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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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르겠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처마 끝에 매달려 사는 삶보다 이렇게 날아다니며 사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삶에 있어서 형식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삶의 형식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요?"

"그건 사랑하는 마음이야. 삶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모두를 바치는 것이 가장 중요해. 사랑이야말로 삶의 전부야."            p.66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전남 화순 운주사 대웅전 서쪽 처마 끝에 달려 있는 풍경의 물고기이다. 얇은 동판으로 만들어져 있는 물고기는 먼 데서 불어온 미풍에도 하늘을 날듯 지느러미를 하늘거린다. 한 스님이 인사동의 어느 가게에서 풍경을 두개 샀는데, 각각 생김새에 따라 푸른툭눈과 검은툭눈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대웅전 양쪽 처마 끝에 달린 채 매일 마주 보고 풍경 소리를 나누는 푸른툭눈과 검은툭눈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푸른툭눈은 사랑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뜨거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검은툭눈은 사랑이란 무덤덤해지면서 그윽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에 대한 정의도, 헤어짐에 대한 생각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랐던 둘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한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에 만족하는 검은툭눈과 달리 푸른툭눈은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고 싶었다. 이 작품은 그렇게 푸른툭눈이 쇠줄을 끊고 날아올라 온세상을 떠돌며 사랑에 대해,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깨닫게 되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처마 끝에 매달려 사는 삶에서 벗어나 날개를 단 비어가 되어 하늘을 날게 된 푸른툭눈은 산을 넘고 강을 지나 바다를 건너 서울까지 날아간다. 소나무에 앉아 있던 흰물떼새를 만나고, 젊은 시인을 만나고, 비둘기와 이야기를 나누고, 찹쌀붕어빵들과 횟집에 갇힌 물고기들과 서울역의 노숙자까지 만나며 푸른툭눈은 세상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배운다. 그리고 충족된 삶을 살고 있을 때 감사할 줄을 알아야 하는데 어리석게도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감정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즉시 사랑하고, 한 번뿐인 생을 헛되이 살게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사하며 잠들게 된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뭉클하게 가슴에 남는 이야기였다. 



"하필이면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이 있습니까?"

"너라고 해서 고통이 없으란 법은 없다. 나에게도 고통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고통을 견딜 수 있다."

"저의 상처가 깊습니다."

"상처 없는 아름다움은 없다. 진주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장미꽃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상처 때문이다."

"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넌 아직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 용기를 내어라. 잃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보아라."              p.143


등단 50년이 넘는 동안 끝없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온 한국 서정시의 거장, 정호승. 그가 시인일 뿐 아니라 소설과 동화로도 마음을 건네온 이야기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가 쓴 단 하나의 장편 우화소설 《연인》과 그동안 모아온 단편 우화소설을 엮은 《항아리》, 《조약돌》 이렇게 3권이 함께 출간되었다. 운주사 물고기 풍경이 사랑을 찾아 세상을 떠도는 모험을 담은 장편 《연인》, 버려진 항아리, 바다로 가고 싶은 종이배, 생화 사이에 놓인 조화 장미 등 작고 사소한 것들의 짧은 이야기들을 엮은 《항아리》, 《조약돌》을 오늘날 감각으로 다듬어 새로운 장정으로 펴냈다. 


이번에 나온 버전은 동시대적 언어 감각으로 세공되었으며, 박선엽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으로 표지와 본문 삽화를 전면 풀컬러로 새롭게 꾸며 더욱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책의 만듦새가 너무 예뻐서 소장용으로도, 선물용으로도 너무 좋을 것 같다. <연인>은 실제로 운주사에 갔다가 물고기 한 마리가 떨어진 풍경을 보면서 시작되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의 청량한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은, 담백하면서도 맑은 이야기였다. 예쁜 표지만큼 본문에 수록된 컬러 삽화들도 예뻐서 시인의 글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사랑은 말하기 쉽고 노래하기 쉽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 그러니 사랑해야 할 이들은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사랑하라는 시인의 메시지가 여운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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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의 세계 - 시공을 넘어 공명하는 영혼의 행방
에노모토 마사키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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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야기를 지탱해야 할 중요한 배경은 극 중에 아예 그려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려진다. 관객의 상상에 모든 걸 위탁한다. 애니메이션은 시간에 구속되는 미디어다. 한정된 시간 안에 이야기를 끝내려면 '생략'과 '편집'이 필요하다. '무엇을 그릴지'가 아니라 '무엇을 그리지 않을지'가 중요해진다. 시간제한이 큰 단편 작품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덧셈이 아니라 뺄셈의 발상을 택했을 때 '중경의 배제'는 필연이 된다. 이는 신카이가 추진한 표현의 효율성과 경제성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p.71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언어의 정원>, <스즈메의 문단속>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모든 작품을 해설한 책이다. 문예평론가 에노모토 마사키는 초기의 작품부터 최신작까지 신카이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영상문학으로 분석한다. 또한 각종 매체에 소개된 인터뷰, 대담 등을 모아 각 작품에 대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후반부에는 <날씨의 아이>와 <스즈메의 문단속>에 대한 신카이 마코토의 최신 인터뷰도 꽤 긴 분량으로 담겨 있다. 


유화를 그리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면서 어머니의 책장에서 책을 골라 읽었던 소년 시절부터 신카이 마코토라는 재능이 탄생한 배경도 흥미로웠고 그가 디지털 애니메이션 독립 제작을 시작한 과정을 다루고 있어 인상깊게 읽었다. 첫 번째 출발이 되었던 <별의 목소리>의 메이킹 스토리, 새로운 제작 환경에서 만든 첫 장편 영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제작 환경을 최소한으로 했던 <초속 5센티미터>,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한 오마주 <별을 쫓는 아이>,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것과 감독이 주제로 삼고 싶어 하는 것의 조화에 대해 고민했던 <언어의 정원>,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인기작 <너의 이름은.>, 이야기에 적합한 캐릭터를 찾기 위해 고심했던 <날씨의 아이>, 현실에서 일어난 거대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스즈메의 문단속> 까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 작품을 글로 읽어 내는 시간은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감동을 주었다. 




내가 사는 곳을 좋아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어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도쿄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도쿄의 풍경을 아주 좋아합니다. 사람이란 장소에 추억이 쌓여야 그곳을 좋아하게 됩니다. 좋아하지 않던 곳도 친구와 수다 떨며 돌아오거나 좋아하는 여자와 나란히 걸었다면 특별한 장소가 되잖아요. 그런 경험을 거쳐 서서히 도쿄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추억과 기억이 엮이면 장소가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때 느낀 점을 이후 모든 작품에 관통하는 철학 비슷한 원체험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p.315~316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은 애니메이션 장르를 크게 좋아하지 않던 일반 관객들도 쉽게 즐길 수 있다. 가장 최근 작인 <스즈메의 문단속>만 하더라도 국내 관객수가 558만이니 그 대중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이유없는 죽음이라는 결과에 대항하기 위해 이른바 재난 3부작을 만든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그리고 <스즈메의 문단속>이다. 각각 서로 다른 형태의 재난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작품들은 견딜수 없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삶이란 반복되는 상실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고, 우리는 그 상실감을 끌어안고 또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간절한 마음이 이뤄내는 기적이라는 희망과 낙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왕복하는 시간 구성과 시골과 도시의 대조적인 배치, 고층 빌딩과 전차에 대한 집착 등 신카이 작품의 표현에서 핵심이 되는 각종 모티프와 '세계를 긍정하는 의사'에 집약되어 있는 그의 이념, 커뮤니케이션과 디스커뮤니케이션, 혹은 교류와 단절이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최대 주제를 짚어낸다. 아름다운 하늘과 구름 같은 자연, 전봇대와 전깃줄, 건물 등의 생생한 인공물 묘사로 상징되는 배경 미술에 대한 분석과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뭔가를 잃어야 한다는 이율배반의 딜레마 등을 문학적 시점에서 평론하고 있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신카이 마코토는 자신은 타고낭 능력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독서 취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하드한 물리 이론으로 버무려진 그렉 이건의 작품들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류츠신의 <삼체>도 읽었다고 한다. 그렇게 SF의 상상력과 함께 자신만의 애니미즘과 판타지가 융합된 비주얼 세계가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바탕이 되어 준다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너의 이름은,>이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데, 각자 한 편씩은 좋아하는 작품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한다면 이 책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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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변호사 파란 이야기 21
허교범 지음, 현단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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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착한 사람은 언제나 피해를 당한다. 세상에는 아주 착한 사람이 약간, 아주 나쁜 사람도 약간, 양쪽 다 아닌 사람이 잔뜩 있다. 나쁜 사람은 언제나 착한 사람을 찾아다니는데 그건 늑대가 양을 찾는 것과 이유가 같다. 이것이 변호사의 생각이었다. 변호사는 세상을 믿지 않았다. 이번에도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의 죄를 대신 뒤집어썼다... 사실이 아니지만 어쨌든 반 아이들 전부가 그렇게 믿을 테고 그러면 사실이 되는 세상이었다.                p.43


그 일은 체육 시간을 전후로 일어났다. 그날 체육 시간에는 편을 나눠 피구 대결을 했는데, 성희가 발목을 삐어 혼자 보건실에 가게 된다. 간단한 치료를 받은 뒤 교실에 왔는데, 한 사람의 책상이 넘어지고 내팽개쳐진 가방 속 물건이 모두 바닥에 쏟아져 있었다. 사람의 악한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낸 장면에 놀란 성희는 물건을 하나씩 주워 담았고, 마침 체육 시간이 끝나고 온 아이들은 모두 성희가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범인이 되어 버린 성희에게 선생님은 학급 재판을 제시한다. 그렇게 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반장이 검사가 되었고, 변호사를 맡겠다고 나선 아이는 반에서 가장 영향력이 미미한 사람이었다.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 조용히 책만 읽는 아이가 변호사가 된 것이다. 피고인 성희를 비롯해서 반장과 아이들 모두 결과가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재판장인 선생님의 생각만은 달랐다. 


너희들이 상상도 못 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재판까지 이레, 일곱 날이 남았다.


사실 아이들은 다 반장 편이었고, 반장은 피고인인 성희를 미워했다. 선생님은 반장에서 판사 자리를 권유했지만, 반장이 검사 역할을 맡겠다고 나선 거였다. 피고인을 파멸시키려는 목적이 너무 뚜렷해서 누구나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애초에 누가 변호를 맡든 이길 확률이 없는 사건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변호사 역할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는 아이도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변호사가 혼자 교실에 남아서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도 파악했다. 하지만 재판을 다루는 법정 스릴러를 많이 읽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다른 아이들보다는 재판에 대해 많이 알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래서 변호사 역할을 맡아 보라고 제안을 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쉽지 않겠지만, 네가 새로운 변호사가 되어 이 사건을 뒤집는 건 어떠냐고 말이다. 




둘이 동시에 대답했지만 변호사의 표정은 정말 조금도 죄송해 보이지 않았다. 검사는 이 순간 변호사가 얼마나 무서운 적인지 드디어 마침내 결국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기가 겨우 검사 흉내를 내고 있다면 이 아이는 나이만 어린 변호사에 가까웠다. 이대로는 승산이 전혀 없었다.

절망 어린 시선으로 본 방청석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바람 앞의 어린 가지처럼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p.134


변호사는 세상을 믿지 않았고, 이번 사건도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의 죄를 대신 뒤집어썼다고 생각했다. 변호사의 기준으로는 확실히 나쁜 사람인 반장이 자기 인기를 이용해 검사가 되어 착한 사람을 마구 공격했고, 이대로라면 착한 사람은 모두에게 나쁜 사람으로 찍힐 것이다. 그래서 변호사는 화가 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판에서 이길 수 있을까. 판정은 선생님이 하는 게 아니라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이 정하는 거였다. 하지만 아무도 성희를 믿지 않았다. 모두들 결과가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하는 사건에서 변호사는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진짜 범인은 누구이며, 과연 진실이 밝혀지게 될까.


이 작품은 추리 동화 <스무고개 탐정> 시리즈와 판타지 동화 <이리의 형제>를 쓴 허교범 작가의 어린이 법정 스릴러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쓰인 추리 소설들이 대부분 어린이 탐정이 등장해서 범인을 찾는 전형적인 이야기들이었기에, 어린이 법정 스릴러를 한번 써보기로 했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임에도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추리 과정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사건이 종결지점에 이르렀을 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논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낸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들이 벌인 재판이 어린이들의 귀여운 놀이나 어른 흉내가 아니라 진지한 재판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내에서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오해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점들을 현실적으로 다루면서도 그에 대해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증거를 수집하고, 단서를 찾아내며 차근차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어린이 문학에서 흔치 않은 장르이기에 더욱 특별한 재미를 선사하는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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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살인
카라 헌터 지음, 장선하 옮김 / 청미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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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닉 빈센트: 지금이 2023년이니까 사건으로부터 거의 20년이 되었군요. 왜 지금 다시 그 사건을 들추려는 거죠?

가이 하워드: 진실을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게 영화감독으로서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 사건은 거의 20년간 우리 가족 주위를 맴돌며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누군가 나서서 범인을 밝히고 그를 감옥에 가두기 전까지 우리는 평화를 되찾을 수 없을 겁니다.           p.34~35


2003년 10월 3일 금요일 밤, 런던 서부의 부유한 동네에 있는 한 집 정원에서 무자비하게 구타당한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당시 피해자의 부인은 파티에 참석 중이었고, 집에 있던 사람은 2층에서 자고 있던 열 살배기 아들뿐이었다. 밤늦게 극장에서 돌아온 부인의 10대 딸들에 의해 참혹한 현장이 발견되었고, 신고도 그들이 처음 했다. 사고였을까? 가정폭력? 아니면 강도의 소행이었을까. 정원으로 이어지는 계단 끝에 있던 시신은 얼굴과 머리를 심하게 두들겨 맞은 상태였다. 집은 텅 비어 있었고, 누군가 침입한 흔적도, 도둑맞은 물건도 없었으며, 그토록 잔인한 범행을 저지를 만한 뚜렷한 동기도 없는 것 같았다.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이 사건은 20년간 해결되지 않은 미제로 남게 된다. 


2023년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가이 하워드는 20년 전 자신의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리얼크라임 쇼 <인퍼머스>의 감독을 맡는다. 전 세계에 스트리밍되는 이 프로그램은 리얼크라임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호평을 받아왔다. 그렇게 당시 사건에 연루되었던 주요 인물들을 비롯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법정 심리학자, 런던 경찰청의 퇴직 형사, NYPD 출신의 사설탐정, 현직 법의학자, 왕실 변호사, 프리랜서 기자로 이루어진 출연진들은 프로그램이 촬영되는 동안 사건에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이들은 최신 법의학 기술을 동해서 당시의 증거들을 재검토하면서 증언을 재조사하고, 목격자들을 다시 인터뷰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과정은 8화로 제작되어 매 회차가 한 편씩 공개된다. 회차를 거듭하며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었음이 밝혀지게 되는데, 엇갈리는 증언과 끊임없이 속고 속이는 두뇌 싸움 속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이 프로그램은 지난 20년 동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사건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 




지난 20년 동안 루크 라이더의 죽음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습니다. 진실은 런던 경찰청의 수사망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장악한 수천 명의 아마추어 탐정의 조사도 피해 교묘히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에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누군가 그를 죽이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를 죽인 살인자는 과연 누구인지. 하지만 신실이 곧 밝혀지게 될까요?                p.462~463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고 말한 톨스토이는 틀렸다. 불행한 가족들은 하나같이 비슷비슷하게 와해된다는 사실이 <인퍼머스> 시리즈를 통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오 혜택받은 집안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이는 프로그램 3화가 공개된 뒤, 언론에 보도된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 내용 중 일부이다. 기자는 가족 간의 이야기야말로 <인퍼머스>에서 얻는 알짜배기 통찰이라며, 가정불화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퍼머스>라는 프로그램은 이번에 일곱 번째 시즌인데, 그 동안 리얼크라임 장르를 다루며 악명 높은 미제사건들을 다루어왔다. 이 시리즈는 예리한 보도와 깊이 있는 분석, 사건과 가장 밀접한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특종들로 정평이 나 있고, 몇 차례 수상 이력도 있을 만큼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같은 프로그램을 즐겨 보아온 독자라면, <인퍼머스>라는 프로그램이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도 들 것 같다. 


"놀라지 마십시오. 단언컨대 지금부터 아주 아찔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작품은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실제 리얼크라임 쇼를 보며 시청자가 되어 추리에 참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방송 각본, 미디어 리뷰 기사, 인터넷 게시판 등 미디어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프로그램의 출연진들이 나누는 '대화'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가 진행된다. 일반적인 소설에서 등장하는 서술자의 시선이 없기 때문에 초반에는 다소 낯설고 어수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끊임없는 반전과 충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방송 회차가 거듭되고, 그에 대한 언론의 시선과 실시간 인터넷 반응, 그리고 등장인문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들이 더해지면서 점점 사건에 몰입하게 된다. 카라 헌터는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지만, 영국 내에서만 1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으며 지금까지 27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대표작이 애덤 폴리 형사 시리즈라고 하는데, 평범한 구성의 추리소설 시리즈도 매우 기대가 된다. <가족 살인>은 영국의 영화 제작사 닐 스트리트 프로덕션에서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워낙 눈앞에 영상이 보이는 듯한 생생한 작품이었던터라 스크린에서 보여질 버전도 궁금해진다. 자, 기발한 설정과 독창적인 구성, 곳곳에 배치된 단서와 반전이 백미인 리얼크라임 쇼에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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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샤의 후예 3 : 저항과 부활의 아이들
토미 아데예미 지음, 박아람 옮김 / 다섯수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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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겪은 모든 고통에 복수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쇠사슬에 묶인 두 손을 바라본다. 내 갈색 피부를 노려본다. 환하게 번쩍거리던 문신은 사라졌다. 새하얀 머리카락도 빼앗겼다. 그토록 열심히 싸워 되찾은 마법이 죽어 버렸다. 나의 오리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멀리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어떻게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일까.            p.17


매혹적인 환상의 세계를 기어코 현실로 만들어낸, 매우 놀라운 마법의 세계를 보여주는 오리샤의 후예, 그 세번째 이야기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마법 판자지 3부작의 첫 번째 작품 <피와 뼈의 아이들>이 2019년에, 두 번째 작품 <정의와 복수의 아이들>이 2022년에 나왔으니, 거의 6년 만에 시리즈가 완결된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디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검은 마법사들의 왕국, 그 동안 만나왔던 그 어떤 판타지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더욱 어둡고, 더욱 아름다운 마법의 세계가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고 하니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시리즈가 마무리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기에, 3권을 읽기 전에 1권부터 다시 한번 살펴 보았다. 오래 전 오리샤 왕국에는 희귀하고 신성한 마자이족이 번영을 누리며 살았다. 열 개 부족으로 이루어진 마자이들은 신들로부터 제각기 다른 재능을 부여받고, 마법의 힘을 휘두를 수 있었다. 불을 일으키거나, 마음을 읽거나, 미래를 내다보거나, 질병을 치료하거나, 죽은 자를 불러오거나 등등.. 마자이는 태어날 때부터 새하얀 머리칼을 갖고 있는데, 모두가 날 때부터 신들에게 재능을 받는 건 아니었다. 선택받은 아이들은 열세 살 이후부터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되는데, 11년 전부터 마법이 세상으로부터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일부 힘있는 자들이 마법을 남용하기 시작했고, 마법의 힘을 가지지 못한 코시단은 점점 마자이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로가 커져 결국 그들을 모조리 학살하기에 이른 것이다. 새하얀 머리칼을 갖고 태어났으나 부모와 마법을 한꺼번에 잃은 마자이의 아이들은 왕국의 최하층민으로 전락해 온갖 차별과 폭력 속에 살아가게 된다. 시리즈의 주인공 제일리 역시 여섯 살 때 왕이 보낸 병사들에 의해 엄마가 죽는 장면을 목격했고, 엄마처럼 검은 피부에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마자이였다. 1권에서는 사라진 마법을 되찾기 위해 마자이인 제일리와 코시단인 오빠 제인, 그리고 오리샤의 공주 아마리가 전설의 사원으로 향하는 모험기를 그렸었다. 




'이제 끝내는 거야.' 끝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리라 마음을 다진다. 예바가 산 정상에서 일러 준 비밀들이 떠오르며 우리가 서 있던 그 산처럼 내 안의 깊은 곳을 울린다.

파괴된 오리샤가 눈앞을 아른거린다. 나는 잃어버린 이들의 유골을 세어 본다. 오늘밤 발디르 왕은 우리가 가는 곳에 있을 것이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싸워야 한다.' 예바의 깊은 목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그가 네 영혼에서 거둬 가려는 그 힘을 네가 사용해야 해.'             p.296~297


2권에서는 제일리 일행이 무사히 마법을 되찾은 이후의 이야기를 그렸다. 마법이 돌아온 오리샤 왕국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긴다. 바로 마자이 선조가 섞인 귀족들도 마법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전체 인구의 8분의 1이 마법을 가지게 되었다. 그 가운데 약 3분의 1은 '티탄'으로 저마다 열 개의 마자이 부족 중 한 부족과 비슷한 마법을 가졌다. 전편의 의식 이후 귀족과 군인 가운데 새하얀 한 줄기 머리카락을 가진 티탄들이 나타났고, 그들의 힘은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꽤 강력하다. 제일리는 연인의 배신과 아버지의 죽음을 극복하고, 마자이를 몰살하려는 적들로부터 자신의 부족을 지켜야 한다. 아마리는 왕위에 올라 여왕이 되어 수많은 오리샤인들이 수십 년에 걸쳐 겪어온 폭력과 박해의 이야기를 끝내고 평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아버지의 통치 방식에 의구심을 품었던 왕의 아들 이난은 아버지와는 다른 왕이 되고자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왕궁을 되찾아 마침내 마자이의 시대가 시작되나 했는데, 일행들이 누군가에 의해 납치 되면서 이야기가 끝이 났었다.


3권에서 제일리는 공중에 매달린 새장 같은 감옥 안에서 깨어난다. 제일리를 포함한 마자이들이 고국에서 강제로 끌려온 지도 꼬박 한 달이 되었고, 그들을 끌고 온 것은 해골족이었다. 수백 년의 압제 끝에 마자이들의 투쟁이 끝나려는 참이었는데, 과거 어느 때보다 승리에 가까이 다가갔던, 거의 다 이긴 전쟁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게다가 해골족들은 매일 밤 제일리에게 굵은 바늘을 찔러 넣고 독한 마자사이트를 투입하고 있었다. 더 이상 마법을 느낄 수도, 사용할 수도 없었다. 해골족의 왕 발디르는 제일리를 찾기 위해 마자이 사람들을 납치했고, 바다에 던져 넣었다. 전설에 따르면 마자이 중에 태양의 피가 흐르는 자가 있다고 했고, 그걸 위해 이 모든 일을 벌인 거였다. 그리고 마자이가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원동력이자 성스러운 신들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제일리를 찾아냈고, 그녀의 가슴에 금빛 메달을 박아 넣는다. 앞으로 제일리는 어떻게 될까. 마자이들은 해골족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제일리는 그들에게 반격할 수 있을까. 전편들에 비해 분량이 작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휘몰아치는 이야기 전개로 압도적인 서사를 보여준 마지막 편이었다. 


작가인 토미 아데예미는 무장하지 않은 흑인 어른들과 아이들이 경찰의 총에 맞은 사건을 연일 접하게 되던 시절에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두렵고 화가 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함과 분노를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악과 맞서 싸울 힘을 갖고 있다고, 무고한 사람들을 위해서 울어 주길, 그리고 이제 일어나 작게나마 저항의 몸짓을 시작하길, 그리하면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현재 1권의 내용이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으며 2027년 개봉 예정이라고 하니 스크린에서 펼쳐질 이야기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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