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토피아 -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성차별과 섹스 파티를 폭로하다
에밀리 창 지음, 김정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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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성 엔지니어가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었고, 심지어 자신에게 집적댔던 그 관리자에게 성추행을 당한 엔지니어들도 있었다. 말인즉, 파울러가 당한 일이 그가 처음으로 저지른 '악의 없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파울러는 인사 부서를 다시 찾아가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이번에도 담당자는 부인으로 일관했다. "너무 뻔뻔한 거짓말이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고 그녀가 글에서 밝혔다.

한국 여성 중 반 이상은 직업을 가졌지만, 아직도 세계에서 임금 격차가 가장 큰 편에 속한다. 남성 동료들에 비해 여성 임금이 무려 37퍼센트나 적고, 한국 500대 기업에서 임원직 여성 비율은 3퍼센트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 사법 당국에 접수된 성폭력 신고 건수가 수천을 넘지만, 실제로 기소된 경우는 그에 비해 너무나도 적다. 수많은 다른 국가와 비슷하게, 오래된 남성 위주의 네트워커 및 행동 방식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미투, #위드유를 외치며 성적 학대 및 성희롱에 대해 용기 내어 말하는 여성들이 있기에 한국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은 기술산업에서 전개되는 #미투 문제를 집중조명하고 있다. 애플, 삼성,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술 산업은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들 기업에서 결정권을 갖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의 몫이다.

기술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실리콘밸리는 어떤 곳일까? ‘브로토피아(BROTOPIA)’. 브로토피아는 브로 문화(Bro culture)와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다. 브로 문화는 테크놀로지 산업과 실리콘밸리를 특징짓는 표현으로, 남성 우월주의와 남성 중심 문화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남성들이 직접 만든 규칙으로 완전히 지배하는 세상이다. 반면에 절대 소수인 여성들에게 실리콘밸리는 그야말로 유독한 세상이다. 성차별과 성추행이 만연하고 온탕에 몸을 담근 채 투자 회의를 하며 섹스 파티에서 인맥을 쌓는다. 블룸버그 TV의 진행자이자 기자인 에밀리 창이 이 책을 통해 실리콘밸리의 충격적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유토피아적인 이상향에도 불구하고 어쩌다가 실리콘밸리가 성차별의 온상이 되었는지, 어떻게 해서 여성들이 침묵을 깨고 당당히 목소리를 내며 반격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물론 남성들도 온라인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강간 협박, 살해 협박, 스토킹 같이 더욱 극단적인 형태의 괴롭힘의 희생양이 된다. 남성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스포츠 팀 때문에 조롱받거나 업신여김을 당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여성들은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격 당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에밀리 창이 직접 만난 실리콘밸리의 많은 여성들은 현실이 훨씬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열심히 '들이대고' 있지만 아무 효과가 없다고 좌절한다. 한 저명한 여성 경영자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못을 박아 문을 막아버리면 아무리 열심히 달려들어도 늘 제자리예요." 뾰족한 수가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제도적 변화가 만들어질 거라고 믿고 싶어진다. 문제는 그게 언제냐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실리콘밸리의 성차별과 성추행, 성폭력과 그 밖의 여러 불평등한 상황들은 사실 국내의 기업에서도 숱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일 것이다. 수위는 조금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여성들이 기술 산업에서 배척당한 역사가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전부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런 아픈 경험이 우리의 미래일 필요도 없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활용해보자고, 저자는 말한다. 남녀 성비가 완벽히 균형을 이루는 실리콘밸리를, 즉 여성들이 실리콘밸리의 전체 일자리 중 절반을 차지하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유럽은 이미 비즈니스 세상에서 양성평등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시행했고, 벌써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변화가 나타나게 나려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주어야 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모레가 조금 더 달라질 거라고 믿으며 이 책을 읽는다. 우리 모두를 위해, 더 넓은 세상이 변화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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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파파 스크랩북 마음 다이어리 바바파파 스크랩북 다이어리
다산북스 편집부 지음 / 놀(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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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묻는다. 최근에 가장 무기력하다고 느낀 때는 언제니? 너 스스로에게 가장 주고 싶은 선물은 뭐니? 최근에 갑자기 연락이 뜸해진 사람이 있니? 최근에 가장 상처받았던 말은 뭐야? 오늘 진심으로 웃은 건 몇 번이니? 등등... 매일같이 바쁘게 일상을 살아내고, 또 견뎌 내느라 내 마음 같은 건 언젠가부터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내가 좀 참지 뭐. 나만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뭐. 내가 잠깐 기분 상하고 말지.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 내게 바바파파가 사랑스러운 핑크색 다이어리를 건넨다. 나도 몰랐던 내 마음 사랑하기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라고.

 

바바파파 스크랩북 마음 다이어리는 기존 다이어리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꽉꽉 채운 신개념 다이어리이다. 내가 원하는 페이지에, 내가 원하는 질문을 붙이고, 나에게 필요한 팁까지 더해, 100퍼센트 나만의 다이어리를 완성시킬 수 있다. 사실 다이어리 한 번 안 써본 이가 어디이겠는가. 그저 일상의 스케줄을 적는 용도로, 혹은 하루 하루의 단상을 적는 일기장으로, 때로는 업무 일정을 적기도 했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이어리는 비슷비슷한 구성과 테마를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자,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바바파파 마음 다이어리이다. 꾸미는 데 소질이 없는 초보자도 쉽게 나만의 다이어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한 장 한 장 색다른 디자인으로 채워져 있어 더 좋다.

 

바바파파 마음 다이어리에는 마음 스티커북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스티커북에는 먼슬리 플래너를 꾸밀 수 있는 바바파파 표정 스티커 네 페이지 꽉 채워서 가득 들어 있어, 예쁘게 꾸미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특히 나 자신을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는 인생 질문 150여 가지가 수록되어 있는 페이지가 너무 좋았다. 컬러 그라데이션으로 보기에도 예쁘고, 내가 듣고 싶은 질문을 골라 오려서 원하는 페이지에 붙여 답을 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지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뭐야? 너의 삶은 평균보다 위라고 생각하니, 아래라고 생각하니? 별생각 없이 매일 반복하고 있는 건 없니? 그만두고 싶은데 억지로 하고 있는 게 있니? 더 나은 하루를 위해 당장 그만둬야 할 것 세 가지만 뽑아보자.. 등등..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질문을 하는 바바파파에게라면 어떤 고민도, 어떤 망설임도, 어떤 스트레스도 모두 툭툭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나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고, 현재를 돌아보고, 위로도 해주고, 힐링의 시간도 가질 수 있는 다이어리인 것 같다. 그리고 마음 스티커북의 후반에는 비타민 같은 한마디, 상처를 더 빠르게 낫게 해줄 반창고 같은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모두 컷팅이 가능하도록 구분되어 있고, 짧은 말들이라 역시 다이어리에 필요한 페이지에 오려 붙일 수 있다. 어린 시절 명언이나 책 속의 좋은 글들을 다이어리에 적었던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그러지 못하란 법있나. 바바파파 다이어리 덕분에 페이지 가득 오려 붙이고, 글을 쓰면서 옛 추억도 저절로 떠올랐다.

세상에 나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혹은 급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부터 뒷전으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가족을 위해, 연인을 위해, 혹은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나만 챙긴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바바파파 마음 다이어리는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다. 마음이 복잡할 때, 아무 생각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뭔가를 끄적여도 좋고, 오려서 붙여봐도 좋고, 그저 좋은 문구를 읽어 보거나, 예쁜 바바파파 스티커를 떼어서 꾸며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토닥토닥 힐링의 시간이 필요한 일상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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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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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묏자리는 임금의 자리이고 두 번째는 재상의 자리라는 말이었다. 이성계가 첫째 혈을 택하자 노승이 놀라 물었다.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이성계는 굽히지 않았다.

"사람의 일이란 상을 얻으려 하면 겨우 하를 얻게 되는 법입니다. 왕후의 자리를 얻으려 해야 재상이라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야기는 이성계가 올린 상소문으로 시작한다. 식량 없는 군대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며 군대의 식량문제를 언급하며 토지 제도와 세금 제도까지 거론한 그의 상소문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고려 중신들은 물론 우왕도 한낱 변방 무장에 불과한 그의 말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때는 "변방에서 군사들의 난이 일어나리라"라는 점사가 나온 달이었고, 이성계가 상소문을 올린 시기는 바로 개국의 설계사 정도전을 만난 직후였다. 당시 백성들은 땅을 빼앗기고 노비로 전락해 한을 품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고통 위에서 환락을 즐기는 배에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백성들의 원한이 하늘을 움직이면 그것이 곧 천명일 것이고, 이성계의 상소문은 천명을 향해 내디딘 첫 발이었다. 그리고 이 첫 발의 의미를 읽지 못한 고려는 곧 거센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이 책에서는 변방의 무장 이성계가 어떻게 500년을 이어가는 왕조를 세우고, 나아가 중원의 황제를 꿈꿀 수 있었는지 그 여정을 그리고 있다. 고려 최고의 무장에서 조선 왕조의 개창자로, 그러나 말년에는 자식들끼리 죽고 죽이는 혹독한 운명을 맞이하기까지, 태조 이성계라는 한 인간의 성공과 실패의 삶을 모두 담은 이야기는 앞으로 이어질 조선왕조실록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북돋워 준다. 500년 역사로 나아가는 대장정의 첫걸음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인물인 것이다. 시대정신을 읽는 통찰력과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던 이성계의 모습에서 우리는 여러 교훈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원상은 순군옥에 갇혀 국문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

"다만 사전을 없애려는 것을 원망해서 우왕을 맞아 세워 그 일을 저지하려 했을 뿐입니다."

고려 왕조의 비극이 여기에 있었다. 백성들에게 큰 원망을 받는 사전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 고려 왕실 수호 세력의 주축이었다. 무장 변안열이 처형당한 것은 고려 왕조를 지탱할 거의 모든 무장 세력이 제거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사극만 78! 게다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책도 수십 권에 달한다. 그만큼 조선의 500년 역사가 그 자체로 완벽한 드라마라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만큼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새롭게 해석할 여지가 많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역사 저술가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은 국내 최초 전 10권으로 출간된다. 10년간의 구상과 5년간의 집필이라는 끈질긴 노력으로, 기존 학습과 지식 전달 위주의 다이제스트에서 벗어난 역사서를 쓰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시리즈라 앞으로 이어질 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조선왕조실록이란 조선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기록한 책으로 인류 역사상 단일왕조 역사서로서 가장 규모가 크다. 전체 1,893 888책으로 왕이 승하하고 바뀌는 과정에서도 대대로 편찬한 것이 축적된 기록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사 연구를 할 수 있었고, 조선의 생생한 역사를 현대의 우리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에 담긴 지식들은 오늘날에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가장 탁월한 미래학'이라는 말처럼, 지금이야말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의 길을 찾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않으면, 우리는 앞선 세대의 실패를 똑같이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며 조선의 500년 역사를 통해 오늘의 우리를 비춰보고 내일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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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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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사건은 흑백이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지. 선과 악의 경계가 애매하잖아. 그래서 문제 제기는 할 수 있지만 명확한 결론은 불가능해. 항상 커다란 무언가의 일부분일 뿐이야. 그런 점에서 소설은 완성된 구조를 지니고 있잖아. 소설은 하나의 구조물이지. 그리고 추리소설은 그 구조물 중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일 수 있는 분야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인 <11문자 살인사건>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그가 데뷔 후 다섯 번째로 발표한 소설이었으니, 그야말로 초기 역량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여성 추리소설가인’, 며칠 전에 애인이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말을 한 뒤 살해 당한다. 도쿄 만에서 시체가 떠오른 걸 발견해 형사가 찾아와 그의 죽음을 알렸는데, 나는 그의 장례식에서 주변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이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귄 지 두 달 정도 밖에 안 된 대다, 애초에 결혼 생각 없이 만난 거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교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의 방에서 가져온 스케줄표에 적힌 마지막 일정에 뭔가 의심스러웠다. 요즘은 다리를 다쳐서 운동을 쉬고 있었는데, 스포츠센터에서 만날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애인의 죽음에 의심스러운 부분을 파헤치기 위해 그의 마지막 일정을 따라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에 스포츠센터의 사장을 만났고, 예전에 그 스포츠센터가 기획했던 요트 여행에 참가했다가 사고를 당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트를 타고 Y섬으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중간에 날씨가 나빠져 요트가 전복되었고, 참여했던 열 명 중에 한 사람만 죽고, 나머지는 무인도로 쓸려가 구조되었다는 거였다. 애인은 그때 다리를 다쳤고, 취재로 참여했다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기행문 연재도 끝이 났었다고 한다. 게다가 나는 애인이 남긴 자료를 도난 당하게 되고, 혹시 그 자료가 당시의 사고에 대해 쓴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작년에 일어난 보트 사고 당시에 뭔가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살인 후에 도착하는 11개의 글자가 적힌 편지는 누가 보낸 것일까? 과연 추리소설가인 주인공은 소설 속에서만큼, 현실에서도 범인을 제대로 추리할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서재 문을 열었다. 당연히 그 방의 불도 꺼져 있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창가에 놓인 컴퓨터만이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역시 전원이 켜진 상태였다.

내 몸 속에서 꿈틀대고 있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심장박동이 다시 빨라졌다. 불안감에 휩싸인 채 천천히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워드프로세서에 적혀 있는 글자를 본 순간, 더 이상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주인공은 초반에 애인과 나누는 대화에서 추리소설의 매력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런 말을 한다. 현실의 사건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가 애매한 부분이 있어, 문제 제기는 할 수 있지만 명확한 결론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선과 악의 경계선에 대한 질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과연 우리가 '그 살인은 올바른 선택이었다.'라고 결론이 내려질 만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최선은 과연 모두에게도 선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완벽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어떤 관점과 입장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악인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과연 '죽어도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극중 상황처럼 최선의 선택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차선을 택했고, 따라서 그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 역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1987년에 발표했던 작품이라 조금 세련된 맛은 덜하고, 정통 추리소설의 형식에 부합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추리소설에 이제 막 입문하는 독자들이 읽기에 쉽고 재미있을 것 같고, 엄청난 반전이나 트릭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요소는 두루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색다른 느낌으로 그의 초기작을 만나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옳다고 믿는 가치는 전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런 가치관의 충돌에서 빚어진 비극을 두라며,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이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당신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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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 완벽해 보이지만 모든 것이 불안한 그녀의 인생 새로고침
숀다 라임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부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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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길을 잃지는 않는다. 하나씩 거절하다 보면 점점 길을 잃게 된다. 오늘 밤에 만나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오랜만에 대학교 때 룸메이트가 만나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어떤 파티에 가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휴가를 가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그러다 보면 한 번에 한 발짝씩 길을 잃는다.

국내에도 시즌 14까지 방영되며 미드 열풍을 일으켰던 [그레이 아나토미]를 비롯해 미국을 대표하는 TV 드라마 들인 [스캔들 ] [범죄의 재구성] 총괄PD이자, [프린세스 다이어리2] 각본가인 숀다 라임스. 그녀는 마흔 이전에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흑인 여성이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두 번의 입양과 한 번의 대리모 출산을 통해 얻은 세 딸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아이비리그를 나온 성공한 여성의 전형처럼 보이는, 너무도 완벽할 것만 같은 그녀의 삶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이 책은 그 동안 세상에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숀다 라임스의 내밀한 삶에 대한 첫 고백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 그녀의 인생을 흔든 말의 시작은 바로 언니가 무심코 내뱉은 여섯 마디 때문이었다. "너는 뭐든 좋다고 하는 법이 없지." 언니의 말은 이렇다. 네가 싱글맘이기는 하지만 혼자 애를 키우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가족도 가까이 살고, 훙륭한 베이비시터에, 언제든 달려올 친구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네가 사장이라 마음대로 스케줄을 조정할 수도 있는데, 너는 왜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느냐는 거다. 일생에 한 번뿐인 멋진 기회들이 수없이 밀려들고 있는데, 전부 그냥 날려 버리는 이유가 뭐냐고. 왜 인생을 재미있게 즐기지 않느냐고 말이다. 사실 그녀는 대부분의 초대나 섭외를 다 거절해 오고 있었다. 왜냐하면 좋다고 했을 대의 결과가 두렵기 때문에. 그녀는 조용하고 말이 없고 내성적이며, 새로운 환경보다 책이 더 편하고, 상상의 세계 안에서 사는 데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레이 아나토미>가 엄청난 히트를 쳤을 때, 얼마나 겁이 나고 슬프고 불안해졌는지, 얼마나 부끄러워졌는지 모른다. 글을 쓰는 일 자체는 너무도 즐거웠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때의 삶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가졌는데도 행복하지 않았다. 뭔가 달라져야만 했다.

 

 

미안해하거나 변명하거나 주눅 들 필요 없다. 여러분의 지금 모습에 미안해하거나 변명해야 할 것 같은 필요성이 느껴진다면 내면의 목소리가 엉뚱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뜻이다. 석판을 깨끗하게 지우고 이야기를 다시 쓰기 바란다.

동화는 안 된다. 여러분이 화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해피엔딩을 향해 나아가자.

언니가 우연히 내뱉은 한 마디로 인해, 숀다 라임스는 1년 동안 자신 앞에 놓인 모든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1년 동안 모든 일에 거절하지 않고 도전하기." 과연 그녀는 겁이 나는 모든 일에 도전할 수 있을까. 숨지 않고, 재고 말고 하지 않고, 모든 일에 좋다고 하며, 안전지대 밖의 모든 일에 도전하는 일이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그녀의 도전은  TV 쇼에 출연하여 불안증을 극복하고, 아이와 볼을 부비며 놀아 주는 행복을 경험하며 휴식하는 법을 배우고, 바쁘다는 핑계를 입에 달고 가지 않았던 학부모 모임에도 나가고, 체중을 58킬로그램을 감량하기도 한다. 그녀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해야 하는 일보다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일들이 우선시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녀를 이루고 있던 '숫기 없는 성격' '내성적인 성향', 그리고 '겹겹이 쌓인 살'들이 점점 멀어지게 된다.

 

물론 숀다 라임스의 해피엔딩이 우리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이루어낸 1년의 도전은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내면의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살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들처럼 살려고 하지 말고, 대세를 따르려고 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도 그녀처럼 모험심 가득하고 스스럼없으며 용감하고 타인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년만 두려운 일에 “yes!”하며 살아 보자. 1년 뒤 당신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그냥 저지르세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다 이루어지는 숀다의 마법이 당신에게도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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