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건 죽음
앤서니 호로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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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앤서니 호로위츠의 전직 형사 호손과 소설가 호로위츠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은 <중요한 건 살인>이었고, 두 번째 작품은 <숨겨진 건 죽음>이다. 현지에서는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까지 출간되어 있다. 전편에서 혼자 살던 부유한 노인이 커튼 끈에 목이 졸려 살해당한 사건을 조사했던 두 사람은 이번 작품에서 승승장구하던 이혼 전문 변호사가 와인병에 가격당해 살해되는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들어가면 안 되는 비밀 통로와 공간이라면 나는 예전부터 사족을 못 썼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고급 호텔에 가면 직원용 휴게실로 몰래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비싼 카펫과 샹들리에가 갑자기 사라지고 모든 게 지저분하고 실용적인 분위기로 바뀌는 것이 좋았다. 런던 북부의 스탠모어에서는 누이와 함께 울타리 아래로 기어 나가 우리 집 옆에 있던 사무용 단지를 몰래 돌아다녔다. 요즘도 미술관, 백화점, 극장, 전철역에 있으면 잠긴 문 뒤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것이 소설 창작의 훌륭한 정의가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잠긴 문을 열고 독자들을 그 너머로 데리고 가는 것.              p.136


소설가인 호로위츠는 TV 드라마를 집필하던 중에 자문 역으로 전직 형사인 호손을 소개받는다. 호손은 런던 경찰청에서 근무했지만 아동 성 착취물을 거래한 용의자를 호송하다 사고가 생겨 경찰청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는 여느 전직 형사들처럼 보안 업체에 취직하는 대신 범죄 드라마를 제작하는 영화사와 방송국을 돕는 데 자기 재능을 활용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런 경로로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현직 형사는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까다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 측에서 자문 역으로 그를 부르곤 했다. 문제는 경찰에서 주는 보수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그는 호로위츠에게 자신을 주인공으로 책을 쓸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어쩌다보니 그의 설득에 넘어간 호로위츠는 호손과 함께 수사에 참여하다 살인 사건에 휘말려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하면서 첫 책의 원고를 탈고하고 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첫 책이 나오기도 전에 또 다시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이후에 두어 시간 동안 일을 했다. 그리고 산책을 다녀왔다. 호손이 보고 싶어 한 부분의 원고를 휘리릭 썼다. 이런 식으로 나열하면 조금 재미없게 들린다는 건 알지만 작가의 삶이 원래 그렇다. 하루의 절반을 혼자, 정적 속에서 보낸다. 이 원고와 저 원고를 오가며 수천 개의 단어를 처음에는 펜으로, 그다음에는 컴퓨터로 지면에 옮긴다. 내가 <앨릭스 라이더>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직접 모험을 떠날 수는 없더라도 상상이나마 할 수 있으니까. 그에 비하면 호손이 주인공인 원고는 작업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 나는 상황의 노예로 전락했다.                 p.207~208


이번 살인 사건에는 명백한 용의자가 있었다. 살해된 이혼 전문 변호사 프라이스는 1천만 파운드가 걸린 엄청난 사건을 맡고 있었다. 그 소송의 상대측이 바로 소설가이자 시인인 안노 아키라였는데, 그녀는 그 소송으로 별로 얻은 게 없었다. 그녀는 손님으로 가득한 식당 한복판에서 프라이스의 머리에 와인을 부었고, 병으로 치겠다는 협박의 말까지 내밷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사람도 아주 많았고 말이다. 게다가 사건 현장에 초록색 페인트로 '182'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그녀가 발표했던 시집 속 182번 작품이 하필 살인의 속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과연 그녀가 자신이 협박한 내용 그대로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사건을 수사하면서 용의자는 점점 더 늘어난다. 이혼 전문 변호사답게 주변에는 적이 많았고, 그들 모두에게 동기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호손은 호로위츠와 함께 여섯 명의 용의자들을 만나 신문하지만 좀처럼 쉽지가 않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두가 수상쩍인 비밀을 숨긴 채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 중 누가 범인일까? 차곡차곡 단서를 쌓아가는 탐정물로서의 재미도 탄탄하지만, 호손과 호로위치의 관계에 대한 부분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아 흥미진진하다. 


호손은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달라고 요청했지만, 어째서인지 호로위츠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전혀 밝히지 않는다. 호로위츠는 자신이 호손에 대해 알고 있는 단편적인 사실들 모두가 눈속임처럼 느껴졌고, 그의 진면모가 아니라 껍데기라고 생각했다. 그를 주인공으로 책을 세 권 쓸 작정이라면 그에 대해 알아야 했기 때문이고, 주인공을 최대한 호감이 가는 인물로 그리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호손이 자신의 개인적인 정보를 광적으로 감춘다는 거였는데, 과연 호손의 과거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마이크 칼라일이라는 사람이 호손을 <빌리>라고 부르며 반가워했던 장면이 있었는데, 호손은 자신이 빌리가 아니라고 그를 모른 척 했지만 아무래도 그의 과거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리즈의 다음 작품에서는 이 비밀에 대해서 밝혀질지도 매우 궁금하다. 다음 시리즈도 어서 빨리 만나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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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건 죽음
앤서니 호로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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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더 강력해진 재미와 미스터리로 돌아온 호손과 호로위츠 시리즈! 다음 시리즈도 어서 빨리 만나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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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마스터 8 - 썬더 드래곤의 포효 드래곤 마스터 8
트레이시 웨스트 지음, 데미안 존스 그림, 윤영 옮김 / 다산어린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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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어린이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드래곤 마스터> 시리즈 여덟 번째 이야기까지 읽어 보았다. 지난 1권에서 농부의 아들인 드레이크는 양파 밭을 일구다 왕이 보낸 병사들을 맞이하고 함께 성으로 가 왕의 마법사 그리피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드래곤 문양이 새겨진 나무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초록빛 드래곤 스톤을 보여주며, 드레이크가 드래곤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 준다. 그렇게 드레이크는 진짜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대한 드래곤을 마주하게 되었다. 


2권에서는 드래곤과 드래곤 마스터의 본격적인 비행 훈련이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케프리의 부상을 치료해주는 웜의 능력을 모두들 알게 된다. 볼품 없어 보이던 외관과는 달리 웜에게 엄청난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3권에서는 드래곤과 드래곤 마스터를 연결해 주는 신비한 돌, 드래곤 스톤을 도둑맞는 사건이 벌어진다. 드래곤 마스터들과 왕실 마법사 그리피스가 드래곤 스톤을 되찾기 위해 활약을 보이는 모습이 보여졌었다. 




4권에서는 롤랜드 왕이 자신의 드래곤 부대를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는데, 벌컨이 롤랜드 왕이 있는 쪽으로 불길을 내뿜는 바람에 다음 차례인 웜은 자신의 장기를 선보이지도 못한 채, 로즈왕비의 축제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성에 남게 된 로리와 드레이크는 머리가 넷인 포이즌 드래곤이 성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경계 태세에 들어선다. 게다가 포이즌 드래곤을 타고 있던 사람은 바로 흑마법사 말드레드였다. 말드레드의 정체가 드디어 드러나서 본격적인 대결이 펼쳐지는 이야기에 이어 5권에서는 새로운 드래곤 마스터가 등장했다. 말드레드가 마법사 감옥으로 보내지면서 포이즌 드래곤이 마법에서 풀려났기 때문에, 포이즌 드래곤을 위한 드래곤 마스터로 페트라라는 소녀가 성에 도착한다. 그리고 새로운 드래곤과 마스터를 만나러 왔다가 롤랜드 왕이 포이즌 드래곤의 독에 중독되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드래곤 마스터들의 이야기가 그려졌었다. 




6권은 프라임 드래곤 스톤이 힘을 잃어 가고 있다는 소식으로 시작된다. 프라임 드래곤 스톤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조각이 바로 드래곤 마스터들의 목에 걸린 드래곤 스톤이었기 때문에, 각자의 드래곤 스톤 또한 빛을 잃고 드래곤들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프라임 드래곤 스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일곱 드래곤의 피라미드 안에 숨겨져 있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 드래곤 마스터들은 프라임 드래곤 스톤을 구하기 위해 피라미드의 땅으로 향한다. 피라미드 안에 있는 비밀의 방 여섯 개, 그리고 각 방의 비밀을 풀 단서들이 차례로 등장하며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듯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였다. 


7권에서는 전편에서 갓 태어난 새끼 드래곤인 라이트닝 드래곤을 찾기 위해 모험이 펼쳐진다. 어미도 없고, 드래곤 마스터도 없이 혼자 두려움에 떨며 헤매고 있는 라이트닝 드래곤을 빨리 데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해치려는 의도가 없었더라도, 드래곤의 날개에서 불꽃이 튀어 마을에 불길이 치솟았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침 드래곤 스톤이 라이트닝 드래곤의 새로운 드래곤 마스터를 선택했기에, 드레이크는 드래곤 마스터를 찾으로 마법사 디에고의 고향으로 향한다. 그 동안 잠깐씩 등장했던 마법사 디에고가 이번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활약을 펼친다. 방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늘리려다 보니 집이 엄청 구불구불해진 디에고의 집 또한 흥미진진했다. 




8권에서는 새끼 드래곤 랄로를 데려가버린 썬더 드래곤과 에코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에코는 그리피스의 첫 번째 제자로 수련 중에도 늘 말다툼이 잦았었다고 한다. 에코가 그리피스의 의견에 반대할 때가 많았기 때문인데,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썬더 드래곤을 데리고 브라켄 왕국을 떠나 버렸다는 거다. 한동안 찾을 수 없었던 에코가 썬더 드래곤을 데리고 나타나 랄로를 데려간 이유는 뭘까. 한편, 브라켄 왕국에서는 롤랜드왕과 로즈왕비의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라, 드래곤들을 비롯해 성안의 모든 사람들이 축제 준비에 한창이다. 드래곤들의 행진과 함께 성대한 파티가 시작되지만, 갑자기 나타난 썬더 드래곤 네루와 에코 덕분에 결혼식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에코는 드래곤들을 위해서 성 안에 가두지 말고 자유롭게 떠나보내도록 하겠다며, 다른 드래곤들도 모두 내놀으라고 위협한다. 하지만 드래곤들은 각자의 드래곤 마스터와 연결되어 있어 한몸이나 다름없었는데, 과연 드래곤들을 원래 그들이 살던 땅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옳은 것일까? 에코의 등장으로 기존 드래곤 마스터들까지 갈등하게 되는데, 그들의 선택과 고민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드래곤 마스터 세트> 서포터즈로 활동하게 되어 10주간 5번의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1주차 미션은 세트 개봉기였고, 2주차 미션은 ‘드래곤 마스터 벽걸이 장식’ 인형을 제작해보는 것이다. 이번 3주차 미션은 세트의 구성 상품인 드래곤 마스터 수련 노트 활용기였다. 4주차 미션으로 다양한 독서활동지를 받았다. 가로 세로 낱말 퍼즐, 나만의 드래곤 상상해보기, 인물 관계도 그리기, 드레이크와 웜이 아닌 다른 인물과 드래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 만들어 보기 등 중에 아이가 선택한 것은 컬러링 도안이다. 좋아하는 드래곤을 골라서 채색을 하면서 드래곤 마스터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더욱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 


드래곤 마스터 시리즈는 각각의 책마다 '드래곤 마스터가 되기 위한 예행 연습'이라는 페이지가 있어 책을 읽고 여러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독서와 독후 활동을 단 한 권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시리즈를 거듭해 갈수록 더 흥미진진한 스토리만큼이나, 독후 활동도 차근차근 쌓이고 있어 아이들의 문해력 증진을 위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시간을 가지고 있다. 각 권의 마지막에 다음 이야기가 예고가 나오는데, 다음 이야기인 9권에서는 에코와 함께 떠나 버린 로리를 찾기 위해 나선다고 하니 어서 빨리 만나봐야겠다. 독서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푹 빠져서 읽게 만드는 마성의 시리즈! 드래곤 마스터와 함께 모험을 떠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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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심장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1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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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대지는 이 세상에 속한 것 같지 않았네. 우리는 정복된 괴물이 족쇄를 차고 있는 모습에는 익숙했지만, 그곳, 그곳에서는 괴물 같은 존재가 자유로이 풀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 그곳은 이 세상에 속한 것 같지 않았고, 그곳의 인간들은...... 그래, 그들은 비인간적인 존재가 아니었어. 글쎄, 그게 가장 곤혹스러운 일이었지. 그들이 비인간적인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이야. 그 의심은 천천히 찾아왔어. 그들은 울부짖고 뛰어오르고 빙빙 돌며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었는데, 우리를 전율케 한 것은 그들이, 우리처럼, 인간성을 지니고 있을 거라는 생각, 이 사납고 격정적인 소란이 우리와 먼 친척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네.                 p.86


조지프 콘래드 사망 100주기를 맞아 새롭게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의 원제는 ‘Heart of Darkness’다. 기존에는 지금까지 ‘암흑의 핵심’, ‘어둠의 심연’, ‘어둠의 속’ 등 각기 다른 뉘앙스의 제목으로 번역돼왔다. 황유원 번역가는 ‘어둠의 심장’이라고 제목을 번역했다. ‘Heart of Darkness’는 소설의 무대로 짐작되는 ‘콩고 내륙의 빽빽한 초목’을 가리키는 동시에, ‘인간의 광기’, 즉 물리적 영역과 심리적 영역을 모두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에 ‘어둠의 심연’보다는 ‘어둠의 심장’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번역뿐만 아니라 작품과 연관된 다양한 텍스트를 부록으로 수록해 가장 충실하고 완전한 판본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된 이번 책은, 가장 최신의 《어둠의 심장》이자 소설의 명성만 들었던 사람들, 난해하다는 소문에 읽기를 망설였던 사람들, 어둡지만 심장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기꺼이 나아갈 준비가 된 사람들을 위한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는 템스강에 정박한 쌍돛대 유람선 넬리호에서 몇 사람이 앉아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가 진 뒤, 강물 위로 땅거미가 내리고 강기슭을 따라 불빛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말로 선장이 자신의 과거 경험담에 대해 말을 꺼낸다. 그는 인도양, 태평양, 중국해를 6년 정도 실컷 경험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지도를 아주 좋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에서 무역을 하는 커다란 회사에 대해 알게 되고, 친척들의 도움으로 무역회사 소속으로 콩고 강을 오가는 증기선 선장이 된다. 떠나기 전 지도의 정중앙에 표시된 치명적일 만큼 매력적인 강을 보고 설레이는 것도 잠깐, 관련 서류 작업을 하면서 직원들 사이에서 뭔가 불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음모에, 뭔가 상당히 잘못된 일에 휘말린 듯한 기분이 들었던 거다. 하지만 불길한 암시에도 불구하고 콩고라는 미지의 장소에 대한 가한 호기심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만일 궁극적 지혜가 그런 형태로 찾아오는 것이라면, 인생은 우리 중 몇몇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수수께끼인 셈이지. 나는 하마터면 판결을 내릴 마지막 기회를 얻을 뻔했지만, 어쩌면 내게 아무런 할 말도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굴욕감을 느꼈네. 커츠가 비범한 사람이었다고 내가 단언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세. 그에게는 무언가 할 말이 있었거든. 그는 그것을 말했네. 내 스스로 삶의 가장자리 너머를 슬쩍 들여다본 이후로, 촛불의 불꽃은 볼 수 없어도 온 우주를 아우를 만큼 광대하고 어둠 속에서 뛰는 모든 심장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운 그의 시선이 지닌 의미를 나는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p.167~168


말로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커츠'라는 전설적인 인물에 대한 것이었다. 커츠는 원주민에게 막대한 양의 교역품을 끌어내어 그 지역 무역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로 무성한 소문을 가지고 있는 수수께끼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말로가 커츠를 만나기 위해 가장 어둡고 야만적인 지역으로 향하는 여정이 이 작품의 주요 서사가 된다. 먼저 사업장으로 가기 위해 콩고 강 어귀에 도착해 말로가 마주한 것은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흑인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합법적인 기간제 계약이라는 명목하에 병들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기 전까지 혹사당해온 것이다. 모든 것이 엉망인 그곳에서 말로는 오지에 가면 커츠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커츠가 비범한 인물이며, 특별한 존재라고 말한다. 긴 여정을 거쳐 어둠의 심장부에서 말로는 커츠와 만나게 되는데... 과연 커츠는 무성한 소문과 명성에 걸맞는 인물이었을까? 커츠와 말로의 만남은 이 작품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 작품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조지프 콘래드는 자신이 직접 콩고에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로드 짐>과 <어둠의 심장>이라는 작품을 썼다. 그는 유럽의 식민주의가 노골적으로 이루어지던 콩고에서 목격한 사건들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수백만의 아프리카인들을 죽이면서 착취했던 당시 유럽인들을 소재로 작품을 쓰기에 이른 것이다. 극중 콩고에 도착한 말로가 발견한 것은 문명인의 어두운 내면세계라고도 볼 수 있다. 물욕때문에 영혼마저 잃어버리고, 야만적인 민낯을 드러내는 인간의 본성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충격적이고, 끔찍하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무엇이 문명이며, 무엇이 야만인지, 어느 순간 둘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빽빽한 초목의 벽으로 둘러싸인 정글 사이를 지나 안개 자욱한 강을 건너며 각종 장애물들을 피해 항해해야 하는 힘든 여정처럼 콘래드의 문장들도 밀림처럼 빽빽하고, 숨 막히는 거대한 숲과 닮아 있다. 분명 행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침표 하나 없는 글을 읽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흑의 정글처럼 묵직하고, 수수께끼로 가득한 미로처럼 모호한 부분 또한 이 작품의 매력을 훼손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 대지에 초목이 만발하고 커다란 나무들이 왕이나 다름없던 태초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여행, 공기가 뜨끈하고 빽빽하고 묵직하고 둔탁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숲을 지나 식물과 물과 침묵으로 이루어진 기이한 세상의 압도적인 현실이 빚어내는 이 놀라운 이야기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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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익스프레스 - 길고 쓸모 있는 인생의 비밀을 찾아 떠난 여행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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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은 그저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책과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는 보통 독자와 저자가 만나는 공간인 책의 여백에서 이루어졌다. 프랭클린은 열심히 밑줄을 치고 메모를 남기는 여백의 거주자였다. 그의 독서는 폭넓고 현명했다. 지혜로 가득한 책을 선택하면서도 자신만의 지혜를 잃지 않았다. 회의적이지만 열린 태도로 책을 읽었다. 어릴 때부터 가능성주의자였던 그는 창조적 재능과 가장 밀접하게 결부되는 성격적 특성, 바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지니고 있었다. 프랭클린에게는 독서가 곧 경험이었다.            p,52~53


에릭 와이너의 신작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를 어크로스의 600P 클럽으로 읽었다. 매일 정해진 분량만큼 읽고, 리딩 가이드를 통해 미션과 필사를 하며 차곡차곡 작품 속으로 들어가보는 다채로운 시간이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기였다면, 이번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는 필라델피아부터 파리까지 벤저민 프랭클린의 길고 쓸모 있는 삶의 비밀을 찾아 떠난 여행기를 담고 있다. 


100달러 지폐의 얼굴로 유명한, 시간 관리와 자기 계발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프랭클린에 대해 잘 몰라도 상관없다. 전작이 소크라테스에 관한 책이 아니었듯이, 이 책 역시 벤저빈 프랭클린에 관한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삶을 추구하는 방법, 쓸모 있고 유의미한 삶을 위한 프랭클린의 실용적인 인생 철학은 무엇일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만나보았다. 




에릭 와이너는 삶의 중요한 이정표(60세라는 나이)를 앞두고 겁에 질려 있었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 노년의 문턱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안과 걱정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그는 바로 그때 벤저민 프랭클린을 만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00달러 지폐 위의 얼굴로만 알고 있던, 시간 관리와 자기 계발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프랭클린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프랭클린과 그가 살던 시대를 향해,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프랭클린을 대표하는 키워드인 '쓸모'에 대해 생각해 보고, 프랭클린이 말한 오자 개념에 대해 알아보았다. 에릭 와이너와 함께 떠나는 프랭클린의 삶에 대한 여정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책에 대한 그의 애정이었다. 프랭클린은 책을 읽고 쓰고 사고팔고 빌리고 빌려주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선물하고 수집하고 사랑했다.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미국 최초의 관외 대출 도서관을 세웠고, 1790년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미국에서 가장 대규모의 개인 장서를 집에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구할 수 있는 책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던 그는 단순히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책과 대화를 나눴다.




직관에 반하는 터무니없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을 도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지 않나? 꼭 그런 건 아니다. 프랭클린이 발견하고 최근의 다른 연구들이 입증했듯이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왜일까? 인지부조화가 한 원인이다. 모순되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품기란 어렵다. 그러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우리는 마음을 바꿈으로써 이러한 긴장감을 가라앉힌다... 우리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그럴 기회를 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p.387


이처럼 프랭클린의 길고 쓸모 있는 삶은 책과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구할 수 있는 책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던 어린 시절부터 혼잡한 교차로 근처의 모퉁이에 있는 작고 녹음이 우거진 벤의 묘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쓸모 있고 유의미한 삶을 위한 프랭클린의 실용적인 인생 철학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는 프랭클린에 대해서 100달러 지폐에 얼굴이 새겨져 있고, 시간 관리와 자기 계발의 아이콘이라는 점 외에 아는 게 거의 없었지만, 책을 사랑하는 다독가였다는 점만으로도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프랭클린에게 습관은 전기만큼이나 강력한 힘이었다고 한다. 습관은 선한 사람이 선한 행동을 하고 나쁜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하는 원인이라고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선하거나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악한 습관과 선한 습관 모두 오랜 시간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형성된다." 라고. 그는 의도가 아닌 행동을 강조했는데,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의향이 아닌 결과였기 때문이다. 습관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장을 읽다 보니, 왜 프랭클린이 자기계발이 아이콘이 되었는지 너무도 잘 이해가 되었다. 




프랭클린 시대의 청교도인들은 실수와 오자를 '죄'라고 칭했고, 이 죄는 자기 처벌적인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하지만 프랭클린에게 오자는 그저 실수일 뿐이었다. 실수는 누구에게나 발생하기 마련이고, 바로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삶은 펜이 아닌 연필로 쓰인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프랭클린이 살던 시대를 생각해 보았다. 프랭클린은 습관처럼 책을 읽던 어린 시절부터 습관의 힘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는 매일의 일정을 완벽히 통제했고, 의도가 아닌 행동을 강조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의향이 아닌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프랭클린은 터무니없는 발상을 하기도 했다. 전 세계의 덕 있는 사람을 환영하는 미덕 연합당을 창립한다던가, 자기만의 열세 가지 미덕 목록을 작성한다던가 하는 식이었는데, 열세 덕목에 대해 오늘 날의 시점으로 점검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책이 우리를 태우고 수 세기를 넘나드는 타임머신이라면, 책이 가지고 있는 마법 같은 힘이 우리의 인생을 구할 수 있다면, 에릭 와이너와 함께 떠나는 프랭클린의 삶에 대한 여정 또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 복잡하고 미로 같은 세상 속에서, 정답 없는 삶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당신에게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조언들을 건네줄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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