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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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려고 숨을 죽였다. 하지만 벽돌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말은 흩어져버렸다. 오로지 말투만이 벽을 뚫는 데 성공했다. 분노와 상심, 부정과 비난이 담긴 말투만이.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정적이 흘렀다. 핀은 피온라크가 부모의 말싸움을 들었을지 걱정이 됐다... 오늘 밤, 비밀 하나가 흘러나와 그들 사이를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녔다. 핀만이 그 존재를 알아보고, 자신의 세계를 영원히 뒤집어엎을 차가운 손가락을 느꼈을까?            p.189

 

공기에 떠도는 디젤유, 바닷물, 해초 냄새가 가득한 어둡고 더러운 보트 창고에서 한 남자가 창고 서까래에 목을 맨 채로 발견된다. 고개는 불가능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복부는 갈라진 채 잔인하게 살해된 시신이었다. 몇 달 전 에든버러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동일한 수법이라는 이유로 핀 매클라우드 형사가 루이스 섬으로 파견된다.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핀은 18년 전 도망치듯 섬을 떠난 이유로 한 번도 돌아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해당 사건의 수사 책임자였고, 피살자는 그가 아는 사람이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 그는 얼마 전에 다섯 살짜리 아들을 뺑소니 사고로 잃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고, 결혼 생활은 거의 끝장난 상태였다. 모든 것이 무너진 듯한 최악의 상황에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곳으로 가게 된 것이다. 루이스 섬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연쇄살인의 시작인 걸까, 우발적인 모방범죄인걸까. 이야기는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핀의 시점과 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소년 핀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현재의 살인사건과 은폐된 과거의 비극이 한 지점에 이르게 되면, 숨겨졌던 충격적인 비밀이 폭발하듯 드러난다.

 

 

 

이토록 두려웠던 적이 있었던가. 핀은 의문이 들었다. 주변 암초를 치고 올라오는 괴물 같은 파도 앞에 서 있으니 이보다 속수무책이었던 적이 없던 것 같았다.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 자연에 정면으로 맞선 자신이 무척이나 초라하고 작아 보였다. 한 조각 배로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를 80킬로미터나 헤치고 와서, 이제 수십 미터를 나아갈 일만 남았다. 패드리크가 퍼플아일호의 닻줄을 팽팽히 유지한 채 후진하여 작은 만으로 진입할 때, 덩컨은 딩기에 줄을 매고 선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꽉 붙들었다... 바닷물이 섬을 삼킬 것처럼 핥고 빠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p.414~415

 

제목인 '블랙하우스'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가옥 형태로 자연석으로 벽을 세우고 짚으로 지붕을 이은 것이다. 굴뚝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바닥을 난방하면서 나오는 연기는 짚으로 된 지붕 사이사이 구멍으로 천천히 빠져나가야 했고, 연기가 잘 배출되지 않는 집 안에는 항상 그을음이 가득했다. 연기마저 쉽사리 빠져나갈 수 없는 집, 무엇이든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는 가옥 형태가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그들만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표지에서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새 이미지는 루이스 섬에서만 벌어지는 전통이기도 한 구가 사냥의 바로 그 바닷새모습이다. '구가 사냥'은 실제로 15세기부터 섬에서 해마다 행해지는 활동이라고 하는데, 작품에서도 그려졌듯이 현재는 환경 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성인식으로 여겨지는 바닷새 사냥, 섬에서 일어난 일을 밖에서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규칙, 스코틀랜드 최북단에 위치한 고립된 섬이라는 배경 덕분에 어둡고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독특한 스릴러 작품이다.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섬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섬에 대한 세밀한 묘사 덕분에 긴장감을 잃지 않고 서스펜스를 만들어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휘몰아치는 바람, 예측할 수 없는 날씨, 깎아지른 절벽과 매서운 파도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섬사람들의 가혹한 삶'을 생생하게 담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대로 폭풍우 몰아치는 스코틀랜드의 차가운 바다 한 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작품이었다. 서늘한 스코틀랜드 스릴러로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싶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이 작품은 '루이스 섬'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이후 <루이스맨>, <체스맨>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두 번째 작품인 <루이스 맨>에서는 루이스 섬의 늪지에서 발견된 미라화化된 시신을 둘러싸고 또 한 번 숨 막히는 스릴러가 펼쳐질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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