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한눈에 보이는 영국 책방 도감 - 개성 넘치고 아름다운 영국 로컬 서점 해부도
시미즈 레이나 지음, 이정미 옮김 / 모두의도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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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서점이란, 낯선 곳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 같은 존재이다. 처음 가는 도시에 있는, 읽을 수도 없는 언어로 된 책들로 가득한 서점에서도 특유의 분위기와 공기로 인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곤 하니 말이다. 그렇게 책이 가득한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 바로 서점이 가진 마법일 것이다. 


이 책은 런던부터 북잉글랜드까지 영국 로컬 책방 19곳을 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부터, 운하를 떠다니는 배 위의 서점, 천장까지 책이 쌓인 오래된 서점, 세계유산 식물원에 있는 서점, 화가와 작가가 경영하는 동네 서점, 책이 가득 채워진 욕조가 있는 서점 등 정말 다양한 서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서점 내부가 한눈에 보이는 공간 분석 일러스트가 있다는 점이다. 각 분야별 도서 위치와 외관, 내부 곳곳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서점 해부도가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로 수록되어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말 아름답기 때문이다. 물론 디테일한 실제 사진도 가득 수록되어 있다. 책이 진열된 방식, 각 서점의 특색이 드러나는 도서 큐레이션 포인트, 서점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각종 소품과 인테리어, 진열대, 서가 구성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직접 가보지 않았지만, 실제로 그곳을 방문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한 설명과 사진, 일러스트였다. 


각각의 서점 소개가 끝나면 관계자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매니저, 점원, 사장 등 관계자들이 서점 운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공간을 기획했으며, 운영 철학까지 들려준다. 언젠가 서점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로망을 가진 독자라면, 이 인터뷰들이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큐 가든 식물원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그곳에 본격적인 책 매장이 있다고 해서 흥미롭게 읽었다. 서점 곳곳에 판매용과 디스플레이용 식물이 한가득 놓여있어 마치 온실 같은 분위기였고, 버섯을 주제로 한 특설 진열대라던가, 식물원 소속 큐 출판국의 간행물들, 원예 입문서와 식물에 관한 대중과학 서전들이 가득해 너무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번성했던 북잉글랜드의 작은 마을 기차역을 서점으로 만든 곳도 있었다. 승강장과 철로가 있던 자리에 35만 권의 중고 책이 진열되어 있는데, 이곳은 책을 가져가서 교환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있었다. 한 사람이 책 10권, 페이퍼백의 경우는 20권을 가져오면 매장에 있는 책과 교환할 수 있다고 한다. 매년 전 세계에서 35만 명의 손님이 찾아오는 서점이라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프랜차이즈 서점이 등장했다 금세 사라지고, 온라인 쇼핑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전자책 독자들이 탄생하면서 책과 서점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인터넷 서점에서 클릭 한 번이면 바로 책이 내 집 현관 앞으로 오는 시대에 굳이 수고롭게 동네 책방을 찾아 가는 이유가 뭘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왜 우리가 굳이 서점에 가는 것인지, 책을 직접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하며, 추천을 받아서 만나는 것인지 그에 대한 매우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이유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좋은 서점이 있으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서점에 더 많이 가자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 것이다. 책과 서점을 사랑한다면, 언젠가 나만의 서점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이 선물처럼 느껴질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너무 아름답고, 개성 넘치는 영국의 로컬 서점들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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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교유서가 어제의책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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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밤에는 스코틀랜드의 시인 제임스 톰슨이 개탄하듯 "질서가 거짓이 되고, 모든 아름다움은 공허해지고, 개성은 사라지고, 즐거운 다양성은 하나의 거대한 오점으로 바뀐다. 친구가 적으로, 그림자는 유령으로 여겨졌다. 산울타리, 덤불, 나무와 같은 천연 이정표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청각도 술책을 부렸다. 낮에는 지나치는 소음도 어둠 속에서는 잘 들린다. 제임스 1세 시대 작가였던 조지 허버트는 이런 고찰을 남겼다. "밤은 낮보다 조용한데도 우리는 낮에는 신경쓰지 않던 것들을 무서워 한다..."               p.43~44


밤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밤은 없던 감성도 불러 일으키는 낭만적인 시간이다. 밤에 나누었던 대화, 밤에 들었던 노래, 밤에 썼던 글들은 모두 다른 시간대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정취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밤은 망상이나 악몽에 사로잡히는 불안한 시간이기도 하고, 폭력, 약탈, 방화가 벌어지는 범죄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에 만난 책은 바로 그 '밤'에 대해 문학과 사회사, 심리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사유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산업혁명 이전 서양의 역사에서 밤시간의 역사를 탐색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16세기만 해도 사람들은 밤을 위협으로 가득찬 시간이라고 느꼈다. 밤이 되면 두려워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살인자와 도둑과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악마의 악령 같은,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최악 요인들이 밤을 지배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죽음조차도 사탄이 지배하는 어두운 밤이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반면 밤에 환락을 즐기거나, 명상을 하거나, 고된 노동을 하기도 했다. 밤은 가난한 사람들과 노예, 동성애자, 종교적 소수자에게 도피처가 되어, 적어도 그 시간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다고 느꼈다. 밤에 모임을 갖는 사람들 중에는 악당들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밤거리 걷기를 꺼렸다. 하지만 상류층 귀족의 밤은 달랐는데, 그들은 밤의 어둠에 맞서는 호화로운 여흥거리를 만들어냈다. 비용은 많이 들지만 사회적 억압과 의무로부터 벗아난 쾌락츨 추구하며 난장판을 벌였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사람들이 밤의 영역을 침범하여 그 신비를 벗긴 것은 비교적 최근인 1730~1830년의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밤의 문화는 인공조명을 거의 완전하게 누리게 된 20세기의 산물이고 말이다. 




밤은 사회적 풍경에 혁명을 일으켰다. 어둠이 권력자들을 더 평민적으로 만들었다면, 수많은 약자들은 더 강하게 만들었다. 한 작가는 그들이 "머리에 쓴 왕관으로 하늘의 별들을 쓰러뜨리려는 듯 꼿꼿이 거만하게 길을" 걷는다고 한탄했다. 고된 일과 수모의 시간에서 벗어난 미국과 유럽의 대중은 해가 떨어지고 나면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일과 사회적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밤의 매력은 낮은 계층에게 더 의미가 컸다.               p.341


이 책은 밤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위험과 그것에 대한 방비책, 밤에 사람들을 사로잡는 망상이나 악몽, 밤에 하던 사교행위와 놀이, 침대의 의식과 불면증 등 밤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풍부한 도판과 함께 펼쳐 보인다. 역사학 교수인 저자가 각국의 수많은 도서관과 기록보관소를 오가며 20년 넘게 집필한 책답게 방대한 시간을 풍부한 고증으로 생생하게 되살렸다. 전통적으로 방종과 무질서를 연상시키는 밤의 매력과 이야기를 풀어놓기에 안성맞춤인 어둠의 시간으로의 가치, 낮의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발산해주는 분출구, 세상으로부터 숨으려 하는 이들을 위한 은신처, 그리고 또 다른 삶의 기회로서의 밤의 모습이 제각각 너무 달라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겼다. 


밤하늘을 제대로 올려다 본 적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쁜 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말이다. 별빛이 없어도 도심의 휘황찬란한 빛들이 밤을 어둡지 않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밤이 원래 그런 풍경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인공조명이 보편화되기 전의 시간에 대해, 밤이 어둠으로 가득했던 시기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둠과 처음 맞닥뜨리게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깜깜하다. 그런데 눈이 어둠에 적응을 하고 나면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라보는 밤의 시간들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밤에 이루어진 모든 것의 역사는 방대하지만 길어서 더 재미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요약될 수 없는, 경험해야만 하는 책'이라는 평가처럼, 천천히 페이지를 넘겨가며 그 시간들을 체험해보길 권해주고 싶다. 막연하게 밤의 풍경 속에는 낮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있을 것만 같고, 뭔가 특별한 비밀이 보물찾기라도 하듯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바로 그렇게 어두워져야만 듣고 볼 수 있는 것들, 빛과 어둠을 모두 품고 있는 밤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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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축 이야기 - 구마 겐고가 들려주는 일본 건축의 본질과 미래
구마 겐고 지음, 서동천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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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건축은 다양한 장소와 시간 속에서 각각 인간의 상황에 따라 정의되었고, 때로는 발견되었다. 잊어선 안되는 사실은 일본건축이 일본인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장소에는 당연히 일본 이외의 장소도 포함되고, 정의하고 발견하는 주체가 일본인인 것만은 아니었다. 세계 스케일의 교착 속에서 일본건축의 다양성과 풍부함이 발견되고 창조되었으며 그렇게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p.58


도쿄올림픽 당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의 디자인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현대적인 여느 경기장들과 달리 지붕에 목재를 사용하고 층마다 식물을 심은 이색적인 경기장이었다. 이 건축물이 바로 구마 겐고의 작품이다. 그는 나무·종이·돌 같은 자연 재료나 지역 자재로 자연에 스며드는 건물을 짓는 걸로 유명하다. 대나무로 지은 호텔, 벽과 바닥을 유리로 만든 빌라 등 하나같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그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았다. 서울에도 구마 겐고가 설계한 건축물이 있다. 바로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오디오 박물관인 '오디움'이다. 2만개의 파이프를 들쑥날쑥 배치해 빛에 따라 시시각각 색이 바뀌도록 만든 은빛 건물이 굉장히 이색적이다.


구마 겐고는 평소에 '일본건축'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무려 2000년을 훨씬 넘는 역사가 일본건축에 새겨져 있기에 그 대상이 너무 크고 애매해서, 쉽게 착수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가 들려주는 일본 건축 이야기는 어떨까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이 책에서 구마 겐고는 건축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건축이 변화해온 모습을 자신의 관점에서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다. 이야기는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처음 보여주었던 타우트의 나무상자에서 시작한다. 브루노 타우트라는 독일의 세계적 건축가가 디자인한 작은 나무상자를 보며 어느 한 쪽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모순으로 가득 찬 양면성을 발견하고, 그 불가사의함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 건축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모더니즘 건축과 디자인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일본의 목조건축은 「구체」와 「마감」이라고 하는 단순한 이분법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고 다양한 작은 요소들이 서로 합쳐지고 도와주면서 부드럽게 물리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부재 옆에는 그 부재의 습성을 잘 이해하는 기술자들이 조용히 대비하고 있어서 이 부재들이 서로 도움을 준다는 것은, 즉 기술자들이 서로 도와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관계들이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건축은 완성 이후에도 부드러운 결합을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이후 다양한 생활이나 세월의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p.321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번쯤 안도 다다오, 이토 도요, 반 시게루 등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 상을 수상한 건축가가 8명이나 된다. 아직 국내 건축가 중에는 수상한 사람이 없는 걸로 아는데, 그래서 일본의 건축에 대해서 더 궁금한 부분이 있었다. 어떤 점 때문에 한국인은 아직 수상하지 못한 건축계의 노벨상을 이들은 8명이나 수상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물론, 세계 여러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을 설계해온 세계적인 건축가인 구마 겐고가 쓴 이 책은 결코 수월하게 읽히지 않는다. 그가 8년에 걸쳐서 이 한 권의 책을 탈고했을 만큼 일본의 건축이라고 하는 길고도 깊은 역사를 촘촘하게 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량이 많은 책은 아니지만, 호흡을 길게 해서 차근차근 읽어보길 권해주고 싶다. 일본의 건축가들이 서구의 양식 건축이나 모더니즘 건축과 만나게 되면서 이후 일본 건축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시대 순으로 짚어주고 있기 때문에, 건축의 시선으로 역사서를 읽는 듯한 느낌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일본 건축이 시대와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와 다른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에,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로서 건축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건축에 관심이 있거나, 본격적으로 건축을 전공하고 연구하는 이들에게도 일본 건축에 대한 구마 겐고의 견해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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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 말보다 깊은 눈빛, 양조위의 삶·사랑·작품
주성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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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말보다는 눈빛과 공기로, 표현하기보다는 침묵을 통해 역사와 시간을 봉인하는 두 인물에게서, 얼핏 전혀 다른 세계처럼 보이는 허우샤오시엔과 왕가위 사이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접점을 목격한다. 양조위는 그 불가능할 것 같은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 영화는 다른 예술과 달리 침묵을 미학으로 만들고, 아무 행위도 하지 않는 것마저 이야기로 만든다.... 세상의 시간을 정지시키고 우주의 운동을 잠시나마 멈추게 하는 그 경지를, 우리는 양조위의 얼굴에서 보았다.                p.101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무간도>, <색, 계>, <일대종사> 등 40년 동안 홍콩영화의 시간 속에서 우뚝 서 있는 배우 양조위. 그의 삶과 작품을 통해 지금은 쇠퇴해가고 있는 홍콩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주 특별한 책을 만났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을 통해 장국영이라는 배우를 추억했던 주성철 작가가 이번에는 홍콩영화의 현재를 지키고 있는 배우 양조위를 기록했다. 




이 책은 양조위의 연기 인생을 집대성한 전 세계 최초의 평전이기도 해서 더욱 의미가 있다. 문학, 미술, 음악 등 다른 예술과 달리 영화에는 관객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배우'라는 존재가 있다. 그래서 최근 안성기 배우의 부고를 들었을 때 마음이 쓰였던 것처럼 배우들의 시간은 우리 각자의 삶과 함께 흘러가며 역사를 쌓아가는 것 같다. 


홍콩은 어느 골목에서는 <중경삼림>을 만나고, 어느 식당에서는 <화양연화>가, 어느 밤거리에서는 <천장지구>가 떠오르는 나라이다. 홍콩을 생각하면 몰려드는 거대한 이미지들은 대부분 홍콩영화 속 그것이 아닐까 싶다. 허름하고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는 건물들을 보며 꼭 홍콩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하고, 양조위가 거닐었을 법한 거리를 찾기 위해 밤거리를 돌아다녀 본 적도 있다. 나처럼 홍콩과 홍콩영화를 함께 기억하고 있다면, 이 책이 정말 선물처럼 느껴질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래 전 홀릭했었던 그 시절 홍콩 영화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지 않았을까. <중경삼림>을 보며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빠져본 적이 

있다면 말이다. 



"새해는 무슨 새해야, 그냥 살아가는 거지."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살면 살아진다"라는 대사를 연상시키는 이 말은, 영화 <류맹의생>(1995)에서 '양아치 의사' 혹은 '츤데레 의사'라 불리는 양조위가 새해 파티를 제안하는 사람들을 물리치며 투덜대듯 내뱉는 대사다. 이 장면을 무척 좋아한다. 1년 365일 중 4월 1일이 되면 우리가 자동적으로 장국영을 떠올리듯, 연말연시가 되면 SNS에 이 대사가 담긴 양조위의 '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p.238


이 책은 표지사진부터 특별한데, 지금껏 세상에 공개된 적 없는 <해피 투게더> 촬영 당시의 미공개 현장 스틸이기 대문이다. 그리고 이 사진을 초판 한정으로 도서에 삽지된 엽서로도 소장할 수 있다. 이미 유명한 배우였을 때 영화에서 만났기에, 그의 무명 시절에 대해서는 아는게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가 배우로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그 과정을 만날 수 있어 더 뜻깊은 시간이었다. TVB ‘오호장’의 막내로 사랑받던 청춘기부터 허우샤오시엔과 오우삼을 거쳐 홍콩영화 뉴웨이브의 중심에 섰던 도약기, 왕가위의 페르소나로 고독과 침묵의 미학을 완성한 시절까지 이 책을 통해 모두 만나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 책은 방대한 자료와 사진들을 바탕으로 쓰였기에 우리를 홍콩영화에 열광했던 그 시절로 데려간다. 영화잡지 〈키노〉를 시작으로 〈필름2.0〉, 〈씨네21〉을 거쳐 <씨네플레이>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 영화평론가 주성철은 홍콩영화 전문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특유의 입담과 깊은 통찰과 섬세한 해석이 페이지마다 고스란히 묻어져 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장국영의 적극성과 대비되는 양조위의 소심함이라는 미덕, 악역의 얼굴 뒤에 숨겨진 끝없는 슬픔, 언제나 영화 속에서 말을 아끼고 상대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하며, 주변의 공기마저 정지시키는 고요한 침묵의 순간을 창조해내는 배우... 등 잘 직조된 문장으로 한 배우의 드라마틱한 필모그래피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다. 


'화려함보다 소박함을 택하고 과시보다 절제를 앞세우는, 그래서 날카롭게 번쩍이는 칼날이 아니라 보는 각도에 따라 은은한 광택을 드러내는 도자기 같은' 배우 양조위를 통해 이제는 멸종 위기에 처한 홍콩영화의 시간 속으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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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광 코딱지 3 : 마음의 빛을 밝힐 것 야광 코딱지 3
도대체 지음, 심보영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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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정하고 귀여운 우리 동네 히어로 <야광 코딱지> 세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반짝반짝 빛나는 야광 코딱지로 이웃을 돕는 히든 히어로 단지에게 사상 최대의 위기가 생긴다. 심한 감기에 걸리고 나서 거짓말처럼 야광 코딱지의 빛이 모조리 사라져 버린 것이다. 더이상 빛나지 않는 야광 코딱지로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가 없다. 


게다가 '명탐정 예리의 미스터리 추적 일지'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전학생 예리가 야광 코딱지의 정체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미스터리 현상을 관찰하고 조사하는 걸 좋아하는 예리에게 어두워지는 빛이 나는 야광 코딱지야말로 신기한 물질이었으니 말이다. 과연 단지는 예리의 날카로운 추적을 피해, 잃어버린 야광 코딱지의 빛을 되찾을 수 있을까. 




단지네 가문에 내려오는 비밀 중에 하나는 드물게 야광 코딱지를 지니고 태어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단 야광 코딱지를 지닌 자손이 태어난다면 반드시 비밀로 해야 하며, 야광 코딱지는 반드시 정의로운 일에 써야 한다. 그 말이 '야광 코딱지를 가진 사람은 누군가를 돕는 영웅의 운명을 지녔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기에 단지는 항상 코딱지를 보관하며 누군가를 도와줄 상황에 나서곤 했다. 그렇게 잃어버린 강아지 깐돌이를 찾는 과정에서 활약했고, 친구 미래의 단골인 장미 이모의 토스트 가게에서도 붉을 밝혀주며 도움을 주었다.




아파트 단지가 정전이 되어 에어컨도 선풍기도 먹통이라 난리였는데, 놀이터에 모여든 사람들을 위해 단지가 아이디어를 낸다. 코딱지 반죽을 아빠의 도움으로 수타면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수타면이 된 야광 반죽으로 놀이터를 꾸미기 시작하는데, 그넷줄을 따라 감고, 줄넘기가 되기도 하고, 시소도 꾸미고, 집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덕분에 놀이터가 환해져 아이들이 탄성을 지르며 신나게 놀게 되었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즐거운 모습을 보며 단지는 기분이 으쓱해졌다. 이렇게 첫 번째, 두 번째 이야기에서 야광 코딱지의 활약을 보여 주었다면, 세 번째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위기가 닥쳐와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야광 코딱지가 또 어떤 활약을 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고, 우리의 꼬마 영웅 단지가 위기를 겪으며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응원하며 읽는 것도 좋다. 말랑말랑하면서 밝게 빛나고, 고무찰흙처럼 반죽할 수 있고, 어두워지면 빛이 나는 형광물질로 위기를 겪는 이웃들을 도와주고,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을 도와준다는 설정부터 신선했던 <야광 코딱지> 시리즈는 매번 새로운 발명품으로 재미를 더해주었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주고, 조명이 고장난 토스트 가게의 불을 대신해주고, 한여름밤 놀이터를 신나는 놀이공원으로 변신시켜주고, 오징어잡이 배를 밝혀주기도 했다. 


스토리에 앞 뒤에 별도로 구성한 페이지를 엿보는 재미도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선 단지의 아침일과, 저녁 일과를 통해 야광 코딱지를 모으는 방법을 보여주었고, 두 번째 이야기에선 고단지의 비밀 노트, 단지의 발명품 리스트를 통해 다양한 활용 방법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단지의 집 구석구석에서 야광 코딱지를 찾아보는 숨은 그림 찾기와 새로운 발명품이 소개되었다. 9월에 나올 네 번째 이야기에선 또 어떤 활약을 보게 될지 기대가 된다.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세상을 밝히는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작품을 통해 빛나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 그 자체라는 것을 배우는 시간을 가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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