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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축 이야기 - 구마 겐고가 들려주는 일본 건축의 본질과 미래
구마 겐고 지음, 서동천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본건축은 다양한 장소와 시간 속에서 각각 인간의 상황에 따라 정의되었고, 때로는 발견되었다. 잊어선 안되는 사실은 일본건축이 일본인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장소에는 당연히 일본 이외의 장소도 포함되고, 정의하고 발견하는 주체가 일본인인 것만은 아니었다. 세계 스케일의 교착 속에서 일본건축의 다양성과 풍부함이 발견되고 창조되었으며 그렇게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p.58
도쿄올림픽 당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의 디자인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현대적인 여느 경기장들과 달리 지붕에 목재를 사용하고 층마다 식물을 심은 이색적인 경기장이었다. 이 건축물이 바로 구마 겐고의 작품이다. 그는 나무·종이·돌 같은 자연 재료나 지역 자재로 자연에 스며드는 건물을 짓는 걸로 유명하다. 대나무로 지은 호텔, 벽과 바닥을 유리로 만든 빌라 등 하나같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그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았다. 서울에도 구마 겐고가 설계한 건축물이 있다. 바로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오디오 박물관인 '오디움'이다. 2만개의 파이프를 들쑥날쑥 배치해 빛에 따라 시시각각 색이 바뀌도록 만든 은빛 건물이 굉장히 이색적이다.
구마 겐고는 평소에 '일본건축'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무려 2000년을 훨씬 넘는 역사가 일본건축에 새겨져 있기에 그 대상이 너무 크고 애매해서, 쉽게 착수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가 들려주는 일본 건축 이야기는 어떨까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이 책에서 구마 겐고는 건축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건축이 변화해온 모습을 자신의 관점에서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다. 이야기는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처음 보여주었던 타우트의 나무상자에서 시작한다. 브루노 타우트라는 독일의 세계적 건축가가 디자인한 작은 나무상자를 보며 어느 한 쪽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모순으로 가득 찬 양면성을 발견하고, 그 불가사의함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 건축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모더니즘 건축과 디자인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일본의 목조건축은 「구체」와 「마감」이라고 하는 단순한 이분법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고 다양한 작은 요소들이 서로 합쳐지고 도와주면서 부드럽게 물리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부재 옆에는 그 부재의 습성을 잘 이해하는 기술자들이 조용히 대비하고 있어서 이 부재들이 서로 도움을 준다는 것은, 즉 기술자들이 서로 도와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관계들이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건축은 완성 이후에도 부드러운 결합을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이후 다양한 생활이나 세월의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p.321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번쯤 안도 다다오, 이토 도요, 반 시게루 등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 상을 수상한 건축가가 8명이나 된다. 아직 국내 건축가 중에는 수상한 사람이 없는 걸로 아는데, 그래서 일본의 건축에 대해서 더 궁금한 부분이 있었다. 어떤 점 때문에 한국인은 아직 수상하지 못한 건축계의 노벨상을 이들은 8명이나 수상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물론, 세계 여러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을 설계해온 세계적인 건축가인 구마 겐고가 쓴 이 책은 결코 수월하게 읽히지 않는다. 그가 8년에 걸쳐서 이 한 권의 책을 탈고했을 만큼 일본의 건축이라고 하는 길고도 깊은 역사를 촘촘하게 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량이 많은 책은 아니지만, 호흡을 길게 해서 차근차근 읽어보길 권해주고 싶다. 일본의 건축가들이 서구의 양식 건축이나 모더니즘 건축과 만나게 되면서 이후 일본 건축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시대 순으로 짚어주고 있기 때문에, 건축의 시선으로 역사서를 읽는 듯한 느낌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일본 건축이 시대와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와 다른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에,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로서 건축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건축에 관심이 있거나, 본격적으로 건축을 전공하고 연구하는 이들에게도 일본 건축에 대한 구마 겐고의 견해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