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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ㅣ 교유서가 어제의책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밤에는 스코틀랜드의 시인 제임스 톰슨이 개탄하듯 "질서가 거짓이 되고, 모든 아름다움은 공허해지고, 개성은 사라지고, 즐거운 다양성은 하나의 거대한 오점으로 바뀐다. 친구가 적으로, 그림자는 유령으로 여겨졌다. 산울타리, 덤불, 나무와 같은 천연 이정표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청각도 술책을 부렸다. 낮에는 지나치는 소음도 어둠 속에서는 잘 들린다. 제임스 1세 시대 작가였던 조지 허버트는 이런 고찰을 남겼다. "밤은 낮보다 조용한데도 우리는 낮에는 신경쓰지 않던 것들을 무서워 한다..." p.43~44
밤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밤은 없던 감성도 불러 일으키는 낭만적인 시간이다. 밤에 나누었던 대화, 밤에 들었던 노래, 밤에 썼던 글들은 모두 다른 시간대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정취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밤은 망상이나 악몽에 사로잡히는 불안한 시간이기도 하고, 폭력, 약탈, 방화가 벌어지는 범죄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에 만난 책은 바로 그 '밤'에 대해 문학과 사회사, 심리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사유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산업혁명 이전 서양의 역사에서 밤시간의 역사를 탐색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16세기만 해도 사람들은 밤을 위협으로 가득찬 시간이라고 느꼈다. 밤이 되면 두려워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살인자와 도둑과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악마의 악령 같은,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최악 요인들이 밤을 지배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죽음조차도 사탄이 지배하는 어두운 밤이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반면 밤에 환락을 즐기거나, 명상을 하거나, 고된 노동을 하기도 했다. 밤은 가난한 사람들과 노예, 동성애자, 종교적 소수자에게 도피처가 되어, 적어도 그 시간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다고 느꼈다. 밤에 모임을 갖는 사람들 중에는 악당들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밤거리 걷기를 꺼렸다. 하지만 상류층 귀족의 밤은 달랐는데, 그들은 밤의 어둠에 맞서는 호화로운 여흥거리를 만들어냈다. 비용은 많이 들지만 사회적 억압과 의무로부터 벗아난 쾌락츨 추구하며 난장판을 벌였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사람들이 밤의 영역을 침범하여 그 신비를 벗긴 것은 비교적 최근인 1730~1830년의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밤의 문화는 인공조명을 거의 완전하게 누리게 된 20세기의 산물이고 말이다.

밤은 사회적 풍경에 혁명을 일으켰다. 어둠이 권력자들을 더 평민적으로 만들었다면, 수많은 약자들은 더 강하게 만들었다. 한 작가는 그들이 "머리에 쓴 왕관으로 하늘의 별들을 쓰러뜨리려는 듯 꼿꼿이 거만하게 길을" 걷는다고 한탄했다. 고된 일과 수모의 시간에서 벗어난 미국과 유럽의 대중은 해가 떨어지고 나면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일과 사회적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밤의 매력은 낮은 계층에게 더 의미가 컸다. p.341
이 책은 밤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위험과 그것에 대한 방비책, 밤에 사람들을 사로잡는 망상이나 악몽, 밤에 하던 사교행위와 놀이, 침대의 의식과 불면증 등 밤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풍부한 도판과 함께 펼쳐 보인다. 역사학 교수인 저자가 각국의 수많은 도서관과 기록보관소를 오가며 20년 넘게 집필한 책답게 방대한 시간을 풍부한 고증으로 생생하게 되살렸다. 전통적으로 방종과 무질서를 연상시키는 밤의 매력과 이야기를 풀어놓기에 안성맞춤인 어둠의 시간으로의 가치, 낮의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발산해주는 분출구, 세상으로부터 숨으려 하는 이들을 위한 은신처, 그리고 또 다른 삶의 기회로서의 밤의 모습이 제각각 너무 달라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겼다.
밤하늘을 제대로 올려다 본 적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쁜 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말이다. 별빛이 없어도 도심의 휘황찬란한 빛들이 밤을 어둡지 않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밤이 원래 그런 풍경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인공조명이 보편화되기 전의 시간에 대해, 밤이 어둠으로 가득했던 시기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둠과 처음 맞닥뜨리게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깜깜하다. 그런데 눈이 어둠에 적응을 하고 나면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라보는 밤의 시간들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밤에 이루어진 모든 것의 역사는 방대하지만 길어서 더 재미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요약될 수 없는, 경험해야만 하는 책'이라는 평가처럼, 천천히 페이지를 넘겨가며 그 시간들을 체험해보길 권해주고 싶다. 막연하게 밤의 풍경 속에는 낮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있을 것만 같고, 뭔가 특별한 비밀이 보물찾기라도 하듯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바로 그렇게 어두워져야만 듣고 볼 수 있는 것들, 빛과 어둠을 모두 품고 있는 밤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