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트로드 모중석 스릴러 클럽 42
로리 로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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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녀석들이 찾아올 때까지 한번 잘 기다려봐." 레이가 말했다.

"네가 그 여자애를 납치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이 말이야. 네가 마을에 돌아오자마자 그 애가 실종됐다는 걸 잊지 마. 사람들이 전부 수상하게 여기고 있어, 알아? 다들 수군거린다고."

아서는 결혼 후 아내인 실리어를 한 번도 고향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십대 시절 벤트로드에서 큰누나 이브를 잃은 뒤로는 절대 뒤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을 피해 25년 만에 아서의 가족은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야기는 이들의 여정이 출발하는 첫 단락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시커먼 어둠 속을 달리는 스테이션왜건 속의 실리어와 아들 대니얼, 딸 에비는 트럭을 운전하는 아서를 놓치고 만다. 경사진 듶판을 따라 차를 향해 돌진해오는 검은 형체들의 정체는 텀블위드였지만, 그러다 도로를 가로질러 차 앞으로 뛰어드는 시커멓고 커다란 형체와 부딪칠뻔 한다. 그들이 칠 뻔한 그것이 사람인지, 괴물인지 혹은 그저 텀블위드나 사슴이나 코요테였는지 알 수 없었던 채로, 그들은 그렇게 벤트로드에 도착하게 된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아서의 가족이 그곳에 이사온 뒤 마을에서 한 소녀가 실종된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들은 낯선 타인이었고, 그들이 오자마자 소녀가 실종됐기에 그들 가족을 수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냉담하고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오랜만에 만나는 작은 누나 루스와 그녀의 남편 레이의 관계 역시 평탄하지만은 않다. 아서는 작은 누가가 레이의 폭력에 희생당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 분노한다.

사실 마을 사람들은 아서의 큰 누나 이브를 살해한 범인이 잡히지 않았기에, 당시 그녀를 사랑했던 레이를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루스는 자기 언니를 죽인 인간과 결혼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의심은 생전의 이브와 닮은, 현재 실종된 소녀의 행방에 레이가 뭔가 관여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가 소녀에게 뭔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그 와중에 에비는 죽은 고모의 유품에 이상하게 집착하기 시작하고, 대니얼은 아빠의 총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에비와 대니얼은 그곳에서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매일 홀로 떠돈다. 아서와 실리아는 끊임없이 불안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왜 그랬을 것 같아? 왜 그렇게 많은 걸 숨겼는지 알겠어?"

"사람은 뭐든 적응하기 마련이에요." 실리어가 말했다. "그렇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면서요. 세상일이 다 그러려니 하고 익숙해지는 거죠." 그녀는 상자로 손을 뻗어 타원형의 매끄러운 구슬 하나를 골라 루스에게 건넸다. "진실이 두렵기 때문이었겠죠."

과거에 벌어졌던 죽음의 비밀, 수십 년간 외면해왔던 고향과 가족들, 낯선 이들이 등장하고 이어진 갑작스런 실종 사건에 대한 의혹,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각자의 비밀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 작품은 시종일관 불안감을 자아낸다. 플롯 자체만 보자면 살인 사건이 있었고, 실종 사건도 벌어지지만 그에 대한 수사가 벌어지는 부분은 거의 묘사되지 않기에 평범한 일상들이 주를 이룬다. 이야기 자체만 보자면 전혀 스릴러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만큼.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새겨진 미세한 균열이 어느 순간 쩍 하고 갈라지며 그 모든 평화를 깰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아주 사소하게 시작한 불안이 결국에는 영혼 전체를 잠식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그 모자이크를 태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직조해내는 작가의 솜씨가 그야말로 놀랍다.

로리 로이는 '미스터리 소설계의 오스카상'이라 일컫는 에드거상 역사상 최우수신인상과 최우수장편상을 모두 거머쥔 작가이다. 에드거상의 육십여 년 역사에서 최우수신인상과 최우수장편상을 모두 수상한 여성 작가는 그녀가 처음이라고 하니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그 에드거 신인상을 받은 그녀의 데뷔작이 바로 이 작품 <벤트로드>이다. 그녀가 써낸 세 작품 모두 1960년대 전후의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가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그 거대한 이야기의 첫 발걸음인 셈이다. '고딕으로 장식된 느와르', '미국 아메리칸 고딕 소설의 새로운 전범'이라 극찬받았다는 말이 부풀려진 것이 아님을 이 작품을 읽어보면 느낄 수 있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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