드가 무언가를 보고 멈춰 선다. 토드의 시선을 따라가니 길 건너편에서 다가오는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가 보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몸이 한데 엉켰고, 토드가 칼을 빼내어 남자를 찌른다. 젠은 그들을 향해 소리치며 달려갔지만, 남자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 곧 경찰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토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어쩔 수 없었다는 말만 한채 현장에서 체포되고 만다. 울다 지쳐 잠이 든 젠은 다음 날 아침, 아들의 방에서 들리는 평소와 같은 토드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젠은 알 수 없다.

 

그러다 젠은 자신이 하루 전날로 돌아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직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던 어제였다. 젠은 아들의 칼을 찾아내 숨기고, 그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하루, 며칠, 몇 주, 몇 년을 뛰어넘으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꾸로 가는 시간 여행 속에서 젠은 아들이 살인자가 된 이유를 찾아내고, 범죄를 막기 위해 뭔가 해서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과연 그녀는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아들의 친구, 몇 달 전부터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 젠은 아들을 미행하던 어느 날, 토드에게 살해당한 남자를 목격한다. 그는 대체 토드와 무슨 관계인 것일까. 그리고 젠은 토드의 방을 수색하다 옷장 구석에서 하나의 꾸러미를 발견하는데, 그속에 있던 것인 실종된 아기의 포스터와 대포폰, 라이언 하일스라는 이름이 적힌 경찰 배지였다. 위장 경찰인 라이언과 토드는 무슨 관계인지, 왜 그의 경찰 배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그는 범죄조직과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사실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거대한 퍼즐이 완성되어 간다.

 

 

 

미끄러져 지나가는 바람에 우리가 아깝게 놓치는 것들을 그리고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화살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켈리는 아직 택시를 부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 젠은 그 눈빛을 너무나 잘 안다. 켈리는 눈썹을 으쓱하며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문장을 말했다.
"진부함의 극치인 건 알지만, 저희가 아는 사이인가요? 오늘 만나기 전부터요."
젠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아니에요."            p.496

 

이야기는 시간여행을 하는 젠의 시점과 위장 경찰로 범죄조직에 잠입하게 된 라이언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고 있다. 사실 중반이 훌쩍 넘어갈 때까지 라이언이라는 인물이 이 이야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독자들은 알 수가 없다. 젠이 시간을 거듭 거슬러 올라가면서 찾아 내야 할 단서와 진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점점 젠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먼 과거로 향한다. 하지만 그녀는 두렵다. 범죄의 시작점을 모르고 지나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저 모르고 지나쳤을 수많은 순간들, 과연 그 중에 어떤 것이 미래의 어느 날 토드가 낯선 남자를 살해하게 되는 순간으로 연결이 되는 것인지 젠은 알 수가 없다. 그녀는 아들의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어 바꿔야 한다. 하지만 과거의 어느 순간을 바꿀 경우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 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게 과거로, 과거로 향하던 젠은 급기야 토드가 아주 어린 아이였던 어느 날로 가게 된다. 아들의 범죄가 엄마인 자신이 잘못 키웠기 때문이 아닐까 계속 자책하던 젠은 과거의 아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여타의 스릴러 작품에서는 만날 수 없는, 먹먹한 감동을 안겨준다.

 

다들 지나간 시간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이 작품 속 젠처럼 시간을 거꾸로 사는 삶을 경험해볼 수 있다면 누구도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 우리가 겪었던 시간들 속에서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며, 그것들은 무해하게 우리를 지나쳐 흘러 가기도 하니 말이다. 당시에는 전혀 몰랐던 일들, 당시에는 놓치고 지나쳤던 일들, 그 시간들 또한 현재의 우리를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한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찾아 내어 전체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과정이 바로 이 작품의 백미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출판사에서 반전에 놀라지 않았다면 책 구매 금액을 전액 환불해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을 만큼, 놀라운 반전을 담고 있다. 물론 반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결말에 이르는, 촘촘하고 짜임새 있는 과정이다. 여타의 타임슬립물과는 전혀 다른 플롯과 구성으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준다는 점도 이 작품만의 장점이다. 아들의 범죄를 막아야 한다는 엄마의 간절한 열망이 만들어 내는 타임슬립 서사는 상상도 못했던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놀라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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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인 더 하우스 보이 프럼 더 우즈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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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의 모토는 분명했다. 업보는 부메랑과 같다. 당신이 타인에게 한 행동은 반드시 당신에게 돌아간다. 그들은 까다로운 신청서 작성과 철저한 심사를 통해 신중하게 목표물을 가려냈다. 예전에 스트레인저로 활동했던 시절 크리스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운 교훈 때문이었다. 범인이 고통받아 마땅한 인간이라는 전제에 한 치의 의문이나 어떤 합리적인 의심도 들지 않을 때만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하지만 보나마나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기린은 부메랑에서 가장 철두철미한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p.43

 

할런 코벤의 새로운 시리즈 <보이 프럼 더 우즈>의 후속작이다. 할런 코벤은 시리즈보다는 스탠드 얼론 작품이 더 많은 작가인데, '마이런 볼리타'시리즈 외에 아주 오랜만에 '와일드'라는 캐릭터로 <The Boy from the Woods>와 <The Match>라는 두 작품을 썼다. 원제는 'The Match'이지만 국내 번역본은 시리즈의 통일성을 주기 위해서 <보이 인 더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 같다. 제목이 어찌되었던 시리즈의 후속작을 단 몇 개월 만에 만날 수 있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전편보다 더 빠른 속도감과 복잡한 구성으로 업그레이드 된 재미를 보여준다.

 

 

시리즈의 주인공 와일드는 전작에서 '숲에서 버려진 야생 소년'으로 발견 당시 여섯 살에서 여덟 살 사이로 추정되었던 소년으로 등장했다. 언제부터 숲에서 살았는지, 어쩌다 그곳에서 혼자 살게 되었는지, 부모나 다른 어른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스타 변호사 헤스터와 훌륭한 위탁 가정의 돌봄 아래서 잘 자라 어른이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은 와일드라는 별명으로 불리다 그게 이름이 되었고, 무엇이든 다 잘하는 천재였지만 어디서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육군 사관학교 졸업 후 특수 부대에 복무했고, 탐정 일도 잠깐 했지만 결국 '정상적인' 사회에 동화되려고 노력하는 시늉마저 그만둔다. 이후는 자신만의 요새를 지어 숲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헤스터의 죽은 아들 데이비드와 절친한 친구였기에 헤스터 가족과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며 왕래가 있다. 데이비드가 죽고 나서 그의 아내 라일라와는 연인이 되었고, 데이비드의 아들 매슈의 대부로 그들 모자와 가족과도 같은 사이이다. 이러한 배경은 전편을 읽지 않았더라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도록 이번 작품에서도 중간중간 언급되고 있다.

 

 

"사기가 아니에요. 우리의 인생은 연극이에요. 무엇이 진짜고 가짜냐는 중요치 않아요. 그걸 나눌 수 있는 선이나 경계도 없고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에 나는 작은 법률 사무소에서 서류나 정리하던 비서였어요. 그게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알아요? 우린 모두 유명해지고 싶어 해요.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진다면 그게 모든 사람의 목표일 거예요. 아주 별 볼 일 없는 SNS 계정조차도 '좋아요'와 팔로워가 늘어나길 원하죠. 그렇다면 난 이 흐름에 따라 그냥 평화롭고 지루한 삶으로 돌아가야 할까요? 천만에...."              p.416

 

이번 작품에서는 와일드가 궁금했던 출생의 비밀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30년 훨씬 넘도록 밝혀지지 않았던 그의 출생에 대한 부분은 와일드가 유전자 검사 사이트에 DNA를 등록해 친아버지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어렵게 만난 친아버지는 와일드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고,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는 걸 몰랐다고 말한다. 세 딸을 두고 아내와 함께 평범하게 살고 있는 그의 삶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던 와일드는 그렇게 다시 돌아온다. 친아버지를 찾았음에도 자신이 왜 어릴 적 숲에 혼자 버려졌는지에 대한 비밀은 풀지 못한 것이다. 한편, 전작에서 와일드와 유전자가 23% 일치했던 ‘PB’가 몇 개월 전 은밀히 도움을 요청해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와일드는 그에게 연락을 하지만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

 

 

PB는 최근 리얼리티 쇼를 통해 스타가 되었지만, 성범죄 스캔들로 나락에 떨어진 피터 베넷으로 현재 SNS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고 잠적한 상태였다. 와일드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그를 모른 척할 수 없었기에 본격적으로 사라진 PB를 찾기 시작한다. 와일드는 PB를 찾는 과정에서 전직 경찰의 시신을 발견하고, 인터넷 악성 댓글과 여론몰이로 피해를 보는 사람을 대신해 복수해주는 정체불명의 자경단 '부메랑'에 대한 부분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부메랑’은 온라인상에서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괴롭힌 자들에게 업보를 되돌려 주는 일을 했는데, 발견된 전직 경찰의 시신이 그들의 표적이자 PB를 절벽 끝까지 내몰았던 악성 악플러이기도 했던 것이다.

 

출생의 비밀을 밝혀줄 수 있는 유전자 매칭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리얼리티 쇼의 추악한 이면과 복수를 대신해주는 자경단, 그리고 연쇄살인으로 이어지며 폭풍같은 서사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의 중심에 와일드가 있었다. 과연 와일드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밝혀내고, 이 모든 일들을 해결해 낼 수 있을까. 할런 코벤의 작품들이 최고의 페이지 터너 임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음 장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데 할런 코벤만큼 뛰어난 솜씨를 가진 작가도 없으니 말이다. 롤러 코스터처럼 달려가는 숨가쁜 미스터리를 즐기기에 지금 이 계절만큼 잘 어울리는 시기도 없다. 무더운 날씨 따위 금방 잊어 버리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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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플레이스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
타나 프렌치 지음, 고정아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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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상한 사과주 느낌을 풍긴다는 사실, 마셔도 좋을 투명한 황금빛 공기, 깨끗한 얼굴들, 행복한 수다의 물결, 나는 그 모든 것이 좋았다. 아주 좋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것을 꽁꽁 감추고 있었다. 비뚤어진 한 가지 사례만이 아니고 일부만도 아닌 모든 것이. 어쩌면 대부분이 헛소리일지 모른다는 생각 또는 희망이 들었다. 지루한 여학생들의 장난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똑같이 나쁘다고 여겼다고 다시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바꿨다. "이것들 중 사실이 얼마나 될까요?"            p.101

 

푸르른 교외에 위치한 세인트킬다 칼리지는 사립 여자 중고등 통합학교로 수녀들이 운영했다. 주로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이 다니는 킬다의 교정 뒤편에 있는 작은 숲에서 수녀 두 명이 아침 산책을 하다가 누워 있는 한 소년을 발견한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높은 담장으로 가로막힌 남학교의 학생이었다. 전날 밤에 누가 그의 머리를 박살 냈다.  소년의 아버지는 은행 간부에 엄청난 부자였고, 미성년자가 희생된 사건이라 고층 건물을 몇 채나 지을 만큼의 인력이 투입되었지만, 용의자도 없었고, 왜 그가 그곳에서 발견되었는지 이유도 오리무중이었다. 그렇게 사건은 미제로 종결되었고, 그로부터 1년 뒤 킬다의 익명 게시판에 소년의 사진과 함께 '난 누가 그 애를 죽였는지 알아'라는 메시지가 발견된다.

 

사건의 담당 형사였던 콘웨이와 제보를 받았던 스티븐 모런이 살인 사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한다. 미제사건수사과 소속인 스티븐 모런은 이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서 살인수사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1년 전 해당 사건의 담당 형사였던 콘웨이에게 수사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살인 수사관에서 외톨이였던 콘웨이였기에, 스티븐 모런이 도와준다고 해서 손해볼 건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건이 일어났던 여학교로 향한다.

 

 

작은 언덕 위 사이프러스나무 빈터에 달빛이 무엇에도 걸리는 일 없이 가득 쏟아졌다. 그들 셋이 서로 어깨를 대고 기대앉아서 까딱이는 이삭들 틈에 다리를 뻗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언뜻 머리 셋 달린 동물 같아서 나는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그들은 오래된 동상처럼 조용하고 매끈하고 하얗고 무표정했다. 우리를 바라보는 심연 같은 세 쌍의 눈. 우리는 웃음을 멈추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히아신스 향기가 물결처럼 흘러 위로 올라왔다. 설리나와 어깨 한쪽을 맞댄 리베카. 머리는 풀려 있고 몸 전체가 환영 같은 흑백 얼룩이었다. 눈만 한 번 깜박하면 풀밭 위의 달빛으로 변할 것처럼.            p.642

 

'그 애는 멋있는 애였어요. 잘 생겼고, 못하는 게 없었어요. 모든 사람의 눈에 띄는 아이였어요. 모두가 그애를 좋아했어요. 절대로 살인을 당할 것 같지 않은 아이였어요. 착한 애였어요. 내 휴대폰 수리를 도와줬거든요. 그애는 못된 애였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땐 다정하지 않았거든요.' 이 모든 상반된 이야기들이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이 흥미롭다. 크리스를 좋은 아이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못된 아이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가끔 크리스의 유령을 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체 크리스는 생전에 어떤 아이였고, 이들과 무슨 관계였던 것일까.

 

이야기는 사건을 수사하는 현재와 크리스가 죽기 팔 개월 전부터의 과거가 교차로 진행된다. 타나 프렌치가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은 지나칠 정도로 디테일하고 섬세해서 미스터리로서의 속도감 있는 서사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려 750페이지를 넘는 두툼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는 갈수록 느려지지만, 그래서 완독하는 데 어느 정도의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이상하게도 몰입감은 점점 더해져 간다. 게다가 타나 프렌치는 이 긴 이야기 속에 담긴 놀라운 통찰력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 내고, 겹겹이 쌓여 있는 비밀과 거짓말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한다. 아름답고 우아한 문장으로 예민하고, 복잡한 십대 여학생들의 정서와 심리를 손에 잡힐 듯 그려내는 솜씨 또한 대단하다.

 

 

이 작품은 타나 프렌치의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 신작이다. 아일랜드의 추리 소설 작가 타나 프렌치의 작품은 오래 전에 <살인의 숲>으로 처음 만났다. 작가는 이 데뷔작으로 에드거상, 배리상 등 세계 추리 문학상의 신인상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켰다. 국내에는 2010년에 출간되었는데, 당시에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그 이후로 다른 작품들이 소개되지 않아 아쉬웠었다. 그러다 엘릭시르를 통해서 꾸준히 <페이스풀 플레이스>, <브로큰 하버>가 출간되어 반가운 마음에 나올 때마다 구매했는데, 페이지 수도 많은데다 천천히 읽어야 하는 작품들이라 정작 완독하지 못한 채 미뤄 두고 말았다.

 

이번에 나온 신간 <시크릿 플레이스>는 시리즈 중에 꼭 읽어 보고 싶었던 작품이라 더 미루지 않고 먼저 읽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이 시리즈는 한 명의 주인공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작의 주인공이 다른 작품에서 보조 인물로 출연하는 식으로 각 작품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타나 프렌치의 작품들은 섬세한 심리 묘사와 아름다운 문장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작품 역시 그러한데 포스트잇 플래그와 밑줄로 안 그래도 느린 책 읽는 속도를 더 느리게 만들어 주지만, 그렇게 천천히 느리게 읽어서 더 재미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타나 프렌치의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는 <시크릿 플레이스> 바로 다음 작품인 <침략자 The Trespasser>까지 총 6권이 출간되어 있다. 다음 작품도 엘릭시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거짓말로 범벅이 되어 있는 사건, 여덟 명의 목격자이자 용의자인 소녀들,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경찰의 딸, 수상한 느낌으로 가득차 있는 학교에서 밝혀질 사건의 진상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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