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제인 오스틴 지음, 송은주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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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격렬한 반대는 앤이 맞서 싸우기에 너무 버거웠다. 어리고 온순한 앤이었지만 아버지의 악의는 견뎌낼 수 있었다. 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나 눈길이 없어도 괜찮았다. 그러나 앤이 늘 사랑하고 의지해온 레이디 러셀의 확고하고 애정 어린 조언에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앤은 결국 이 약혼이 지각없고, 부적절하며, 잘될 가망은 물론 그럴 가치조차 없는 일이라는 말에 설득되고 말았다.         p.43

 

<설득>은 제인 오스틴이 죽음을 앞두고 썼던 마지막 작품이다. 오스틴이 썼던 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19세기 초 영국 상류층 여성들의 사랑과 결혼이라는 테마로 그려진 이야기이다. 정작 오스틴 본인은 한 번 청혼받은 적은 있으나 고심 끝에 거절하고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작품 속 주인공은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미혼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정착하기까지 겪는 수많은 우여곡절은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결혼을 하고 안하고가 개인의 자유이지만, 19세기 초 영국 사회에서는 사회적 신분, 성차별 등으로 인해 그렇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 작품은 한번 이루어지지 않았던 두 남녀의 사랑에 찾아온 두 번째 기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앤은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앤트워스 대령과 헤어진 지 거의 8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작스럽게 재회하게 된다. 앤이 열아홉 살이었을 때 앤트워스는 무일푼의 군인이라 장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파혼당해야 했지만, 지금은 부와 명예를 얻어 금의환향한 상태이다. 십대 후반의 앤은 부모와도 같은 레이디 러셀에게 '설득'당해 그와 헤어졌지만, 이십대 후반의 앤은 다시 돌아온 앤트워스의 사랑 고백에 결국 다시 '설득'된다. 사회적 관습과 편견에 의한 설득을 받아들이는 것과 부당한 시선과 관습에 맞서 주체적인 설득에 이르는 것 사이에서의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참된 애정과 지조는 여자들만이 안다고 감히 말한다면 경멸받아 마땅하겠지요. 아뇨, 남자들도 결혼생활을 아주 훌륭하게 잘할 수 있다고 믿어요. 남자들이 꼭 필요한 일을 위해 애쓰고, 가정에서도 관용을 베풀 수 있다고 믿어요.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남자들에게 목표가 있기만 하다면요. 제가 여자들을 위해 주장하는 모든 특권은(그다지 부러워할 만한 것은 아니지요. 대령님은 탐내실 필요가 없어요) 더 이상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도, 희망이 없어져도 끝까지 오래 사랑하는 것뿐이지요.        p.352

 

고전문학을 현대적인 시각과 시대 정신을 담아 선보이는 윌북 클래식 시리즈 신작이다. 시즌 1 걸클래식 컬렉션, 시즌 2 라이트 컬렉션, 시즌 3 환상 컬렉션에 이어 이번에 선보이는 컬렉션의 주제는 ‘첫사랑’이다. 제인 오스틴의 <설득>,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네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에 사는 주인공들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겪어 내는 첫사랑의 모습이 지금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면서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뭐든 '처음'이라는 것은 설레이는 것이고,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기도 하는 것이니 말이다.

 

 

윌북 클래식은 그동안 번역에 특히 신경을 써왔다. 먼저, 남녀의 차이가 언어 차별로 표현되는 부분을 평등한 현대 언어로다듬었다. 존·하대 표현이 없는 언어권의 문학임에도, 여자들만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처럼 번역했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동등한 관계성을 만들어냈다. 약자를 차별하는 언어 역시 순화했다. ‘하녀’라는 표현은 ‘하인’으로, ‘여류 작가’는 ‘작가’로 통일했다. 원문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문학의 위대한 힘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언어에 내재된 차별의 시각을 걷어내고자 하는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이번 기회에 오랜만에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왜 이 오랜 시간을 초월해 아직도 사랑받는 작가인지 깨달았다.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섬세하게 살려내고, 결혼과 인생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포착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삶이 낭만적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던 제인 오스틴이었기에, 행복과 불행을 오르내려야 하는 인생의 굴곡을 이렇게 세심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고전문학을 현대적인 시각과 시대 정신을 담아 선보이는 윌북 클래식의 첫사랑 컬렉션을 통해서 제인 오스틴의 명작을 다시 한번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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