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강 캐트린 댄스 시리즈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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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차를 멈춰 세웠다. 들쭉날쭉한 바위들 쪽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그곳에서는 곧 벌어질 비극을 훤히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거센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키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은 낮게 걸려 있었다. 사진작가들이 '특별한 시간'이라고 부르는 시간대였다. 빛이 친구로 바뀌고 촬영에 방해가 되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순간. 심오하고 지적인 주제에 관심이 많은 마치도 한때 사진을 공부했다. 핸드 투 하트 웹사이트에 직접 찍은 작품들이 걸려 있을 정도로 실력도 좋았다. 다들 죽을 거야. 그는 다시 생각했다.          p.140~141

 

클럽 솔리튜드크리크는 항상 다양한 사람들도 북적거려 흡사 몬터레이베이 지역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그날도 밴드의 공연을 앞두고 수백 명의 관객이 모여 있었다.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었고, 스탠딩 자리 역시 좋은 위치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고, 밴드의 두 번째 곡이 진행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무나 종이가 탄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스피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곧 클럽 안은 아비규환이 되고 만다. 범인은 클럽 안이 아니라 밖에 불을 질렀고, 대형 트레일러 트럭으로 비상구를 막아놓고 달아났다. 많은 사람이 한곳으로 몰리면서 압사당한 사람도 있고, 질식해 죽은 사람들도 있었으며, 사방이 핏자국으로 뒤덮인 끔찍한 광경이 벌어지고 만다.

 

 

제프리 디버의 ‘캐트린 댄스’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다. 여러 시리즈를 거느린 작가 제프리 디버의 유일한 여성 수사관 주인공인 캐트린 댄스는 링컨 라임 시리즈의 <콜드 문> (2006)에 처음 조연으로 등장한 이후에 독자들의 요청으로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했다. 링컨 라임이 과학적인 증거를 중요하게 여기는 법과학 전문가라면, 캐트린 댄스는 증인 심문을 통해 몸짓언어를 읽어내는 동작학 전문가로 두 캐릭터는 거의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 댄스는 물리적 증거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리 매력은 느끼지 않았다.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범죄와 수사의 인간적인 측면이었으니 말이다. 반면 라임은 증거물이 아닌 다른 부분에는 대체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목격자의 신뢰도는 물리적 증거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런 현장에 가게 되면 주변을 유심히 살펴봐요. 시신이나 부상자들을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을 말이에요. 구경꾼들. 물론 피해자들을 돕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고,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 틈에는 예외 없이 카메라를 꺼내 들고 베스트샷을 건지기 위해 신나게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단순히 호기심에 그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걸 수집하는 ‘전문가’들일 수도 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저지선을 쳐놓고 사람들을 쫓는 경찰들에게 가장 격렬히 항의하는 사람들, 현장에 피가 많이 보이지 않아 실망하는 사람들, 사망자가 없다는 소식에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         p.581

 

캐트린 댄스는 동작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의 전문가로 상대의 몸짓과 표정을 분석해 그들의 심리 상태와 생각을 정확히 간파해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상대의 스트레스를 포착해 거짓말의 근원을 파헤치며 상대를 서서히 무너뜨린다. 그녀는 첫 작품에서부터 FBI 요원이었던 남편과 사별하고 십대가 되어가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등장했다. 그리고 심문과 동작학, 보디랭귀지 분석이 전문인 CBI(캘리포니아 연방 수사국) 요원으로 용의자와 목격자, 주변인들과 관계를 형성하여 숨겨진 진실을 이끌어내는 심문의 달인으로 활약해왔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첫 장면부터 용의자 심문에 실패하고, 그에게 총기까지 빼앗기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며 등장한다. 결국 징계를 받아 민사부로 전출된 댄스는 서류를 확인하러 화재가 발생한 클럽을 찾게 된다. 사실 수사과에서 쫓겨났으니 정직당한 거나 다름없었고, 총기도 쓸 수 없어 민간인이나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댄스는 그곳에 엄밀히 말해 화재는 없었다는 것과, 클럽 안이 아닌 밖에서 불이 있었기 때문에 안에 있던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화재 사건이 아님을 직감한 것이다. 납세 기록과 보험증서만 조사하면 되는 행정 업무가 중대한 범죄 수사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댄스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군중을 상대로 그들의 공포심을 조작해 살인을 저지르고 현장을 촬영하는 데 희열을 느끼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였다.  그들은 콘서트장이나 엘리베이터처럼 인파가 몰린 폐쇄 공간에 공포를 불어넣어 참사를 유발하고, 그 현장이 담긴 영상을 다크웹에 유통해 고객들에게 공급했다. 과연 댄스는 이번에도 사건을 멋지게 해결해 낼 수 있을까.

 

 

이 시리즈의 또 다른 재미는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냉철하고 천재적인 두뇌로 사건을 해결하는 캐릭터와 감정이입 능력이 뛰어나고 대상과 밀접한 유대를 맺으며 그들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는 캐릭터와의 만남이 등장한다는 거다. 물론 이번 작품에서는 직접적으로 라임과 색스가 나오진 않고 그들이 선물했던 시계에 대한 언급으로 그치지만 말이다. 링컨 라임은 물증 분석, 캐트린 댄스는 언어, 동작학 분석으로 두 사람은 완전히 상반된 수사 방식을 가진 캐릭터이다. 링컨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캐트린에게는 그에게 없는 인간적인 요소가 있다. 그러니 결국 두 시리즈 모두 각각의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증거 수집과 분석이라는 확실히 눈에 보이는 것으로, 캐트린 댄스 시리즈는 표정과 몸짓을 읽는 동작학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것으로 말이다.

 

현재 캐트린 시리즈는 <잠자는 인형> (2007), <도로변 십자가> (2009), <XO> (2012), <고독한 강> (2015) 이렇게 네 작품이 출간되어 있다. 국내에 XO가 출간된 것이 2017년이었으니, 이번 신작은 무려 5년 만에 만나게 되는 반가운 작품이었다. 652페이지라는 두툼한 분량도 오랜 기다림을 보상해주는 듯한 기분이었고 말이다. 타인의 비극을 구경거리로 삼는 것은 바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범죄이다. 제프리 디버가 이 작품을 쓴 것은 2015년이었지만, 이는 다크웹을 통한 범죄가 만연화되어 있는 바로 지금의 비극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와 닿았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탄탄한 구성과 겹겹의 반전, 숨쉴 틈 없는 속도감과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인간 거짓말탐지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캐트린 댄스의 활약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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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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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순간이면 벤은 차라리 세상에 아무 의미가 없기를 바랐다. 그러면 모든 것이 훨씬 더 쉬워질 테니까.
그는 가방을 뒤져 전날 산 책을 꺼냈다. 누군가 그를 기억하고 지하실 문을 열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데 쓸 만한 책이 책장에 수십 권 있었지만, 온몸에 번진 무력감과 지하에 갇혀 있다는 엷은 우울함 때문에 손이 가방으로 향했다. 그는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p.171

 

첫 페이지부터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이상한 책이다. 당신은 한 손으로 이 책을 들고 다른 팔로는 머리를 괴고서 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당신은 불과 한 시간 전에, 충동적으로 이 책을 샀습니다...다가올 날들에는 이 책이 당신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당신의 생존에 영향을 줄 정도로 아주 중요해집니다.. 아니, 아뇨. 지금 책을 덮으면 안 되지요! 등등 이 책은 시작부터 읽는 이들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물론 이것은 극중 인물인 벤에게 책이 건네는 말이다. 일단 신뢰를 좀 쌓자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때가 되면 뭘 해야 할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는 식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안내 문구'같은 것이다.

 

생각해보라. 어떤 책을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 속 내용이라는 것이 '당신이 지금 어디에서 어떤 자세로 책을 읽고 있는지, 방 안의 모습은 어떤지 하나 하나 묘사하고 있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게다가 필요할 때마다 이 책을 가져다가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으라고 말을 건네는 책이라니.. 이 책의 정체는 도대체 뭔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점점 궁금해질 것이다.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책, 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일들까지 훤히 알고 있는 책이라니... 어서 빨리 책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 버리고 싶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이 허구의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궁금해졌다. 이 책이 꼭 독자인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야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실제로 가닿을 수는 없으니까요. 당신은 조용히 그런 전제를 세웠습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을 당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듣고 이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말은 오직 당신 안에서만 반향을 일으키는 의미로 여러 겹 싸여 있지요. 우리 모두의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무한의 틈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의 친구를 진정으로 이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늘 거의, 얼추, 그저 비슷하게 이해하는 것일 뿐이지요.         p.370~371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술집 같지만 세상 어디에도 팔지 않는 특이한 술을 파는 미스터리한 바가 있다. 그곳에는 이름 없는 술을 찾는 이상한 손님들이 종종 찾아온다. 사장인 벤처 부인은 그들에게 특별한 기술을 판매한다. 바로 '경험'이다. 어떤 경험이 하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경험자들 중 한 명에게 나 대신 그런 경험을 해달라고 부탁한 다음 그가 돌아오면 술을 한잔 같이 하면 되는 것이다. 경험자들은 신비로운 기술을 갖고 비밀리에 움직이는 사람들도, 자신의 경험을 음식에 녹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 벤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노인 울프에게 받은 두 병의 위스키를 통해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극중 벤처 부인이 '사람들은 경험으로, 자신들이 겪어 온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경험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우리가 해 온 경험과 선택이 내면과 행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곳에 가 볼 수도, 해보고 싶은 모든 것을 경험해 볼 수도 없다. 그러니 정말 이렇게 특별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위스키가 있다면, 나 자신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책이 있다면 만나 보고 싶다. 난관에 부딪쳤을 때, 막막할 때, 절망에 빠졌을 때, 필요할 때 언제든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려주는 책이 있다면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될 것 같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허무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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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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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려고 숨을 죽였다. 하지만 벽돌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말은 흩어져버렸다. 오로지 말투만이 벽을 뚫는 데 성공했다. 분노와 상심, 부정과 비난이 담긴 말투만이.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정적이 흘렀다. 핀은 피온라크가 부모의 말싸움을 들었을지 걱정이 됐다... 오늘 밤, 비밀 하나가 흘러나와 그들 사이를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녔다. 핀만이 그 존재를 알아보고, 자신의 세계를 영원히 뒤집어엎을 차가운 손가락을 느꼈을까?            p.189

 

공기에 떠도는 디젤유, 바닷물, 해초 냄새가 가득한 어둡고 더러운 보트 창고에서 한 남자가 창고 서까래에 목을 맨 채로 발견된다. 고개는 불가능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복부는 갈라진 채 잔인하게 살해된 시신이었다. 몇 달 전 에든버러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동일한 수법이라는 이유로 핀 매클라우드 형사가 루이스 섬으로 파견된다.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핀은 18년 전 도망치듯 섬을 떠난 이유로 한 번도 돌아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해당 사건의 수사 책임자였고, 피살자는 그가 아는 사람이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 그는 얼마 전에 다섯 살짜리 아들을 뺑소니 사고로 잃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고, 결혼 생활은 거의 끝장난 상태였다. 모든 것이 무너진 듯한 최악의 상황에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곳으로 가게 된 것이다. 루이스 섬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연쇄살인의 시작인 걸까, 우발적인 모방범죄인걸까. 이야기는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핀의 시점과 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소년 핀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현재의 살인사건과 은폐된 과거의 비극이 한 지점에 이르게 되면, 숨겨졌던 충격적인 비밀이 폭발하듯 드러난다.

 

 

 

이토록 두려웠던 적이 있었던가. 핀은 의문이 들었다. 주변 암초를 치고 올라오는 괴물 같은 파도 앞에 서 있으니 이보다 속수무책이었던 적이 없던 것 같았다.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 자연에 정면으로 맞선 자신이 무척이나 초라하고 작아 보였다. 한 조각 배로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를 80킬로미터나 헤치고 와서, 이제 수십 미터를 나아갈 일만 남았다. 패드리크가 퍼플아일호의 닻줄을 팽팽히 유지한 채 후진하여 작은 만으로 진입할 때, 덩컨은 딩기에 줄을 매고 선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꽉 붙들었다... 바닷물이 섬을 삼킬 것처럼 핥고 빠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p.414~415

 

제목인 '블랙하우스'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가옥 형태로 자연석으로 벽을 세우고 짚으로 지붕을 이은 것이다. 굴뚝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바닥을 난방하면서 나오는 연기는 짚으로 된 지붕 사이사이 구멍으로 천천히 빠져나가야 했고, 연기가 잘 배출되지 않는 집 안에는 항상 그을음이 가득했다. 연기마저 쉽사리 빠져나갈 수 없는 집, 무엇이든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는 가옥 형태가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그들만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표지에서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새 이미지는 루이스 섬에서만 벌어지는 전통이기도 한 구가 사냥의 바로 그 바닷새모습이다. '구가 사냥'은 실제로 15세기부터 섬에서 해마다 행해지는 활동이라고 하는데, 작품에서도 그려졌듯이 현재는 환경 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성인식으로 여겨지는 바닷새 사냥, 섬에서 일어난 일을 밖에서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규칙, 스코틀랜드 최북단에 위치한 고립된 섬이라는 배경 덕분에 어둡고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독특한 스릴러 작품이다.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섬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섬에 대한 세밀한 묘사 덕분에 긴장감을 잃지 않고 서스펜스를 만들어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휘몰아치는 바람, 예측할 수 없는 날씨, 깎아지른 절벽과 매서운 파도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섬사람들의 가혹한 삶'을 생생하게 담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대로 폭풍우 몰아치는 스코틀랜드의 차가운 바다 한 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작품이었다. 서늘한 스코틀랜드 스릴러로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싶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이 작품은 '루이스 섬'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이후 <루이스맨>, <체스맨>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두 번째 작품인 <루이스 맨>에서는 루이스 섬의 늪지에서 발견된 미라화化된 시신을 둘러싸고 또 한 번 숨 막히는 스릴러가 펼쳐질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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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제인 오스틴 지음, 송은주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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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격렬한 반대는 앤이 맞서 싸우기에 너무 버거웠다. 어리고 온순한 앤이었지만 아버지의 악의는 견뎌낼 수 있었다. 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나 눈길이 없어도 괜찮았다. 그러나 앤이 늘 사랑하고 의지해온 레이디 러셀의 확고하고 애정 어린 조언에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앤은 결국 이 약혼이 지각없고, 부적절하며, 잘될 가망은 물론 그럴 가치조차 없는 일이라는 말에 설득되고 말았다.         p.43

 

<설득>은 제인 오스틴이 죽음을 앞두고 썼던 마지막 작품이다. 오스틴이 썼던 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19세기 초 영국 상류층 여성들의 사랑과 결혼이라는 테마로 그려진 이야기이다. 정작 오스틴 본인은 한 번 청혼받은 적은 있으나 고심 끝에 거절하고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작품 속 주인공은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미혼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정착하기까지 겪는 수많은 우여곡절은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결혼을 하고 안하고가 개인의 자유이지만, 19세기 초 영국 사회에서는 사회적 신분, 성차별 등으로 인해 그렇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 작품은 한번 이루어지지 않았던 두 남녀의 사랑에 찾아온 두 번째 기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앤은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앤트워스 대령과 헤어진 지 거의 8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작스럽게 재회하게 된다. 앤이 열아홉 살이었을 때 앤트워스는 무일푼의 군인이라 장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파혼당해야 했지만, 지금은 부와 명예를 얻어 금의환향한 상태이다. 십대 후반의 앤은 부모와도 같은 레이디 러셀에게 '설득'당해 그와 헤어졌지만, 이십대 후반의 앤은 다시 돌아온 앤트워스의 사랑 고백에 결국 다시 '설득'된다. 사회적 관습과 편견에 의한 설득을 받아들이는 것과 부당한 시선과 관습에 맞서 주체적인 설득에 이르는 것 사이에서의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참된 애정과 지조는 여자들만이 안다고 감히 말한다면 경멸받아 마땅하겠지요. 아뇨, 남자들도 결혼생활을 아주 훌륭하게 잘할 수 있다고 믿어요. 남자들이 꼭 필요한 일을 위해 애쓰고, 가정에서도 관용을 베풀 수 있다고 믿어요.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남자들에게 목표가 있기만 하다면요. 제가 여자들을 위해 주장하는 모든 특권은(그다지 부러워할 만한 것은 아니지요. 대령님은 탐내실 필요가 없어요) 더 이상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도, 희망이 없어져도 끝까지 오래 사랑하는 것뿐이지요.        p.352

 

고전문학을 현대적인 시각과 시대 정신을 담아 선보이는 윌북 클래식 시리즈 신작이다. 시즌 1 걸클래식 컬렉션, 시즌 2 라이트 컬렉션, 시즌 3 환상 컬렉션에 이어 이번에 선보이는 컬렉션의 주제는 ‘첫사랑’이다. 제인 오스틴의 <설득>,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네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에 사는 주인공들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겪어 내는 첫사랑의 모습이 지금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면서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뭐든 '처음'이라는 것은 설레이는 것이고,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기도 하는 것이니 말이다.

 

 

윌북 클래식은 그동안 번역에 특히 신경을 써왔다. 먼저, 남녀의 차이가 언어 차별로 표현되는 부분을 평등한 현대 언어로다듬었다. 존·하대 표현이 없는 언어권의 문학임에도, 여자들만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처럼 번역했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동등한 관계성을 만들어냈다. 약자를 차별하는 언어 역시 순화했다. ‘하녀’라는 표현은 ‘하인’으로, ‘여류 작가’는 ‘작가’로 통일했다. 원문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문학의 위대한 힘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언어에 내재된 차별의 시각을 걷어내고자 하는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이번 기회에 오랜만에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왜 이 오랜 시간을 초월해 아직도 사랑받는 작가인지 깨달았다.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섬세하게 살려내고, 결혼과 인생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포착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삶이 낭만적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던 제인 오스틴이었기에, 행복과 불행을 오르내려야 하는 인생의 굴곡을 이렇게 세심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고전문학을 현대적인 시각과 시대 정신을 담아 선보이는 윌북 클래식의 첫사랑 컬렉션을 통해서 제인 오스틴의 명작을 다시 한번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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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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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이라니, 다정에 대한 소감이자 감상, 그리고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이라는 문구만으로도 마음속 깊숙이 쌓여 있던 얼음들이 녹는 듯한 느낌이다.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내 안에 새겨진 다정들로 마음의 악력을 만들 수 있기를,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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