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강 캐트린 댄스 시리즈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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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차를 멈춰 세웠다. 들쭉날쭉한 바위들 쪽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그곳에서는 곧 벌어질 비극을 훤히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거센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키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은 낮게 걸려 있었다. 사진작가들이 '특별한 시간'이라고 부르는 시간대였다. 빛이 친구로 바뀌고 촬영에 방해가 되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순간. 심오하고 지적인 주제에 관심이 많은 마치도 한때 사진을 공부했다. 핸드 투 하트 웹사이트에 직접 찍은 작품들이 걸려 있을 정도로 실력도 좋았다. 다들 죽을 거야. 그는 다시 생각했다.          p.140~141

 

클럽 솔리튜드크리크는 항상 다양한 사람들도 북적거려 흡사 몬터레이베이 지역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그날도 밴드의 공연을 앞두고 수백 명의 관객이 모여 있었다.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었고, 스탠딩 자리 역시 좋은 위치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고, 밴드의 두 번째 곡이 진행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무나 종이가 탄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스피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곧 클럽 안은 아비규환이 되고 만다. 범인은 클럽 안이 아니라 밖에 불을 질렀고, 대형 트레일러 트럭으로 비상구를 막아놓고 달아났다. 많은 사람이 한곳으로 몰리면서 압사당한 사람도 있고, 질식해 죽은 사람들도 있었으며, 사방이 핏자국으로 뒤덮인 끔찍한 광경이 벌어지고 만다.

 

 

제프리 디버의 ‘캐트린 댄스’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다. 여러 시리즈를 거느린 작가 제프리 디버의 유일한 여성 수사관 주인공인 캐트린 댄스는 링컨 라임 시리즈의 <콜드 문> (2006)에 처음 조연으로 등장한 이후에 독자들의 요청으로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했다. 링컨 라임이 과학적인 증거를 중요하게 여기는 법과학 전문가라면, 캐트린 댄스는 증인 심문을 통해 몸짓언어를 읽어내는 동작학 전문가로 두 캐릭터는 거의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 댄스는 물리적 증거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리 매력은 느끼지 않았다.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범죄와 수사의 인간적인 측면이었으니 말이다. 반면 라임은 증거물이 아닌 다른 부분에는 대체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목격자의 신뢰도는 물리적 증거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런 현장에 가게 되면 주변을 유심히 살펴봐요. 시신이나 부상자들을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을 말이에요. 구경꾼들. 물론 피해자들을 돕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고,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 틈에는 예외 없이 카메라를 꺼내 들고 베스트샷을 건지기 위해 신나게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단순히 호기심에 그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걸 수집하는 ‘전문가’들일 수도 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저지선을 쳐놓고 사람들을 쫓는 경찰들에게 가장 격렬히 항의하는 사람들, 현장에 피가 많이 보이지 않아 실망하는 사람들, 사망자가 없다는 소식에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         p.581

 

캐트린 댄스는 동작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의 전문가로 상대의 몸짓과 표정을 분석해 그들의 심리 상태와 생각을 정확히 간파해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상대의 스트레스를 포착해 거짓말의 근원을 파헤치며 상대를 서서히 무너뜨린다. 그녀는 첫 작품에서부터 FBI 요원이었던 남편과 사별하고 십대가 되어가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등장했다. 그리고 심문과 동작학, 보디랭귀지 분석이 전문인 CBI(캘리포니아 연방 수사국) 요원으로 용의자와 목격자, 주변인들과 관계를 형성하여 숨겨진 진실을 이끌어내는 심문의 달인으로 활약해왔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첫 장면부터 용의자 심문에 실패하고, 그에게 총기까지 빼앗기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며 등장한다. 결국 징계를 받아 민사부로 전출된 댄스는 서류를 확인하러 화재가 발생한 클럽을 찾게 된다. 사실 수사과에서 쫓겨났으니 정직당한 거나 다름없었고, 총기도 쓸 수 없어 민간인이나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댄스는 그곳에 엄밀히 말해 화재는 없었다는 것과, 클럽 안이 아닌 밖에서 불이 있었기 때문에 안에 있던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화재 사건이 아님을 직감한 것이다. 납세 기록과 보험증서만 조사하면 되는 행정 업무가 중대한 범죄 수사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댄스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군중을 상대로 그들의 공포심을 조작해 살인을 저지르고 현장을 촬영하는 데 희열을 느끼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였다.  그들은 콘서트장이나 엘리베이터처럼 인파가 몰린 폐쇄 공간에 공포를 불어넣어 참사를 유발하고, 그 현장이 담긴 영상을 다크웹에 유통해 고객들에게 공급했다. 과연 댄스는 이번에도 사건을 멋지게 해결해 낼 수 있을까.

 

 

이 시리즈의 또 다른 재미는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냉철하고 천재적인 두뇌로 사건을 해결하는 캐릭터와 감정이입 능력이 뛰어나고 대상과 밀접한 유대를 맺으며 그들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는 캐릭터와의 만남이 등장한다는 거다. 물론 이번 작품에서는 직접적으로 라임과 색스가 나오진 않고 그들이 선물했던 시계에 대한 언급으로 그치지만 말이다. 링컨 라임은 물증 분석, 캐트린 댄스는 언어, 동작학 분석으로 두 사람은 완전히 상반된 수사 방식을 가진 캐릭터이다. 링컨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캐트린에게는 그에게 없는 인간적인 요소가 있다. 그러니 결국 두 시리즈 모두 각각의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증거 수집과 분석이라는 확실히 눈에 보이는 것으로, 캐트린 댄스 시리즈는 표정과 몸짓을 읽는 동작학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것으로 말이다.

 

현재 캐트린 시리즈는 <잠자는 인형> (2007), <도로변 십자가> (2009), <XO> (2012), <고독한 강> (2015) 이렇게 네 작품이 출간되어 있다. 국내에 XO가 출간된 것이 2017년이었으니, 이번 신작은 무려 5년 만에 만나게 되는 반가운 작품이었다. 652페이지라는 두툼한 분량도 오랜 기다림을 보상해주는 듯한 기분이었고 말이다. 타인의 비극을 구경거리로 삼는 것은 바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범죄이다. 제프리 디버가 이 작품을 쓴 것은 2015년이었지만, 이는 다크웹을 통한 범죄가 만연화되어 있는 바로 지금의 비극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와 닿았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탄탄한 구성과 겹겹의 반전, 숨쉴 틈 없는 속도감과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인간 거짓말탐지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캐트린 댄스의 활약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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