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 소녀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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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자>, <이름없는 자>, <영혼의 심판>의 작가 도나토 카리시의 스탠드 얼론 <안개 속 소녀>가 출간되었다. 오랜 만에 만나는 도나토 카리시의 신작이라 굉장히 기대가 되었다.

"왜냐하면 범인을 체포해야 우리가 조금은 더 안전하다고 그나마 '착각'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따지고 보면 대중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범답안은 따로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입니다. 진실을 알게 되면 우리도 사건에 연루가 되고 공범이 되기 때문이지요. 언론과 대중, 그러니까 모든 이들이 범죄자를 인간이 아니라고 여긴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범죄자들을 무슨 외계종족이나 남을 해하고 악을 행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여긴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그런 범죄자들을.... 대단한 인물로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힘주어 말했다.

국경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악지방에 자리 잡은 마을 아베쇼에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10대 소녀 애나 루가 실종된다. 처음에는 단순가출로 여겼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범죄의 가능성이 제기되어, 스타 형사인 포겔이 사건을 맡게 된다. 독실한 신앙 가정에서 자란 평범해 보이는 소녀에게 그 어떤 사건의 전조가 될 만한 내용도 보이지 않았고, 몸값을 요구 받은 적도, 가족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인물도 딱히 없었다. 아무런 증거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포겔은 이 사건을 누군가 소녀를 납치한 걸로 보고 수사를 지휘한다.

미궁에 빠진 실종사건, 신에게 맹목적으로 헌신하고 스스로에게 엄한 규율을 적용하는 공동체 속에 스며든 악의 기운,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온 마을 전체가 어쩔 수 없이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항상 우아한 정장과 완벽한 수제 구드로 차림새에 신경을 쓰는 포겔 형사이다. 사건을 해결해야 할 형사가 언론을 선동해 화제를 만들고, 그로 인해 주목을 받고 스타가 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주인공이 영웅이 아니라 수사를 망친 장본인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데에 놀라움이 있는데, 작품의 후반부에 터지는 몇 번의 반전 또한 역시 도나토 카리시라는 감탄사가 나올 만큼 임팩트를 준다. 사건을 수사하는 담당 형사가 수사 감각이 탁월하지도, 추리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인물이라 매우 당황스럽지만, 과거 증거조작으로 무고한 사람을 연쇄살인범으로 몰았던 일로 불명예를 겪었기에 이번 사건을 재기를 위한 발판으로 여기고 달려든다는 점에 있어 동기부여는 확실해 공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중반 정도 지점에 이르면 새로운 등장 인물이 나타나 서사를 이끌면서 무게 중심을 나눠 잡으면서, 간단한 것처럼 보였던 플롯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보르기는 불면의 시간이 이어지는 동안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다름 아닌 실종된 소녀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소녀의 행방이나 생사 여부에 대해서는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언론과 대중, 심지어 경찰조차 다른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사는 여학생을 어떻게 살해했을까? 살인 전에 강간을 했을까? 사람들은 이미 소녀가 살해당한 게 확실하다고 믿고 그저 자신들의 병적이고 노골적인 호기심을 채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왜 여학생을 살해한 건지 그 동기나 이유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범죄는 7초 간격으로 일어날 정도로 많지만, 그 중에서 미디어를 통해서 다루어지는 사건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렇게 각종 기사와 프로그램, 전문가들이 동원된 사건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급기야 범죄가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이는 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제대로 된 스토리로 엮은 범죄는 기록적인 수준으로 시청률을 끌어 올리며 각종 스폰서와 광고를 몰아오고, 사건이 벌어진 지역을 찾는 외지인들의 수가 늘어나며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범죄사건이 최고의 흥미거리로 부각되는 이유를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극중 포겔 형사는 그 방면에 뛰어난 직감과 동물적 감각이 있었기에 명성을 쌓아 올려 스타 형사가 되었던 것이다. 폐쇄적인 마을 아베쇼의 주민들도 점차 소녀의 행방과 안위보다는 범인으로 추측되는 인물에게 집중하기 시작하고, 자극적인 범죄 행위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우리 모두에겐 괴물이 필요했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모두는 다른 누군가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느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도나토 카리시는 작가 이전에 이탈리아의 범죄학자로 유명했다. 범죄학과 행동과학의 전문가로 그에 대한 논문을 썼었고, 실제 자신이 참여한 사건을 소재로 집필한 <속삭이는 자>로 데뷔했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묘사와 리얼한 수사 과정과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이 돋보이는 작품을 써왔다. 그의 작품에서는 어떤 장면도 '그냥' 흘러가는 법이 없을 정도이다. 매 장면 풍부한 묘사와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얼마나 꼼꼼하게 복선을 깔고, 설계했는지 책을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나서 잠시 동안은 어리둥절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가 처음 그의 작품을 읽었을 때, 마지막 페이지에 와서는 맙소사. 라고 탄식 어린 한숨을 내뱉고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만큼 작가가 구축해놓은 이야기의 설계도가 완벽하고 탄탄해서 빈틈이 없다는 얘기가 되겠다. 무엇보다 작가는 독자를 이렇게 홀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그런 솜씨니 말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범죄를 사람이 관계된 사건이 아닌 막대한 수익이 창출되는 또 다른 리얼리티 쇼로 소비하는 현대인의 민낯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기존에 만나왔던 작품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만, 여전히 도나코 카리시만의 탄탄한 플롯과 엄청난 한 방을 날려주는 반전이 인상적이었다. 시작은 영화의 시나리오로 쓰인 거였고, 그것을 소설로 재집필해서 선보이게 된 작품이라, 영화로 만나게 되면 또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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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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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을 때는 여름이 아직도 한참 계속되겠다 싶었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어느 틈에 가을이 찾아왔다는 걸 알았다.

저녁 바람은 선선하고, 역 앞 로터리 원형 화단에는 코스모스 꽃이 한들거렸다. 소담스레 핀 코스모스 꽃 속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 아이가 서 있었다. 원피스 군데군데에 해바라기 꽃이 피어 있다. 어디까지나 모티프니까, 색은 하늘색.

, 계속 여기 있었구나.............내 그림자는 하나뿐이었지만, 나는 둘이 전철을 기다렸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죽은 딸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남편과 아내에게는 5년 동안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다. 그들 부부에게는 아직 지겹도록 긴 인생이 남아 있지만, 산다는 것에 흥미가 없어지고, 체력과 기력이 떨어지는데도 아무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날아온 기모노 카탈로그를 보게 되고, 죽은 딸을 대신해 성인식에 참석하기로 한다. 열다섯 살에 죽은 딸이 여전히 살아 있다면 이제 곧 성년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 스무 살 젊음들과 함께 서기엔 그들의 나이를 속일 수가 없고, 그들 부부는 그곳에서 딸의 친구들까지 만나게 된다. 자신의 딸은 여전히 열다섯 살인데, 남의 딸이 성장한 모습을 보는 기분이란 어떨까.

결혼 3년차인 쇼코는 아이가 태어난 지금이 되어서야 비로소 연애와 결혼은 다른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매번 일을 핑계로 늦게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일에도 지치고, 혼자서 어린 딸을 키우며 육아에 매달려 있는 것도 힘들고, 남편이 거의 집에 없는데도 가까이 사는 시어머니는 툭하면 나타나 잔소리를 해댄다. 좁은 아파트에서 혼자 칭얼칭얼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다 보면, 자신도 밖에 나가고 싶고, 회사에 다시 나가 일하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그러다 결국 불만이 극에 달해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친정으로 아이를 데리고 짐을 싸 집을 나오고 만다. 그런데, 그날부터 이름도 없는 낯선 주소의 메일이 도착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남편이 장난을 한 것이라 여겨 화가 났는데, 남편은 그 일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했고, 쇼코는 의문스러운 옛 말투의 그 메일이 과거에서 오는 거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 작품에 실린 여섯 개의 단편은 모두 가족에 얽힌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다. 5년 전 죽을 딸을 잊지 못하는 부부, 오랫 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엄마가 치매에 걸리고 나서야 화해하게 된 딸, 결혼을 앞두고 해변의 조그만 마을에 있는 이발소를 찾아온 청년, 남편에게 실망해 친정으로 돌아온 여자의 이야기 등등... 익숙한 듯 보이지만 특별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들이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담백하고 잔잔하면서도 뜨거운 이야기는 아련하게 남아있는 먼 기억들을 불러오며 따뜻한 향수를 불러오기도 한다.

거울에 공을 들인 것은 이유가 있어서였습니다. 손님이 바다를 바라보며 이발할 수 있다는 건 구실이지, 사실은 저 자신을 위한 거였어요.

이발사는 늘 커다란 거울 앞에서 일하는 직업이죠. 손님에게 언제나 모습을 보여야 하는 장사입니다. 그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발하는 동안 바다를 보고 있으면 제 얼굴에는 신경을 쓰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내 얼굴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언젠가 당신 살인자지, 하고 누가 손가락질할 까봐 두려워서.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나의 맨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감정을 꾸미거나 속일 필요가 전혀 없는 그런 관계.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관계'라는 걸 맺게 되는 곳이 바로 집이란 걸 떠올려보자면, 어쩌면 그래서 이렇게 서툰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까, 그래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가족 관계를 통해서 앞으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맺게 될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가게 된다. 가족 관계에 따라 앞으로 수많은 인간관계가 그와 유사하게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어릴 때 사랑을 받지 못했다거나, 가족에게서 거부당한 적이 있다거나 할 경우 자존 감이 낮아지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비슷한 상처를 주거나 받을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아끼고 보듬고 사랑을 키워야 할 가정이 잘못하면 불행을 키우는 씨앗을 만들어내는 곳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 지긋지긋하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이 작품은 가끔은 고통스럽고, 어쩔 땐 짜증나고, 꼴도 보기 싫고, 미울지라도, 가족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언젠가는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고 위로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믿고 싶어지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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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쿠마몬
구마모토 현 지음, 임종민 옮김, 코야마 쿤도 감수 / 북폴리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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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별로 쿠마몬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 4컷 만화들은 귀요미 캐릭터에 맞춰 번역체도 깜찍 그자 체이다. 손이 커서 안 들어갔다몬, 밤길은 위험해몬, 등잔 밑이 어둡네몬.. 등 이른바 쿠마몬의 ~몬체는 정말 중독성이 있어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 싶어지게 하고, 심플한 이야기 속 여백에서 느껴지는 유머와 여유로움이 슬그머니 미소짓게 만들어준다.

 

 

쿠마몬은 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만든 마스코트이다. 2010년 규슈 신칸센 개통 이후 지역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곰을 뜻하는 쿠마와 사람을 뜻하는 현지 사투리 몬이 합해져 만들어진 이름으로, 일본 현지에선 헬로키티 이후 가장 성공한 캐릭터 상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쿠마몬은 국가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구마모토 현은 전년 대비 관광객이 2배로 늘고, 쿠마몬 상품 매출도 수익에 한 몫 했으며, 구마모토 현이 고속철도 종착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른바 '쿠마몬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일본 규슈에 위치한 구마모토 여행 패키지를 '쿠마몬을 찾아 떠나는 구마모토 여행'이라고 판매하기도 한다. 구마모토 역의 기념품 가게에 가면 온통 쿠마몬 아이템으로 가득한데, 쿠마몬 컵, 문구류, 티셔츠.. 심지어 쿠마몬 롤케이크까지 판다고 한다. 가게 메뉴판에도 수건에도 쿠마몬을 만날 수 있고, 쿠마몬 과자부터 맥주까지 마니아들을 열광시킬 만한 아이템들이 가득한 곳이라고 한다.

 

 

일본의 제책 방식을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하는 이 만화는, 표지 역시 앞 면은 쿠마몬의 앞 모습, 뒷면은 쿠마몬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게다가 제일 뒷장에는 잘라서 책갈피로 쓸 수 있는 깜찍발랄 쿠마몬 캐릭터까지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까워서 어떻게 잘라 쓰나 싶긴 하지만 말이다. 하핫.

 

쿠마몬의 캐릭터 프로필이다.

 

성별: 남자아이
생일: 3월 12일(나이 미상)
출생지: 구마모토 현
특기: 구마몬 체조
성격: 응석꾸러기에 호기심 가득
직업: 구마모토 현 영업부장

 

구마모토 현 영업부장이라는 항목에서 빵 터진다. 실제로 쿠마몬이 구마모토 현을 위해 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만화들은 구마모토일일신문에 일년 동안 게재된 4컷 만화들이다. 그래서 계절 별로 쿠마몬의 일상이 담겨 있는 것이고 말이다. 4컷 만화는 네 개의 칸으로 구성된 카툰의 한 장르로, 시사 풍자 만화에 주로 많이 쓰고 유머 카툰도 이 형식을 많이 쓴다. 국내에서도 예전에 주로 신문 만화로 보았던 적이 있는 것 같다. 4컷 만화는 주로 기승전결 구조로 내용이 전개되고 마지막 칸에서는 ‘결’보다는 반전을 주로 사용하는 형식인데, 그래서 짧고 간단하지만 여운이 남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코믹인데 여운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코믹 쿠마몬> 책은 구석구석 너무도 세심하고 예쁘게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책 등 아래 쪽과 위쪽에도 쿠마몬 캐릭터를 만나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아래 쪽과 위쪽에 있는 쿠마몬의 표정도 다르고 정말 귀엽기 그지 없다.

 

 

 

책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네살 짜리 아들이 다가와 자기도 보겠다며 손가락을 들이댄다. 아이가 보기에도 눈길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는 곰돌이 캐릭터였으리라.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켜 가면서 뭐라뭐라 말을 하기도 하고, 재미있게 보는 것이 어른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보기에도 참 좋을 것 같았다.

 

 

글자는 별로 없고 그림이 대부분인데다, 극강의 귀여움을 자랑하는 쿠마몬 캐릭터 덕분에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아, 아이도 한참 책을 펼쳐놓고 들여다 보았다. 아이에게 4컷 만화의 내용을 몇몇 읽어주기도 했는데, 대부분 쉽고 간단해서 아이에게 알려주기에도 괜찮았다.

 

 

방탄소년단의 민윤기가 쿠마몬의 팬으로 유명한데, 실제로 일본에서 쿠마몬 캐릭터와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을 보니 잘 어울리더라. 역시 잘나가는 아이돌은 어울리는 캐릭터도 일본 최고의 귀요미 쿠마몬인가 싶은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리고 쿠마몬이야 워낙 호불호가 없는 캐릭터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쿠마몬을 사용한 아이템들도 전부터 많이 판매되고 있어 모르는 이들이 없는 유명 캐릭터이기도 하고 말이다.

 

 

세상에서 먹는 걸 제일 좋아하고 풀 한 포기까지 소중하게 생각하는 온화하고 마음씨 좋은 쿠마몬. 그래서 사계절을 배경으로 한 쿠마몬과 구마모토 현 동물 친구들의 소소하고 즐거운 일상 속에는 음식과 관련된 4컷 만화들도 꽤 많이 보인다. 어리숙하고 순진해보이지만, 마음 따뜻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착한 쿠마몬. 그 일상을 따라가지보니 바쁘게 지내오는 일상들 속에서 잠시나마 쿠마몬의 느긋하고 여유로운 생각과 행동들이 마음에 가득 담겨왔다.

 

매일매일 너무 정신없이 바쁘서 뒤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잠시 따뜻한 커피 한잔과 달콤한 빵 한 조각과 쿠마몬 한 권이면 그대로 시간이 멈춰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록 책을 덮으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더라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쿠마몬과 함께 마음껏 여유도 부리고, 웃기도 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잇을 것이다. 진짜 힐링 만화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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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로드 모중석 스릴러 클럽 42
로리 로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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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녀석들이 찾아올 때까지 한번 잘 기다려봐." 레이가 말했다.

"네가 그 여자애를 납치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이 말이야. 네가 마을에 돌아오자마자 그 애가 실종됐다는 걸 잊지 마. 사람들이 전부 수상하게 여기고 있어, 알아? 다들 수군거린다고."

아서는 결혼 후 아내인 실리어를 한 번도 고향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십대 시절 벤트로드에서 큰누나 이브를 잃은 뒤로는 절대 뒤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을 피해 25년 만에 아서의 가족은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야기는 이들의 여정이 출발하는 첫 단락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시커먼 어둠 속을 달리는 스테이션왜건 속의 실리어와 아들 대니얼, 딸 에비는 트럭을 운전하는 아서를 놓치고 만다. 경사진 듶판을 따라 차를 향해 돌진해오는 검은 형체들의 정체는 텀블위드였지만, 그러다 도로를 가로질러 차 앞으로 뛰어드는 시커멓고 커다란 형체와 부딪칠뻔 한다. 그들이 칠 뻔한 그것이 사람인지, 괴물인지 혹은 그저 텀블위드나 사슴이나 코요테였는지 알 수 없었던 채로, 그들은 그렇게 벤트로드에 도착하게 된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아서의 가족이 그곳에 이사온 뒤 마을에서 한 소녀가 실종된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들은 낯선 타인이었고, 그들이 오자마자 소녀가 실종됐기에 그들 가족을 수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냉담하고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오랜만에 만나는 작은 누나 루스와 그녀의 남편 레이의 관계 역시 평탄하지만은 않다. 아서는 작은 누가가 레이의 폭력에 희생당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 분노한다.

사실 마을 사람들은 아서의 큰 누나 이브를 살해한 범인이 잡히지 않았기에, 당시 그녀를 사랑했던 레이를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루스는 자기 언니를 죽인 인간과 결혼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의심은 생전의 이브와 닮은, 현재 실종된 소녀의 행방에 레이가 뭔가 관여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가 소녀에게 뭔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그 와중에 에비는 죽은 고모의 유품에 이상하게 집착하기 시작하고, 대니얼은 아빠의 총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에비와 대니얼은 그곳에서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매일 홀로 떠돈다. 아서와 실리아는 끊임없이 불안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왜 그랬을 것 같아? 왜 그렇게 많은 걸 숨겼는지 알겠어?"

"사람은 뭐든 적응하기 마련이에요." 실리어가 말했다. "그렇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면서요. 세상일이 다 그러려니 하고 익숙해지는 거죠." 그녀는 상자로 손을 뻗어 타원형의 매끄러운 구슬 하나를 골라 루스에게 건넸다. "진실이 두렵기 때문이었겠죠."

과거에 벌어졌던 죽음의 비밀, 수십 년간 외면해왔던 고향과 가족들, 낯선 이들이 등장하고 이어진 갑작스런 실종 사건에 대한 의혹,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각자의 비밀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 작품은 시종일관 불안감을 자아낸다. 플롯 자체만 보자면 살인 사건이 있었고, 실종 사건도 벌어지지만 그에 대한 수사가 벌어지는 부분은 거의 묘사되지 않기에 평범한 일상들이 주를 이룬다. 이야기 자체만 보자면 전혀 스릴러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만큼.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새겨진 미세한 균열이 어느 순간 쩍 하고 갈라지며 그 모든 평화를 깰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아주 사소하게 시작한 불안이 결국에는 영혼 전체를 잠식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그 모자이크를 태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직조해내는 작가의 솜씨가 그야말로 놀랍다.

로리 로이는 '미스터리 소설계의 오스카상'이라 일컫는 에드거상 역사상 최우수신인상과 최우수장편상을 모두 거머쥔 작가이다. 에드거상의 육십여 년 역사에서 최우수신인상과 최우수장편상을 모두 수상한 여성 작가는 그녀가 처음이라고 하니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그 에드거 신인상을 받은 그녀의 데뷔작이 바로 이 작품 <벤트로드>이다. 그녀가 써낸 세 작품 모두 1960년대 전후의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가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그 거대한 이야기의 첫 발걸음인 셈이다. '고딕으로 장식된 느와르', '미국 아메리칸 고딕 소설의 새로운 전범'이라 극찬받았다는 말이 부풀려진 것이 아님을 이 작품을 읽어보면 느낄 수 있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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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력 - 사람을 얻는 힘
다사카 히로시 지음, 장은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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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인간력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다지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다. 처세술이니, 인간관계론이니, 사람공부니 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대체적으로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는데 두려움이 없는 편이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조정을 하거나,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도 그다지 어려움을 겪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웬 걸 예전에는 몰랐던 부분들을 이제 더 알게 되어서인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관계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라는 이 책을 통해 제대로 된 내 사람을 얻는 힘에 대해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된 것 같다.

회사에서 팀을 운영할 때도, 개인적으로 모임의 멤버로 활동할 때도 나는 보편적으로 잘 지내는 사람들과 특별히 가까운 사람들을 구분하는 편이었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자연스레 말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을 꺼내 보여줄 수 있는 사람, 내 의견을 믿고 따라줄 수 있는 사람, 진짜 내 사람은 몇 명인지 헤아려 보고는 한다. 사람을 얻어야 전부를 얻게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참 쉽다고 생각했던 인간 관계가 어렵게만 느껴진다. 아마도 나이를 먹게 되고, 넓었던 인간 관계가 제한적이 되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갈수록 개인주의적이 되어가는 이 사회 속에서 함께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 가치관이 흔들리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경험이 쌓이고, 시간을 통과할 수록 더 쉬워져야 하는 법이거늘, 거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이 수월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일 거다.

회사에서 엄격하고 꼼꼼한 관리자.

가정에서 자식 사랑이 끔찍한 아버지.

부모님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아들.

친구들 사이에서 장난꾸러기.

 

다양한 인격을 적절히 사용할수록 건강한 사람이다.

 

항상 똑똑하고 잘나가던 우등생이었던 이 책의 저자는 젋은 시절 자만심에 들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던 참이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실에 몸담았을 때 지도 교수가 한 말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자네도 수고했어. 참 우수한 학생이었어. 그런데 말이야.. 자네는 붙임성이 없어!" 그 한마디가 그의 가슴을 파고들어 평생 동안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게 된 것이다. 자신에게는 결점이 없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그것을 은근히 자랑하는 교만과 무의식적인 거만함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결점은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점이 없는 사람이 되려 하고, 스스로 결점이 없는 사람이라 믿으며, 결점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려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은근한 교만과 함께 무의식적인 거만함이 뿌리박혀 주변 사람의 마음을 멀어지게 하니 말이다. 스승이 그에게 가르쳐 준 '붙임성'이라는 덕목은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과 결점을 인정하고 미숙함을 인정하는 유연함이었다. 그것의 중요성을 깨워준 스승의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지택하고 이끌어주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가장 좋아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찾으세요.

반드시 그 사람을 좋아하도록 하세요."

놀랍게도 우리는 나와 같은 결점을 가진 사람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싶지만, 그건 우리가 성인 군자가 아닌 이상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대신 인간관계 문제에 부딛 쳤을 때 인간력에 대해 생각해보고, 인간관계가 원활해지는 마음습관에 대해 떠올려볼 수는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닐 테니 말이다.

다사카 히로시는 인간력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일곱 가지 마음 습관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하나. 인정하자, 여전히 나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미숙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인간은 완벽한 사람보다 결점이 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 단단하기보다는 부드러워져라. 용기 내 솔직하게 먼저 다가가면 상대방과 더 깊이 이어진다.

. 내 안의 작은 자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마음속 작은 자아의 합리화에 넘어가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책임을 떠안는다.

넷.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타인의 결점을 개성으로 받아들인다.

다섯. 말의 힘을 터득하면 관계가 보인다. 내뱉은 말이 내 감정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안다.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않는다.

여섯. 설사 멀어지더라도 영원히 끊지는 말라.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화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일곱. 악연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곱씹어라. 불행하고 괴로운 경험을 성장으로 이어나간다.

말로 하고, 머리로 이해하기야 쉽지 직접 실천하는 게 어디 말처럼 쉽겠냐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면, 사람을 만나고 돌아서서 허무함이 든다면,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람 문제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렇다면 한번쯤 고민해 볼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꼭 필요한 해결책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책에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가 담겨 있지만, 지루하거나 진부하지 않아 좋았던 것 같다. 인간력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인간 관계에서 얼마나 필요한 능력인지 깨닫게 되어, 이제는 어느 곳에서 누구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더라도 예전처럼 두려움 없이 시작하게 될 것 같고 말이다. 인간을 수양하고 인간력을 높이는 길이, 고전을 읽는 것도 아니고, 산에 틀어박혀 수행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매일 인연으로 만난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좋은 관계를 위해 발버둥 치며 노력해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인간력'있는 사람이 되어 보자. 어제보다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훨씬 더 나아진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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