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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천사 같은가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퀸은 사진들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갑작스레 우울한 감정이 치밀어 동작이 느려졌다. 그 사진을 찬찬히 보기 전까지는 오고먼은 그에게 실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제 오고먼이 인간으로 다가왔다. 아내와 아이들, 집과 개를 사랑했으며 자기 일을 열심히 한 남자, 마음이 너무 여려서 비 오는 밤길에 서 있는 히치하이커를 외면하지 못했지만 강도에 저항할 만큼 용감하지는 못했던 남자. p.109
2월 중순, 폭풍우가 치던 밤이었다. 겨울 내내 비가 많이 내렸던 터라 마을에 있던 강도 수위가 많이 올라간 상태였다. 한 남자의 차가 다리의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강으로 떨어졌는데, 이틀 후 물이 빠지고 나서야 발견됐다. 문에 걸려 있던 천조각에 핏자국이 있었고, 그걸로 남자의 신원이 판명된다. 남자는 정유회사 경리부에서 일하는 오고먼이었고, 그날 밤에 자신이 장부에 실수를 해서 현장 사무실에 확인하러 가야한다고 집을 나섰다고 한다. 아내가 남편이 집을 나설 때 입고 있던 셔츠 조각을 확인했고, 경찰은 오고먼이 외지인을 도우려다 살해당한 게 아닌가 추측한다. 하지만 범인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고, 오고먼의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다. 범인도, 피해자도 완전히 사라져버렸기에, 사건은 미해결로 남게 된다.

이야기는 도박으로 일자리, 차, 옷, 여자친구도 다 잃어버린 채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 한가운데 남게 된 사립탐정 퀸으로부터 시작된다. 지저귀는 새 한 마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하나 없는 황야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근처에 있는 신흥종교단체로부터 도움을 받는 방법밖에 없었다. 종교단체에 있던 축복 자매는 그를 기꺼이 맞이해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우연히 퀸이 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외부인과 교류를 금지한다’는 교단의 규율을 어기고 그에게 사람을 찾아 달라고 부탁을 한다. "퀸 씨가 거기 가서 패트릭 오고먼이라는 남자를 찾아줬으면 좋겠어요." 축복 자매는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내 달라고, 몰래 숨겨둔 백이십 달러를 그에게 지불한다.
그렇게 퀸은 오고먼을 찾아 그의 주소지로 향한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전화로 나눈 첫 대화는 오고먼이 오 년 전에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퀸은 오고먼의 행적을 찾기 시작하고, 단순한 실종 사건처럼 보였던 의뢰는 점점 충격적인 진실들이 밝혀지며 복잡해진다. 과연 오고먼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실종된 남자와 축복 자매는 어떤 관계일까? 오고먼은 이미 죽은 사람인 걸까? 축복 자매는 왜 퀸에게 이런 의뢰를 한 것일까?

자매는 갑자기 고통인지 항의인지 모를 비명을 내뱉었다.
"그 사람이 참회했다고 믿으셨죠, 자매님. 그래서 다시는 살인하지 않을 거라고."
또 한 번의 비명. 처음보다 더 격렬한 이 비명은 불의한 일에 분노한 아이의 울음 같았다. 분노는 오해일 리가 없었지만, 퀸은 그 감정이 이런 질문을 하는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배신을 한 살인자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제삼자를 향한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p.372
엘릭시르의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 40번째 작품이다. 2012년에 시작되어 꽤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오고 있는 시리즈라 개인적으로 좋아하며 챙겨보고 있다. 본격 미스터리, 하드보일드, 서스펜스, 스릴러, 유머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와 다채로운 걸작들이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로 소개되었다. 로런스 블록, 로스 맥도널드, 셜리 잭슨, 조지핀 테이, 존 딕슨 카 등 세계 미스터리 거장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아주 귀한 시리즈이다. 심리 스릴러의 대가이자 20세기 최고의 여성 범죄소설가 마거릿 밀러의 작품도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로 두 권이 소개되었다. 마거릿 밀러가 전성기 때 쓴 두 작품 <엿듣는 벽>과 <내 무덤에 묻힌 사람>이다.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 덕분에 고전 미스터리 작품들을 꾸준히 만날 수 있어 참 좋다.

책의 뒷 날개에 '미스터리를 쓰는 커플들'이라는 부분이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마거릿 밀러의 남편은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의 대가인 로스 맥도널드이다. 20세기 중반 미국 추리소설계의 거장 부부에 이어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집필한 스웨덴의 작가 커플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도 있다. 그리고 일본의 장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부부인 '관' 시리즈의 아야쓰지 유키토와 <마성의 아이> 등을 쓴 오노 후유미도 있다. 부부가 둘 다 유명 작가라는 점은 정말 부럽기도 하고, 특별한 것 같다. 두 작가의 작품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도 재미있고 말이다.
이번에 만난 <얼마나 천사 같은가>는 마거릿 밀러의 대표작이자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폐쇄적인 종교단체를 배경으로 오래된 실종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사립 탐정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워낙 심리 묘사에 뛰어난 작가이다보니 심리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맹목적인 믿음과 숨겨진 광기, 불안한 마음과 구원받고자 하는 바람이 어우러져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감이 은근하게 깔려 있는 이야기라 숨죽이며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작품이기도 했다. 고전 미스터리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